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프라이 하나에 오백 원, 두 개는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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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프라이 하나에 오백 원, 두 개는 공짜
  • 서영남
  • 승인 2020.06.0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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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하느님 나라는 월말에 주머니에 남은 반 유로와(1유로는 1,367원 정도입니다. 반 유로는 683원 정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운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산도 없이 하루하루 지냅니다. 모자라면 아끼고, 여유가 있으면 좀 더 나누고 그러다보면 월말에 이것저것 쓰다보면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 남아 있으면 다행입니다. 외상이 없으면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릅니다. 하루하루 스릴 만점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기대어서 17년도 넘게 살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단돈 천 원짜리 한 장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인데 마음들은 천사입니다. 정말 대책 없이 착합니다. 장난으로 손님에게 ‘달걀 프라이 하나에 오백 원, 두 개는 공짜’라고 주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열이면 열 ‘달걀 프라이 하나만 해 주세요’라고 대답합니다. 두 개는 공짜인데도 하나에 오백 원이나 하는 것을 주문합니다. 이유는 다른 사람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막상 달걀 프라이 하나 주문한 손님에게 오백 원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짜 음식인 달걀 프라이 두 개로 해 드립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을 VIP (Very Important Person)라고 표현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이 보내시는 손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식당을 열지 않고 오전 11시부터 도시락 꾸러미를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기다리면서도 줄을 서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띄엄띄엄 흩어져서 기다립니다. 줄을 서지 않으니 새치기도 없습니다. 서로 다투는 일도 없습니다. 기다리면서 있는 동안 체온도 재고 손 세정제로 손도 닦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없는 분에게는 마스크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도시락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노약자부터 차례대로 드립니다. 순서가 없지만 모두들 좋아합니다.

 

오늘 도시락은 꼭꼭 눌러 담은 밥, 생선튀김, 달걀장조림, 어묵볶음, 김치입니다. 그리고 도시락김, 사발면, 바나나, 초코파이 그리고 생수 한 병이 같이 들어간 꾸러미를 드립니다. 모든 손님에게 마스크 한 장씩 매일 드리고 있습니다. 재미난 연구소와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항상 우리 손님에게 새 마스크를 매일 나눌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코로나19 때문에 식당을 닫고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도시락 반찬의 단조로움에 지친 손님에게 6월 초부터는 식당을 열고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천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식당을 여는 것은 보름 더 보류하고 다시 도시락 꾸러미를 나누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계속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매일 200~1,000명이나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15일부터 강력한 봉쇄로 지금껏 있다가 다시 6월 15일까지 약간 완화된 봉쇄가 계속됩니다. 도시 간 이동을 할 수 없고, 대중교통도 중단되었고요. 미장원과 이발소는 문을 열지 못하고, 집회나 모임은 10명 미만만 모일 수 있으니 이번에도 아이들 급식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도 계속 휴교라고 합니다.

이제 필리핀은 우기가 시작될 텐데 걱정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 굶고 하루 조금 먹고 그렇게 연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 입국 금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6월에 들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장학금도 나누어야 하고, 쌀도 나누어야 하는데...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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