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절반 오리나무, 춤이라도 추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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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절반 오리나무, 춤이라도 추자나무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0.05.06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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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무를 보다, 신준환, 알에이치코리아, 2015

내 생애의 두 번째 집을 가졌다. 가톨릭노동청년회 선배들이 만든 의자공장에서 일하다 결혼하면서 처음에 얻은 집은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노동사목에 일하면서 부천 여월동 전셋집과 부평 갈산동 13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을 거쳐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으로 일할 때는 서울 상계동 산동네에 살았다. 포장이사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에 매번 이사할 때마다 전쟁이었고, 책보따리는 애물단지였다. 일일이 끈으로 묶어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0년 가을 드디어 빚 한 푼 없이 내 집을 가졌다.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의 해발고지 500고지 산중턱에 올라앉은 농가주택은 나름 아늑했다.

다랑이 논은 재 너머 임도를 따라 한참 올라가야 있었고, 밭은 급경사여서 농사짓기가 쉽지 않았지만, 집 툇마루 앞에는 작약이 눈부셨다. 텃밭에 채소를 심어 끼니때마다 끊어 먹었다. 고생스러웠지만 삶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경운기를 타고 저수지로 놀러가고, 농사철이면 늘 장화를 신고 장을 보던 시절이었다. 전축에선 안치환이 부른 ‘지리산’이 흘러나오고, 윗집 처자는 국악방송으로 김소희 명창의 구음(입소리)을 듣는다. 아랫집 처자는 마야가 부르는 ‘진달래’를 따라 불렀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6년 만에 탈농해서 토함산이 창으로 보이는 불국사 앞 아파트에서 1년, 경주국립박물관 건너편 논 한가운데 있는 주택에서 3년을 살았다. 앞집 암자의 비구니 할머니의 독경소리와 박물관에서 들려나오는 에밀레 종소리로 아침을 시작했던 시절이다. 그러다 전 재산 4천만 원을 쥐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건 꼭 십 년만이었다. 서울에선 이 돈으로 반지하 방도 구하지 못했다. 나이 40대 중반이었는데,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17평 빌라를 얻었다. 근처에서 한 번 더 다른 빌라로 이사하고, 일산 주엽동에서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내 경험으론 주거환경으로 경기도 일산이 최고였다. 아파트 사이로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산책로가 있고, 호수공원은 사람의 숨통을 열어놓는다. 다만 불편한 것은 계약 때마다 상향조정되는 전세금이다. 결국 전세보증금에 월세를 얹어 살다가 파주 외곽에 내 집을 짓기로 했다.

땅값과 건축비 절 반 이상을 대출받기로 했다. 주택담보대출금은 30년 동안 균등분할로 갚아 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여든일곱 살까지 은행 빚을 갚으면 된다,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지 모르지만. 아무튼 자기 집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 생각대로 집을 짓고 내 마음으로 고치고 늘이고 마당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주도권을 지닌다는 것은 아파트 생활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한 달 동안 마당을 손보았다.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심정이었다. 나무 하나를 심더라도 사방팔방에서 가늠해보고서 자리를 잡았다. 아늑하면서 트인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목공기술과 나무의 생리를 알아야 했다. 담장을 치고, 화단을 만들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대문에는 넝쿨장미를 올리고, 주차장 자리엔 능소화를 심었다. 마당 바깥쪽으로 대봉 감나무와 살구나무와 피자두나무를 심었다. 마당 안쪽엔 앵두나무와 복자기 단풍, 체리나무를 심었다. 돌무지 앞에는 영산홍을 심고, 이어서 매화나무와 목련, 공작단풍나무를 심었다. 오늘 주문한 나무들이 오면 마당 가운데 배롱나무와 로켓향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화단에는 작약과 모란, 해당화와 수국, 산수국을 심었다. 지금 백합과 튤립이 싹을 올리고 있다. 수선화와 바람꽃과 잔디꽃과 송엽국, 메리골드와 이메리스, 마가렛, 팬지가 피었다. 빈터에는 접시꽃과 수레국화, 채송화, 양귀비 씨앗을 묻어두었다. 해바라기는 포트에서 모종을 하고 있다. 앞으로 맨드라미와 과꽃과 봉선화도 심어볼 생각이다. 딸아이는 “이러다 마당이 터져나가는 것 아니냐”며 웃는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성찰하는 나무

다락방에서 국립수목원장이었던 신준환 선생이 은퇴하고서 펴낸 <다시, 나무를 보다>라는 책을 꺼냈다. 예전에 사두었지만, 표지만 보고 들추어보지 않았던 이 책이 지금은 달게 읽힌다. 나무를 보며 인생을 읽는 책이다. 그분은 머리말에서 “나는 평생 나무처럼 살았다. 햇빛이 들면 놓치지 않고 가지를 뻗었고 물이 스며들면 주저하지 않고 뿌리를 뻗었다. 그렇게 책이 있는 곳으로, 공부를 활 수 있는 곳으로 몸을 키워나갔다.” 그분이 첫 글에서 적어놓은 문장은 책 전체를 요약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도 그만큼 내려앉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도 그만큼 떨린다.
고요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의 힘”

나무를 통해 제 삶을 성찰 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신준환 선생은 2014년 여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유란 우리가 하고 있는 바를 반성할 줄 안다는 말이고,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듯입니다. 우리는 선(善)을 위해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무의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한다.

