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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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06.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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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벌써 이십 년 전이다. 전라도 무주 산골마을에 귀농했을 때였다. 마을이라야 우리 집 위아래 한 채씩 세 집이 모여 살았다. 윗집은 민중교회 전도사 하던 영미 씨, 아랫집은 전주에서 약사 하던 윤희 씨가 혼자서 살았다. 영미 씨는 노트 한 가득 노래 가사를 적어서 들고 다니며 노래를 외고 그 노래를 불렀다. 그이는 국악을 좋아해서 집에선 라디오 채널 99.1 국악방송을 늘 틀어놓고 있었다. 아랫집 윤희 씨는 별명이 ‘인민가수’여서 내지르는 북한식 고음에 노래 듣는 내 마음도 허공에 떠오르곤 했다. ‘시인과 촌장’을 무척 좋아했던 처자였다.

우리 집엔 결혼할 때 구입한 해묵은 전축 롯데파이오니아가 있었고, 역시 해묵은 음반으로 안치환의 ‘지리산’과 러시아 민요 ‘스텐카라친’을 들었다. 전라도 산촌이 주는 가장 즐거운 혜택은 민중가요를 ‘크게 마음껏’ 부르고 들어도 핀잔을 받을 염려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나는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앞마당에 나와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다. 그게 클래식이어도 좋고, 대중가요라 해도 좋았다. 5월이면 낮마다 뻐꾸기 울고, 밤마다 소쩍새가 울었다. 새들은 언제나 울었지만 나는 노래를 들으며 잠시 행복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예전엔 이연실의 노래를 모두 좋아했고, 요즘엔 알리의 노래를 모두 좋아한다. 이네들 노래가 ‘모두’ 좋은 것은 그네들의 목청이 좋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든 이연실과 알리의 음색에 담아내면 차원이 달라진다. 가수가 아닌 방계로는 소설가 한강이 보른 노래들이 가슴을 건드린다. 한강은 2007년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라는 산문집에 자신이 부른 노래를 CD에 담아서 출간했다.

이 책에서 한강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버리고 싶은 것은 한숨 쉬는 습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함과 지혜, 잃고 싶지 않은 것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라고 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숨’과 ‘콧노래’가 한 인격 안에서 통합되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습관이 쌓이면 그게 인격이 된다는데, 도대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인사말에서 한강은 음반을 녹음하면서 작곡가 한정림 씨가 한 말을 기억한다. “절대로 노래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불러요.” 그냥 있는 그대로라니, 그 말이 더 무서웠다는 한강은 새벽이면 걷다 오는 물가에 심어져 있는 버드나무를 생각하며, “처음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느꼈던 위로와 따뜻함, 몰래 감춰둔 불빛 같던 마음들이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빌 뿐”이라며 서툴면 서툰 대로 두고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다.

“버드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란 생각이 실감난다. 특히 그중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뭘까. 뭐라고 하는 걸까. 그걸 들으려고 한참 서 있을 때가 있다. 언어로 하지 않은 말이니 설령 들었다 해도 옮겨 적기는 어렵다. 굳이, 억지로 옮겨 적자면 ...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랬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그럴 거 없다.”

 

한강이 부른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중 ‘12월 이야기’는 단연 독보적이다. 곡조가 단순해서 금방 따라 부를 수 있고, “겨울날 외투 속에 품고 가는 풀빵 봉지 같은 노래”라고 한강은 말했다. 한강은 12월을 “눈물도 얼어붙는 달. 내 따뜻한 손으로 네 뺨의 살얼음을 녹여주고 싶은 달”이라 했다. 이런 사람의 섬세한 마음결이 안치환의 ‘편지’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행여 못 잊는다는 말은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은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경남 창원의 고승하 선생이 작곡했지만, 그분조차 이게 누가 지은 ‘시’인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애닯고 애잔한 노래가 되었다. 한강은 이 노래를 수유리의 한 서점에서 듣고서 읽던 책을 잠시 덮어놓았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서 이 노래와 관련해 한강은 한 오십대 초반 선생님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어떤 남학생이 군대 간다고 하면, 몰래 그 남학생 좋아하던 여학생이 저녁을 사준다고 그랬어요. 그래 둘이 밥을 먹으면서 뭐하냐 하면, 아무 얘기도 안 해요. 그러고는 여학생 혼자 기다리는 거지. 기다린다는 말도 않고. 약속도 않고 그냥.”

편지에선 차마 말 못할 마음,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마음, 말하지 않아도 짐작되는 마음, 짐작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오간다 했다. 오래 주저하며, 지우고 다시 쓰고, 곰곰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마음이 특별히 귀한 시절이다.

요즘 윤미향 씨와 이용수 할머니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조국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 주변에선 사정없이 서로 윽박지르는 목청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앞뒤를 살피는 목소리를 압도한다. 사태의 시작이 그랬고 과정이 그랬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을 순식간에 많이 잃어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다. 엄혹한 독재의 시절에 진보진영 안에서는 ‘사투’(思鬪)라는 게 있었다. 사상투쟁. 그 이름으로 활동가끼리 머리 박고 싸우다 보면, 정론(正論)이 서는 게 아니라 진영이 분열된다. 분명한 혁명과업은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 우정은 없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다. 아름다운 이상을 더불어 꿈꾸며 걷는 도반(道伴)끼리 생각이야 다를 수 있어도 마음이야 나뉠 수 없다. 그 마음을 잃어버리니, 세상이 혼미하다. 아직도 엄정시비를 가리자는 측과 “그럴 수 있지” 하는 측이 나뉘어 심정 상하고 있다. 습관처럼 몸에 배인 한숨이 더 깊어진다. 그럴 거 없다, 생각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상심하고 있다. 절박하게 서로 부르고 응답했던 시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0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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