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고통과 기쁨을 한꺼번에 삼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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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고통과 기쁨을 한꺼번에 삼키는 자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6.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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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6)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예수의 이야기로 조명하며,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단순히 교의와 도덕적 격언집으로 축소될 수 없다. 또한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영광스러운 신비들”(기적들)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거부, 배신, 버림받음, 외로움, 피땀이 흐르는 고통까지 포함한 이야기 전체에서 발견된다.

예수는 충실함의 기쁨과 고통이 서로 갈라질 수 없게 섞여있다고 믿었다. 두 제자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을 하느님 왕국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그분은 대답한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마태오 20,20-23).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쓴 것과 단 것, 슬픔과 영광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잔을 마실 수 있는가?>라는 저서에서 헨리 나웬은 잔이 삶 자체를 상징하며, 우리는 삶 안에 있는 모든 갈등들을 받아들이도록 초대되었다고 성찰한다. 잔 안의 내용물은 너무나 분리 할 수 없게 섞여있기 때문에 잔을 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나웬이 삶에서 직접 경험한 교훈이었다.

나웬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어거스틴과 달리, 청년 나웬은 이미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속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어거스틴과 비슷한 불안감, 걱정을 느꼈다. 그는 애정과 인정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로 시달렸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적인 공허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웬은 우정의 큰 선물을 지니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공동체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를 한 자리에서 밀어내고 또 다른 것을 계획하게 만든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사명으로, 서커스그룹의 지도신부 등등. 그러나 대중의 인정도 오직 고립감만 더 깊게 해 줄뿐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예수가 경험했던 유혹들이 “더 인기가 있고, 더 강력해지며, 더 위대해지려는 것”이었다고 표현한다.

1986년 그는 토론토에 있는 새벽 라르슈공동체의 거주사제가 되었다. 그는 장애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았다. 그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젊은 청년 아담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아담은 말할 수도 없고,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담을 돌보면서 나웬은 자신에게 더 깊은 내적 회심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웬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투쟁의 끝은 아니었다. 새벽공동체에서 일년을 지낸 후, 나웬은 오랫동안 눌러온 긴장이 극도에 달하며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몇 달 동안 그는 거의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이제 그 자신이 무력한 사람이 되어 침묵 중에 존재에 대한 확신을 울부짖고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나의 자기인정, 살고 일하는 나의 에너지, 사랑받고 있다는 나의 느낌, 치유에 대한 나의 희망, 하느님께 대한 나의 신뢰... 모든 것이.” 그것은 전적인 암흑의 체험이며, “끝이 안보이는 심연”으로의 추락이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자주 하느님이 실제인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일까 하는 의심으로 불안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내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도 하느님께서 나를 홀로 있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더 평화롭고 더 전체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면에서 들리는 사랑의 목소리”에 대한 더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그를 “나의 짧은 생의 울타리를 넘어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는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라르슈를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공동체를 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고통만이 그곳의 유일한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에는 축하, 친밀함, 동료애, 소속감, 가족으로 수용되는 기쁨이 있다.

즐거움과 슬픔은 이곳에서 서로 섞여있다. 다시 말하면, 즐거움이 슬픔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하다. 나웬은 이렇게 표현한다. “새벽공동체에 살면서 나는 많은 이들이 슬픔만 보는 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슬픔은 여전히 그 곳에 있지만, 어떤 것이 나를 변화시켜서 다른 사람들 앞에 앉아있게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공동체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나웬의 삶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나웬의 성공과 영광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과 아픔도 바라봐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이야기에 속하며 궁극적으로 은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나웬이 예수의 메시지라고 했던 메시지이다. 즉 “진정한 기쁨과 평화는 고통과 죽음을 우회하지 않고, 그것들을 정면으로 통과할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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