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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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새로운 시작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6.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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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죽는 것을 배우기(1)

죽음을 애써 구하지 마라.
죽음이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길을 찾아라.
- 다크 함마숄드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죽음으로,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으로 정하신다.
그러나 죽어 가는 모습들은 하나도 같지 않다.
- 아폴로니우스 성인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과 죽음에 관한 생각, 죽음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른하늘에서 구름을, 장미꽃 뒤에서 소멸의 그림자를 보기 십상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모든 기쁜 소식에도 그들은 “그래. 하지만, 내일이면 우리 모두가 죽을 꺼야”하고 말한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극단적인 경향이 모든 소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부정하는 광적인 낙관주의다. 텔레비전 광고, 체육관에서 미친 듯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이 낙관주의에 의하면, 중요한 사실은 다만 우리가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불멸성을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면하는 삶이다. 죽음의 실제를 회피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망상, 두려움, 삶의 깊이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내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뿐만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가 숨쉬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존재 안에 짜여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을 어떤 일직선상의 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죽음이란 모든 것에 앞서있는 어떤 차원이다. 죽음은 우리의 실존 자체를 의문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질문을 회피하거나 비오는 날로 연기해 버린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죽음, 비참함, 무지를 치유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하여,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참다운 행복은 불행한 생각들을 피하겠다는 결심으로 얻어질 수 없다. 그런 태도는 마치 우리가 비올 때를 제외하고 영원한 햇빛의 땅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려움이나 회피 없이 죽음을 직면하는 만큼,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삶을 직면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행복의 시작이다.

만일 성인들의 행복이 더 견고한 기반에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새로운 것으로 넘어가는 문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확신을 가졌다. 플로센베르크 감옥의 교수대에서 그는 동지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끝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결국 성인들은 “다가올 세계의 생명”을 믿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니체아 신경의 이 구절은 죽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걸림돌이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 일요일마다 똑같은 믿음을 입으로만 되뇌이고 있다. 아직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은 구름에 쌓인 성처럼 우리들의 평상적인 체험으로부터 멀리 있다. 아마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지상에서의 모든 고통이 끝난 후, 거기에 대한 미래의 보상처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기도와 섬김의 삶을 살아간 성인들이나, 박해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 사람들은 단지 미래의 보상에 대한 희망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가졌고 만졌기 때문에 영생을 믿은 것이었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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