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길 사는 선희 누나, 땔감 해줄 남정네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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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길 사는 선희 누나, 땔감 해줄 남정네도 없이
  • 한상봉
  • 승인 2020.05.1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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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40

귓전에 음악소리가 들린다. 휴대전화에 입력된 모닝콜이 울리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기계음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그 덕분에 눈을 뜨면 아직 아내와 아이는 자고 있고 창문 밖은 여전히 컴컴하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눕는다. 담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남아 있는 온기에 감사하며 다시 잠이 든다. ‘겨울은 노동하는 인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신념을 재차 다짐하는 시간이다.

어느 책에선 겨울에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일찍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나는 게 자연의 순리에 맞는다고 적어놓았다. 지당한 말씀이다. 방안에 햇볕이 깊숙이 배어들어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그래도 따뜻한 온돌에 대한 예의상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눈을 뜨고 누워서 창호지에 비치는 문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하루를 맞이하는 거룩한 나의 예식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행복인가? 그게 시골 사는 사람의 특권이라면 다행한 일이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였다. 아 참, 오늘 아침 10시에 약속을 하나 잡아두었는데 깜빡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섯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작업복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며 불러 세우는데 나중에, 나중에 하며 자동차에 시동부터 걸었다.

 

능길마을에 혼자 사는 선희 누나네 집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보다 한 1년쯤 뒤에 귀농한 누나인데, 마을에서 빈집을 얻어 살고 있다. 며칠 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땔감이 떨어져 진안읍내에 있는 제재소에서 통나무를 켜고 남은 피죽을 사와야 하는데 차편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구들방을 가진 사람에게 땔감은 어쩜 양식보다 귀할지 모른다. 마당쇠 같은 남편이나 남동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여자들이 산에서 삭정이나 잔가지만 긁어다 아궁이를 덥힌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늘은 그 누나랑 피죽 사러 진안읍내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늦게 도착해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외출준비를 끝내고 마당에 나와 있던 누나는 엊그제 낳았다는 강아지를 구경시켜 주었다. 고물고물한 강아지 다섯 마리가 개집 안에서 서로들 머리를 처박고 자고 있다. 누나가 워낙 지극정성이라 그 집 개들은 정말 혜택받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안에 도착하자 먼저 등기소에 들렀다. 얼마 전에 누나는 산골짜기에 4백 평 정도 되는 밭을 싼값에 샀는데, 그 등기필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봄에 열 평 남짓한 흙집을 그곳에 짓겠다는데 민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산골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골짜기에 집을 짓겠다는 발상이 대단해 보였다. 전력회사에서는 다섯 가구만 들어오면 전기를 놔줄 수 있다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누나는 그 골짜기 풍광이 대단하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꼬드긴다. 걱정은 걱정인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잘 되겠지,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누가 먼저 문(門) 하나를 열면 다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궁벽한 시골집에 살면서 땔감 해줄 남정네도 없이 공공근로를 나가서 벌어들인 약간의 돈으로 살면서도 그야말로 ‘낙천적으로’ 생애를 살아내는 누나는, 등기소에서 나오는 틈에 과자를 사서 운전하는 내 입에 넣어준다. “이거 맛있는 거야, 오리온 다이제!” 차만 타면 과자가 먹고 싶어진다는 누나는, 군내버스를 타도 항상 여행가는 기분으로 일상을 즐기는 편이다. 예전에 나오던 다이제스트는 이 과자보다 더 크고 맛있었다며 서운해하는 누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피죽 한 차를 사서 집 앞에 부려놓고 점심 대접을 받았다. 천장이 낮고 비좁은 방은 원래 주인이 쓰던 장롱을 빼면 책이 두어 권 얹혀 있는 앉은뱅이 책상이 가구의 전부다. 벽에는 헤르만 헤세의 복사판 사진 두 장과 깨알같은 글씨로 묵상거리를 옮겨 적은 메모지가 여럿 붙어 있었다. 내가 알기로 개신교 신자인데 벽에는 십자고상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 환하게 웃고 계시는 가시관 쓴 예수님 초상이 붙어 있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예전에 민중교회를 다니면서 빈민탁아소 일을 하였다는 누나는, 만사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면서 남은 삶을 채워가고 싶다고 했다. 마음 한번 바꾸면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말이 누나에겐 꽤 설득력이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누나는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하 호호 살고 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누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만, 누나를 보면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던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여기서 이뤄지고 있음을 예감한다. 가끔 오버액션을 할 때는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있지만,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이의 장점이다.