“나무는 늘 자신을 내려다보며 성찰하는 자세로 커나가고 그렇게 홀로 자라 숲을 이루며 많은 생명을 선하게 키운다. 고목은 그냥 서 있어도 환하다. 잎도 별로 없이 어둑한 색으로 산중에 홀로 서 있는 고목을 보고 ‘환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고목은 다른 나무들이 그리하는 것처럼 가지를 뻗으려 다투지 않고 잎을 내려고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고목은 자유롭고 다른 나무보다 밝고 환하다.”

신준환 선생은 힘이 들 때는 나무를 찾아가라고 권한다. 나무를 보는 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이라면서, 나무줄기의 강건함이 나의 여정을 위대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숲으로 달려가 당장 나무를 만나볼 여건이 안 된다면 가슴속에 나무를 키워볼 수도 있다고 했다. 스스로 나무가 되어 본다면 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도대체 나무가 왜 이리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는지 더 읽어 본다.

“나무는 누구나 정중하게 기다린다. 신단수는 사람을 기다리고 고목은 달빛을 기다린다. 나무는 눈과 비가 오는 사이에 자란다. 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나무는 가끔씩 하늘에서 별을 퍼나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무는 강물과 강물이 합치듯이 가지와 가지를 뻗어 하늘로 길을 낸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결 밀어내듯 작년을 밀어 넣고 오늘이 되며 매번 새 나무가 된다. 매번 새로운 세계를 열어낸다. 우주는 단 한 순간도 과거와 다르다. 늘 새로 난다.”

이번에 묘목을 여러 그루 심으면서, 돌처럼 굳은 피질을 뚫고 싹이 돋는 걸 보고 참 놀라웠다. 예전 것은 다 털어버리고, 하늘아래 새것을 내어놓는 나무라니. 좀더 시간이 지나면, 이 싹이 돋고 돋아 꽃을 피우고 이내 나무의 알몸을 잎사귀로 덮을 것이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나무, 어떻게 얼마나 깊어질 것인가

신준환 선생은 단풍을 보며 “어느 깊이까지 들어가야 나를 보는 것일까?” 물었다. 봄에 삭이 돋아 햇빛을 받으며 크던 나무는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며 스스로 빛나기 시작한다고 했다. 사실 단풍이 빛나는 것은 빛이 없어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잡다한 고집을 버릴 때 지혜가 빛나듯이, 없어지는 것을 알 때 빛이 나는 것이다. 열매도 맺고 할 일도 끝났으니, 광합성 담당자인 엽록소가 없어지고 그동안 가려져 있던 카로틴,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초록빛은 없어지고 뒤에 있던 노란색이 드러나며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샛노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아울러 생명을 주창하던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나무의 생명 기획이 보인다고 했다. 낙엽이 진 후 드러나는 줄기와 가지의 뻗음은 이제까지 나무가 일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는 골조라는 것이다. 겨울숲에 가보면 안다. 그제야 잎사귀에 가려졌던 나무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 적막한 숲에서 우리는 우주의 율동을 감지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고려시대 보우 스님은 “고요하면 천 가지가 나타나고, 움직이면 한 물건도 없다”고 했다. 겨울숲처럼 나의 내면이 고요해지면, 한용운의 시구처럼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인가” 묻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며 이어령이 썼던 시가 떠올랐다. 그이는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우주가 흔들린다”고 노래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침묵하면 보이는 것

경북 예천에 ‘말[言]무덤’이란 게 있다고 한다. 한 마을에 김녕 김, 밀양 박, 김해 김, 진주 류, 경주 최, 인천 채 씨 등 여러 성씨가 살았는데 각 문중끼리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큰 싸움으로 전지는 일이 잦아서 고민이 깊을 때, 어느 나그네가 지나가다가 마을의 산세를 보고 한 마디 던졌다.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요, 우백호는 구부러져 위턱의 형세라. 개가 짖어대니 마을이 항상 시끄럽겠구나.”

