사회적 거리두기, 노숙인만큼...그들을 식사에 초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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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노숙인만큼...그들을 식사에 초대하다
  • 서영남
  • 승인 2020.06.2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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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하느님의 대사들이 민들레국수집의 손님들입니다. 왜냐면 피터 모린께서 거지들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대사들인 이 사람들을 발가락의 때처럼 여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대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우리 손님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손님에게 온갖 욕을 얻어먹고, 멱살을 잡히고, 얻어맞았습니다. 끝도 없는 술주정에 시달릴 때,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우는 것을 말릴 때, 우리 손님들이 하느님의 대사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걱정합니다. 더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빵 하나 사서 나눠 먹습니다. 힘들게 막노동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눌 줄 압니다. 작은 도움인데도 정말 고마워합니다. 욕심도 없습니다. 담배 한 개비 드릴까요? 물어보면 꽁초 하나 있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 손님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대사”들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민들레국수집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일반 음식점들은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들레국수집은 무료급식소 취급을 받아서 느닷없이 공무원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4인용 식탁이 6개뿐인 아주 작은 식당입니다. 공무원들이 제시하는 규정을 지키려면 한 식탁에 1명만 앉혀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나눠드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노숙하는 사람들만큼 사회적 거리가 잘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느 종교단체는 가난한 노숙인은 아예 포교대상에도 포함하지 않습니다. 또 돈이 없으니 클럽이나 노래방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전철을 타면 아무리 복잡한 곳이라도 순식간에 사회적 거리가 확보됩니다. 집이 없으니 바람이 잘 통하는 바깥에서 삽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지내는 사람들인데도 무서워합니다.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희망센터와 민들레옷가게, 민들레진료소를 열지 못하고 겨우 도시락만 나누다보니 손님들과 인격적으로 만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몇 명의 손님들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손님들이 오전 11시에 도시락 꾸러미를 받아서 식사를 하면 오후 세 시쯤 만나서 일반식당에 가서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도시락을 나눌 때 다섯 명을 초대했습니다. 오후 두시 반에 두 명이 왔습니다. 세 명은 서울에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먼저 온 두 명에게 짜장면 혹은 설렁탕을 선택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설렁탕이 좋다고 합니다. 식당에 가서 차림 판을 보곤 막국수로 바꾸었습니다.

막국수를 먹고 있는 데 서울에서 출발한 세 명이 왔습니다. 늦게 온 이들도 막국수를 주문했습니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깨끗하게 한 그릇씩 비웠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초대받아서 외식을 했다고 합니다. 먼저 도착했던 두 분, 나이 66세와 61세인 분이 정말 맛있었다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온 세 명의 손님도 참 맛있게 먹었다면서 고마워합니다. 

두 번째 초대에 온 다섯 명은 할아버지들입니다. 85세, 80세, 78세, 66세, 63세입니다. 얼음과자 하나씩 드시면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85세 할아버지는 율목동에 삽니다. 할머니는 1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시고 우연히 소문을 듣고 오시게 되었답니다.

80세 할아버지는 민들레국수집 시작할 때부터 단골손님입니다. 78세 할아버지는 부평에서 옵니다. 코로나 때문에 밥 먹을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소문을 듣고 왔는데 참 희한하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줄도 안 서는 데도 항상 우선순위로 도시락을 받고 또 도시락도 푸짐해서 참 좋다고 합니다.

60대 분들은 젊다고 소개는 생략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만장일치로 막국수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문이 정기휴일이라고 닫혔습니다. 급히 콩국수를 먹기로 하고 장소를 바꾸었습니다. 콩국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만 무언가 허전해서 빵집에 들러서 빵을 한 봉지씩 선물했습니다. 경로잔치를 잘 했습니다.

세 번째 초대 손님은 세 명입니다. 짜장면 곱빼기 두 그릇과 잡채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몸이 아파서 일도 못하고 방세를 내지 못했답니다. 석 달 전에 거리로 나와서 노숙을 하면서 동인천역 광장에서 시간을 보낼 때 짜장면 먹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답니다. 한 명은 오래 전 중학생 때 짜장면을 먹어보곤 처음이라고 합니다. 잡채밥을 시킨 분은 젓가락을 쓸 줄 몰라서 밥을 먹어야 한답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요.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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