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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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죽어도 좋다
  • 조희선
  • 승인 2020.05.18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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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드는 오후의 한가로운 찻집에서였다. 그가 문득 물었다. "행복이 뭘까?"

실실 말장난하면서 시간 보내기 딱 좋은 물음이었지만 그러나 얼마 전까지 전쟁 같은 사랑(?)을 치러내느라 초췌해진 그에게는 왠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여자를 알았고 그는 이 여자 때문에 가정과 자신이 천직이라 여기던 직장마저도 때려칠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준 섹스의 기쁨, 그것은 마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쁨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끝내 그녀를 선택하지 못한 것은 가정이 주는 안락 그리고 직장이 주는 사회적 신분의 보장보다도 정말 이것이 나의 행복일까 라는 생각에 확신할 수 없었고, 언젠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행복이라~~~"

문득 언젠가 보았던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예수가 사탄의 유혹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그렇게 일생을 살다 죽음의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쳐 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비통함과 절망감. 그리고 다시 십자가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직 십자가를 질 기회가 남아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가 갖는 기쁨과 환희.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보면 예수는 분명 기쁘게 십자가 위에서 죽거든. 난 그가 참 행복해 보였어. 아마도 행복은 자기 존재의 근원과 맞닿는 어떤 사인(sign)이 아닐까?" 그는 그것이 분명 자기 생에도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잡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그건 그냥 어느 순간 제 발로 찾아오는 거지. 그래서 행운이라고도 하잖아"

행복!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내던져 버릴 수 있는 유혹의 힘.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삶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조차도 하찮게 여기게 하는 그 무엇. 진정 행복이라는 그 전율에 젖어 있던 그래서 죽음의 문을 춤을 추며 들락거리던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오월 광주.

 

나는 그 경이롭고 찬란한 경험을 나에게 허락해 준 그 오월을, 그 광주를 사랑한다. 내 생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 그렇다고 내가 뭐 그날에 피를 흘리고 싸웠다거나 하다못해 주먹밥이라도 쌌을 거라는 생각은 마시라. 나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총소리가 날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고 무서워 길거리에도 나가지 못하던...... 그러나 오월은 그런 나에게도 여전히 빛으로 존재한다.

대동(大同)!!! 우리가 하나라는 그 의식의 확장. 그리고 행복에 도취되어 있던 진정한 사람의 모습. 물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구별하고 분열된 자아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그날들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으로 내 비릿한 삶을 손짓하고 있다.

그때, 내 가족 중 한 분이 거기에 깊숙히 연루되어 있었음은 내게는 행운이었다. 나는 그 분을 통해 도청의 마지막 밤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고, 그 다음날 죽음의 행진을 할 때의 그 금남로의 아침을 그분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는 급박함 속에서 그 분이 본 것은 깨끗하게 청소된 금남로 거리의 정갈함이었다. 아마 그 분은 거기서 그 너머를 보셨던 것 같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 그것들이 이미 하나인 그 세계의 평온함. 그 이야기를 하실 때 그분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자신 안에서 녹아내리던 평화, 어떠한 상황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던 그 절대의 세계가 주던 고요. 그리고 얼마간의 도피생활과 감옥생활을 하신 후 드디어 집으로 돌아 오셨을 때도 나는 여전히 그 분의 눈빛에서 그 감동을 엿보았다.

"나는 감사한다."

잇몸이 다 들뜨고 쥐면 바스라져 버릴 것 같은 허약한 육신이 담고 있던 그 충일한 만족과 감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치나 이념, 옳고 그름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고 그리고 그냥 그것과 함께 그분은 "있었다." 그분이 일생동안 신을 통해, 진리를 통해 선을 추구하며 그 자신의 삶을 통해 기다리던 그것을 비로소 만난 것 같은 기쁨. 마치, 내 눈에 그분은 행복에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비단 그 분만이었을까. 나는 참 이상했다. 그 죽음과 불평등, 공포와 두려움, 억울함 속에서 오히려 열에 들뜬 듯 광주를 휘돌던 기류. 그것은 축제의 분위기였다.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린 상황에서 비어가는 쌀독을 걱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쌀을 덜어내며 신나 보이시던 어머니. 한 골목에 살면서도 주류와 비주류처럼 나뉘어 서먹하던 형사 아내가 우리 집을 찾아와 자기도 보태고 싶다며 돈을 내밀고 갈 때 "고마워..." 손을 맞잡아 주시던 어머니의 그 표정. 당신을 위한 일이었다면 그토록 기뻐하지 않으셨으리라. 오히려 화를 내며 뿌리치셨겠지.

거기엔 분명 나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고 다들, 그 바람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위협하는 그 폭력의 거리를 걸어 헌혈을 하러 병원을 찾는 사람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건만 누군가가 붙잡혀 곤봉으로 맞을 때면 왜 위험을 자청하며 달려들었을까. 그들을 사로잡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조차 두렵지 않도록 그들을 몰아세우던 그 어떤 힘.

어느 날, 바람이 죽음의 휘장을 살짝 걷어낼 때 거기 분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우리가 결국 하나라는 그 근원의 웃음. 행복이란 어쩌면 너와 나의 벽이 균열될 때 거기서 새어나오는 그 너머의 빛 같은 건 아닐까. 그리고 우리 곁에는 그 빛을 향해 죽음의 경계를 넘어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죽어도 좋다고....

 

조희선
시인. 진도 지산면 거주.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사랑이 말하지 않았다> <아직 이곳은> 등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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