“상봉씨 고마워” 하는 누나의 말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다. 머그잔에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고, 며칠을 두고 도끼로 패놓은 장작을 툇마루 밑에 쌓아놓고, 아직도 남아 있는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토막냈다. 이것마저 도끼질을 하고 나면 당분간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아랫동네 앞산에 간벌하는 곳에서 상당히 많은 나무를 얻어 왔는데 대부분 낙엽송이다. 낙엽송은 완전히 마르기 전에 패야 잘 쪼개지고, 수분이 다 빠진 낙엽송은 못질도 잘 안 될 정도로 단단해진다고 한다. 장작을 팰 때도 무작정 하는 게 아니다. 나이테 간격이 촘촘한 쪽은 육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나이테가 넓은 쪽으로 도끼날을 대야 한다. 나무토막을 세워놓고 팰 때도 패야 할 지점을 잘 가늠하고 힘의 균형을 잡은 상태에서 ‘헛! 헛!’ 하며 기합과 함께 도끼를 내리쳐야 장작이 제대로 쪼개진다.

예전에 검(劍)을 배우고 싶어서 함양에서 해동검도를 오랫동안 수련한 선배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목검을 하나 주어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때 기본자세도 조금 배웠는데, 기본자세를 취하는 것 자체가 몹시 힘들었다. 태극권에 관한 교본도 한 권 샀지만 아직까지도 검술을 배우지 못한 채 목검은 폼으로 방 한구석에 모셔두고 있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목검 생각이 난다. 마치 대단한 무예라도 하는 듯이 기합을 넣으며 도끼질을 하다 보면 대리만족 같은 걸 경험한다. 말 그대로 정신집중에 도끼질만한 게 또 어디 있으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가다가 장작더미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마을 어른들이 쌓아놓은 장작들은 어쩜 그렇게 굵기도 고르고, 켜켜이 단아하게 쌓여 있는 것일까?

수십 년 동안 쌓은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작더미 앞에서, 무예의 고수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동작처럼 장작을 다루는 촌부들의 솜씨 역시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도끼질 하면서 장작이 쪼개지는 게 아니라 나무가 옆으로 퉁겨 나가거나 짓뭉개지는 걸 볼 때마다, 무예의 길은 멀기만 하다는 생각을 한다. 도끼질 한 번에 반쪽으로 쫙 쪼개지는 장작을 보기 위해 먼저 딴생각 물리치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데.

아내가 결이 손을 잡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현빈이 엄마가 결이 머리를 잘라주었다고 한다. 이른바 바가지 머리였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결이는 영현이를 데리고 와서 장작더미 위에 앉아서 놀고, 그 모양이 예뻐서 나는 얼른 들어가 사진기를 들고 나온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부동자세로 앉아서 노는 아이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면서 놀아야 하는 게 아이들 생리라면, 아이들을 꼼짝없이 부동자세로 만드는 기계는 얼마나 못된 물건인가? 그것도 몸의 특정한 부분, 손가락과 눈만 집중적으로 혹사시키는 놀이란 놀이가 아니라 노역이 아닐까?

컴퓨터가 있어도 인터넷이 안 되고, 텔레비전이 있어도 나오는 채널이 없는 난시청 지역의 산골은 불편하긴 해도 아이들에겐 안전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본래 텔레비전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라디오로 음악을 즐길 시간을 얻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찾느라 머리가 좋아질 것이다. 저녁엔 뒷집 영미씨가 찾아와서 아이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김추자의 ‘꽃잎’ 노래도 듣고, 조영남 노래에 맞추어 춤도 추었다. 나는 항상 구경꾼이지만 좁은 방에서 아내와 영미씨와 아이가 춤출 때, 나도 마음으론 춤을 추고 있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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