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에서 달그락 소리가 요란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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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에서 달그락 소리가 요란하다면
  • 박철
  • 승인 2020.05.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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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맑은 샘물에 얼굴이 비치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우리의 참 모습을 비추는 것이다. 침묵하는 시간은 우리의 속사람을 살찌게 한다. 우리의 내면적인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벙어리가 아니라고 소리치고, 내가 이만큼 안다고 떠드는 동안, 실은 자신이 올라가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얼간이가 되며 주책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외부적인 소음 때문이다. 이러한 저질 문화의 홍수에 맹종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질서를 갖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가능한 적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충분할 때는 두 마디를 피해야 한다. 인류역사상 사람답게 살다간 사람들을 한결같이 침묵과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현대인의 특징은 조용히 사색하고 명상하며 기도하는 침묵의 시간을 잃은데 있다. 그 시간을 잃어버림으로 천박한 생각, 얕은꾀만 늘었다. 그 천박하고 얄팍한 생활을 살아가려하니 스스로 자신의 올무에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약은 사람이 늘 잔꾀에 넘어진다.

 

사진=박철
사진=박철
사진=박철
 2018년 11월 이스라엘 유다광야에서 (사진=박철)

사람들을 만나 떠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렇게 마음이 공허하고 허전할 수가 없다. 공연히 지껄여 댄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은 말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선조들의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의미 없이 쏟아놓는 말보다는 무언(無言)이 향기롭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할 바에야 아예 말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표현력과 발표력으로 지식의 척도가 측정되는 요즘, 말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을 못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을 잘한다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는가?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수한 표현력을 구사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농도 짙은 말을 아껴서 하는 것일 게다. 또한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 말이 현실성을 담고 있을 때이고, 표현된 말이 진짜 가치를 발휘할 때는 그 말에 책임이 따를 때이다.

병에 물을 가득 채우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을 반쯤 채우면 소리가 난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30리 길을 통학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다 먹고 책보에 싸서 메고 돌아오면 '달그락'하고 소리가 난다. 뛰면 '달그락 달그락…' 더 요란한 소리를 낸다.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이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많은 말을 쏟아내고 만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텅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잘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다. 늘 변한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우리 안에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이 움튼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잡다한 지식의 홍수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또는 여행길에서도 우리는 조용히 자기의 내면을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이레네우스 사상가가 "내가 말한 다음 후회한 적은 있어도 침묵을 지킨 것을 후회한 일은 없다"고 했다. 가톨릭 수도원에서는 연학수사들에게 침묵훈련을 시킨다. 신부들은 1년에 한 차례 개인피정을 하면서 하루 동안은 하루 종일 침묵하는 수행을 한다고 한다. 참 좋은 수행방법이다. 인도의 간디는 월요일은 "침묵의 날"로 정해놓고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용히 자연을 산택하거나 침묵의 훈련을 했다고 한다.

위대한 사상, 위대한 인격과 신앙은 침묵의 산물이다. 야고보 선생은 "혀를 재갈 물리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리는 사람이다"고 했다. 침묵하기를 배운 사람은 자기 인격과 삶을 통제하기를 배운 사람이다.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떠들어대고 자기를 선전한다. 참 높은 인격, 참 무게 있는 사람은 함부로 입을 벌려 떠들지 않는다. 침묵 속에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한다. 침묵은 말보다 강하다. 나는 가끔 설교를 할 때마다 차라리 침묵으로 이 시간을 메웠으면 하는 때가 있다. 공연히 진리를 설명하느라고 긴말을 하다보면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값싸게 만들고 왜곡시킬 때가 있기 때문이다.

"최상의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괴테) 진리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설명하다보면 비슷한 모조품이 된다. 시방 나는 숲속에 들어와 있다. 두어 시간 숲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시방 나는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제대로 걸어 왔는가. 사람들에게 말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본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가급적 말을 적게 하고 그러나 따스한 가슴은 지니고 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박철 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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