이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주둥이 모양이어서 ‘주둥개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인 논 한가운데 바위 세 개를 세우고 앞니 위치에는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 두 개를 세운 뒤, 모두 사발 하나씩을 가져와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을 뱉어 담고는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때부터 마을에서 싸움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이웃 간에 두터운 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신준환 선생은 “말을 하는 자가 항성처럼 빛을 뿜는다면 침묵하는 자는 블랙홀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며 숲이 조용하기 때문에 우리 시선이 숲 안으로 빨려드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집이나 나라, 세계만 생각한다면 떠들 수도 있겠지만 우주를 생각한다면 기꺼이 침묵할 것”이라 했다. 나무가 서 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로 흔들릴 때, 이 사이를 바람이 지나간다고 했고, 그 바람은 저 멀리 태양에서 온 율동이라 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서로 상처를 줄 때, 이 말 때문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려면 침묵하는 것이 낫다. 그래도 분노가 쌓이면 묵언하라고 신준환 선생은 권한다.

“침묵은 상대가 요청하지 않으면 말을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드는 것이고, 묵언은 상대가 요청해도 말을 하지 않고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침묵하면 세상이 보이고 묵언하면 내가 보인다. 묵언을 하며 정신이 침전하여 영혼에 가닿기를 바라고 조용히 있으면 분노도 가라앉고 반가사유상의 미소가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아름다운 미소는 수모와 고난을 겪은 영혼이 아니고서는 우려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 앞에서는 수모와 고난도 삶의 축복이 된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나머지'의 생태적 미학

한편 신준환 선생은 숲의 생태를 통해 ‘나머지’의 소중함을 각성시킨다. 숲의 에너지는 99퍼센트가 ‘지엽적’(枝葉的)이라는 말이 뜻하는 가지 끝 이파리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한편 이파리들이 땅에 떨어지면 분해하여 나무에 다시 영양분을 공급하고, 산림생태계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 역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미생물은 ‘나머지’ 축에도 끼지 못하겠지만, 사람도 죽고 나면 이런 미생물 집단에 넘겨진다. 그러니, 숲에서 사람은 온갖 미물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참새 같은 작은 새들도 마찬가지다. 참새들은 가시 많은 덤불에 날아들어도 깃털 하나 다치지 않는다. 가시덤불이 마구 엉켜있어도 참새들은 찾아오고 날아드는 길을 안다. 같은 새라도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와 숲 바닥을 날아다니는 새, 하늘을 나는 새는 먹이와 행동습성이 다르다. 신준환 선생은 “숲은 이런 나머지들이 낸 무한의 길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 삼라만상만큼 펼쳐지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게 살아있는 것들이 저마다 고유한 길을 날아 살아남는 실용적이며 생태적인 미학이다.

그래서 신준환 선생은 “나무 이름도 함부로 말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문강목과속종으로 다양하면서도 같은 이름을 가진 나무들도 나름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나무 소나무 하지만 숲에 가서 보면 각각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나무 이름만 외워서 당연한 것처럼 무심하게 말하면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너와 나의 이름을 무시하고 황인종이라거나 흑인이라고 무시하는 거와 같다고 말한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몸으로 산다는 것

코로나19로 더더욱 집에 붙들려 살았던 지난 두어 달 동안 마당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삶이 적적하고 신산했을까 싶다. 처음엔 마당에 작대기 하나 꽂아놓은 것 같던 나무에서 움이 트고 앵두나무처럼 연분홍 꽃망울이 터지는 것도 있었다. 복자기 단풍은 거친 마디를 트고 나오는 싹조차 아름답다. 흙을 만지고 또 만지고 마당을 서성이는 동안 엄지손가락 마디가 터서 갈라지곤 했지만, 톨스토이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남긴 글은 거친 손을 오히려 칭찬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쓰레기를 나르거나 뒷간 청소를 하는 것이 부끄럼이 아니라 동포에게 그것들을 마르도록 뒷간통과 쓰레기통을 채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허름한 신발을 신고 손님으로 지나가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고 신발 없는 이들의 옆을 고급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외국이나 최근의 일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빵을 먹으면서 빵을 만들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더러워진 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다. 꼭 필요한 때만 글을 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집안 청소부터 시작한다. 고양이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었다. 아침저녁으로 꽃밭에 물을 주고 나무들에게 눈을 맞춘다. 책을 읽지 않아도 글을 쓰지 않아도 할 일이 지천이다. 일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맡아하면서, 집안 일이 이리 손 갈 데가 많은지 새삼새록 알아간다.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걸 알아간다. 책에서 읽은 인생을 집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마당에 나무 식재를 하느라 파주 산림조합에 벌써 열 댓 번이나 다녀왔고 그곳에서 이런저런 나무를 배우고 곱들이고 있다. 그 사이 거리엔 벚꽃이 낭자해졌다. 이참에 마지막으로 신준환 선생이 인용한 나무노래 한 자락 옮긴다.

“가자마자 감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열아홉에 스무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춤이라도 추자나무, 입었어도 벚나무
낮인데도 밤나무, 빠르다 화살나무
저금하자 은행나무, 짚신에 까는 신갈나무
떡을 사는 떡갈나무”

 

* 이 글은 <공동선> 2020년 5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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