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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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방법은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5.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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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4)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증한 고통에 대한 위로책 중 하나는 이것이다. 만일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변형시킨다면” 고통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에크하르트는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나는 평온해지고 완전히 행복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역사를 보면 많은 설교가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그런 충고를 강요해 왔다. 그런 충고가 인간의 행복을 더 증가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대안들이 없을 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진, 가뭄, 전염병이 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가난의 고질화, 에이즈 환자들을 보면서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견뎌낼 힘을 받든가 아니면 하느님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적 체념을 대신할 대안이 있다. 쟝 삐에르 꼬사드는 그의 책 <거룩한 섭리에의 의탁>에서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함께 찾아보자고 한다. 꼬사드는 매일의 모든 행위가 갖고 있는 영적인 차원을 지적한다. 즉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 의무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깃든 영적인 차원에 대하여. 모든 행위들은 그 순간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사”다. 그러한 사실에 늘 깨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의 경험이 지니고 있는 거룩한 심연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고통받을 때 특히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도전은 우리의 영적인 자세가 바깥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가지는 것이다. 매우 심각한 불행 한가운데에서조차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있다. 우리가 불운의 베일을 뚫고 어떤 변하지 않는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신앙에 의해서이다.

꼬사드가 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옆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도둑의 경우를 그 예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의 외적인 상황은 똑같았으나, 내적인 자세는 알다시피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첫 번째 도둑으로 하여금 회한과 증오의 태도를 취하게 했고, 두 번째 도둑은 그의 조건을 넘어 영원과 만나게 된다.

꼬사드는 단지 이렇게 주장한다, “하고 있는대로 계속하면서 인내해야만 할 때 인내하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할 때, 당신의 태도를 변화시켜라.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하느님이 청하시는 모든 것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꼬사드의 이런 주장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은 방문회 수녀들이었고, 그는 그들의 영적 지도자였다. 그렇다면 그런 수녀들이 삶의 잔인함, 역사의 암흑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대혁명 때, 옷을 벗기우고 단두대로 행진해 갔던 사람들은 바로 그런 수녀들이었다.

그러나 고통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매우 우둔한 소리로 들린다. 대학살 속에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계무역센타 붕괴 속에? 캄보디아인들의 몰살 속에? 이런 폭격 속에? 한 아이의 고통 속에?

그런데 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 말이 단순히 일어나고 있는 나쁜 일들을 합리화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어떤 상황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도전으로, 모든 상황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도전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의 뜻”이란 우리의 운명에 대한 축복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숨겨진 도전은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응답하라는 것이다.

영국의 여의사인 쉴라 캐시디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도전을 발견했다. 1970년대 초기에 칠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던 그는 군사쿠테타에 이은 폭력적 탄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한 부상당한 혁명가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문을 당했고, 수용소에 갇혔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사라져갔다. 캐시디의 경우, 국제적인 압력으로 석방되어 칠레에서 추방되었다. 회고록에서 캐시디는 고문의 힘이 자신을 두려움과 공포로 너덜너덜해진 공처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 시달리는데, 단지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존재들이 서로에게 어디까지 극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를 알게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고문이 그쳤을 때, 제일 먼저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철창에 매달려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애원하며 영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빈손을 탄원보다 봉헌으로서 하느님께 뻗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를 나가게 해 주세요’ 라기 보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제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무력함과 감금 속에서 남은 것이 하나있다면 그것은 자유였다. 즉 하느님의 손에 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자유였다.”

이 기도의 효과는 그의 태도를 즉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필요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상황을 직면케 한 점차적인 과정으로 나타났다. 캐시디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의탁의 선택은 상황의 굴레에 빠져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선택이며, 갇힌 사람들이 그들의 굴레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새장 속의 새처럼 그들은 철창에 날개를 부딪치면서 소진되는 선택을 하거나,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마침내 놀랍게도 그 안에서 노래부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정치범의 상황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에 캐시디는 영국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며 칠레에서의 경험으로 불치의 암환자들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환자들의 절망적인 질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나입니까?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우리도 회한과 절망 속에서 힘을 소진시키며 철창에 우리의 날개를 때리든가, 아니면 마리아의 기도(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우리의 기도를 합쳐서 노래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죽음이 아니라, 이 날 그분과 함께 있는 것, 말하자면 낙원에 있는 것임을 신뢰할 때 할 수 있는 기도이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의 저자인 미국의 예수회 회원 월터 취제크 신부도 이와 비슷한 자유와 평온함의 경험을 했다. 그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23년을 살면서 수 차례 죽음과 직면했다. 그가 경험한 잔인함과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가장 큰 고통은 그가 자기운명의 부당함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싸우게 됐을 때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만큼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때에 자유와 평화를 느꼈다. 그의 시련은 의미를 갖게되었다. ­동료 죄수들에게 영적인 위로를 주거나, 사제직분을 수행할 때, 혹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할 할 때에. 그럴 때 그는 “즐거움, 하느님만 신뢰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신앙에 대한 확신”을 경험했다.

취제크 신부는 후에 상황이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은 큰 유혹이라고 했다: “이런 삶은 내가 기대했던 삶이 아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도 이런 유혹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위로는 항상 “하느님 뜻”을 믿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의 하느님의 뜻이 아니며, 우리가 그렸던 대로가 아니고, 우리 인간의 빈약한 지혜에 적합한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의 뜻이고, 매일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창조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뜻이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은 매일의 24시간이다. 그때에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 장소, 사람들 속에 있다. 그순간 그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 보시기에 중요한 것이며,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바라시는 바로 그것들이다...”

쟝 삐에르 드 꼬사드의 주장은 씨스체크 신부의 경험으로 증명되었고, 다음의 내용이 신심적인 이상주의가 아니라 생생한 삶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하며 모든 것을 이끄신다. 이 사실을 모든 상황과 모든 조건 속에서 식별하는 것,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알아본다는 것은 모든 상황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완전한 신뢰와 확신 속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를 그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분은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가 겪은 시련에 대해 쓰면서 취제크 신부는 아무런 회한이나 후회의 자취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경험은 매우 독특하지만, 그가 배운 교훈들은 모든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취제크 신부는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구원은 매일 그리스도의 같은 십자가를 지고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아침 하느님께 모든 기쁨, 모든 일, 그리고 그 날의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 다시 봉헌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감옥에서도, 시베리아 노동수용소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행복의 비밀은 단순히 매순간을 목적과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었고,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 속에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발견하기로 결심했으며 대면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추구는 헛되지 않았다: “삶에서 신앙의 진실을 믿고 매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평화를 알 수 있는 사람, 더 투신할 수 있는 사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게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위하여 다만 직접 해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볼 때에 당신은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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