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이야기가 하느님 이야기, "가난과 고통의 상처에서 돋아난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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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가 하느님 이야기, "가난과 고통의 상처에서 돋아난 꿀"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5.25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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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5)

현재의 순간 속에서 거룩함과 행복의 길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현재 순간들의 연속 그 이상이다. 우리들의 삶은 그 전체를 덮는 궁형과 같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고통으로 점철된 이야기일 테지만, 고통이 그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질문, 즉 나의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하여 먼저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순간”에 제한하여 그 의미를 찾아본다면, 우리의 삶을 하나의 전체로서 보기가 어렵다. 고통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지독한 외로움, 어떤 공허감 밖에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자로의 누이, 베타니아의 마리아도 예수께 그렇게 불평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라자로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

그러나 나의 삶을 계속되는 어떤 이야기로 보고 어떤 차원에서 그것을 또한 하느님의 이야기로 믿을 때에, 나는 삶의 의미가 어떤 한 순간이나 또 다른 순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가장 좋은 순간이나 가장 나쁜 순간도 아니며, 이야기 그 전체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알게된다. 라자로는 죽었으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그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삶을 전체로서 보았던 첫 번째 사람이다. 자신의 삶이 흩어져있는 일화들의 연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이며 영적인 성찰의 대상으로서, 더 깊게 파고 들어가 숙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삶의 중추점인 회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본다. 이 빛으로 볼 때, 그는 그를 보살피고 행복을 향해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손길은 하느님이 그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던 도덕적,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도 그곳에 있었다.

하느님을 발견할 때까지 그는 행복을 우정, 쾌락,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식에서 추구했다. 그러나 이런 추구에서 성공했어도 그에게는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무엇인가가 빠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빠진 것은 확실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는 절대로 혼자 있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내, 저 멀리에서 당신의 자비는 충실하게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우리를 꽉 잡을 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 겪는 고통, 상실 혹은 배신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의 길이 닫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있음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우리의 희망과 계획의 좌절이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확실하게 보이는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전조라는 것을 신앙으로 배우게 된다. 성인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비록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을 길로 이끈다 해도, 인도하는 섭리가 있다고 믿었다.

 

까를르 까렛또(1910~1988)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 회원이었다. 44세에 그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그는 그때까지 이탈리아 가톨릭 청년운동의 유명한 지도자로 활동했다. 친구들은 사막으로 가는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행동과 치적이 아니다. 나는 너의 기도, 너의 사랑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 가난, 고독, 기도의 분위기 등 그는 이 모든 것을 빨아 들였다. 그러나 까렛또는 한가지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알프스에 작은 형제회 공동체를 만들고 산악인들을 위한 구조팀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 꿈은 눈사태처럼 쓸려가 버렸다. 사막을 걷던 도중, 그의 친구가 그의 넒적다리에 주사를 잘못 놓아서 하루밤 사이에 다리를 못쓰게 되었고 일생을 절룩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까렛또도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느님이 용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는 여기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왔는데, 그분은 나를 골탕먹이고, 절름발이가 되게 해버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후, 그는 그 실수가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운이 나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것을 은총으로 바꾸셨다.” 그는 지프 차를 얻어 기상학자가 되었다. “내 의사하고 상관없이 나는 내가 속한 곳에, 사막에 있었다. 눈 속을 걷는 대신, 모래 속을 걷고 있다... 불운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던져주었다.”

까레또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비탄과 절망 속에서 그를 끌어내어 새로운 수용의 상태로 데려간 은총에 계신다. 선이 악으로부터 올 때, 신앙의 눈은 그것이 하느님의 실수할 수 없는 징표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의 발길은 고통을 우회하지 않는다. 까레또는 가난과 고통의 상처가 특별하고 매우 소중하며 달콤한 꿀을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가 산상에서 선포했던 진복팔단이라는 꿀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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