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위치의 줄리안, 고통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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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위치의 줄리안, 고통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5.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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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2)

성인들의 삶

모든 성인이 다 고통에 관한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통을 하나도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다. 박해, 질병, 굶주림, 친구와 가족의 죽음, 위대한 일과 개인적 꿈의 실패, 결실 없는 노동에 의한 소진, 외로움, 영적인 고통 등등. 성인들의 삶은 고통의 연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고통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값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 고통은 신앙이 단련되고, 시험을 받는 도가니와 같았다. 그리고 많은 성인들은 그들의 회심과 소명의 분별 때 고통을 겪었다.

앗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의 삶을 보면 중요한 전환점에서 고통이 보이고 그 고통은 성인에게 새로운 “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많은 다른 성인들의 삶에서도 우리는 프란치스꼬의 체험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음을 본다. 그들의 삶에서 무기력이 끼치는 영향을 방해하고, 새로운 목표에 필요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고통과 불행의 역할을 깨닫는다.

어떤 경우에 그 고통은 질병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상실로, 혹은 어떤 야망의 무너짐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더 깊은 대답들을 찾기 위하여 나아간다. 우리는 더 이상 수레바퀴의 표면에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노르위치의 줄리안
노르위치의 줄리안

영적인 안내자

고통이 우리 삶의 황량함과 “헛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결과는 마땅히 절망일 것이다. 그러나 성인들의 삶에서 고통은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고통은 성인들이 갖고 있던 착각과 망상을 벗겨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주고, 은총의 현존을 더 빨리 느끼도록 예민하게 만든다.

이렇게 될 경우 고통은 자비로운 친구가 되고, 심오한 영적인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으면서 어떤 성인들은 십자가의 고통에 자신들을 내던질 수 있는 경험을 갈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었다. 즉 영감. 연민, 깊은 헌신 등, 극한적인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경험들을 원했던 것이다.

노르위치의 줄리안(1342~1416) 이야기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는 영국의 은둔자이며, 신비가로서 저서인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젊었을 때 죽음과 같은 위중한 병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실감있게 느껴보고 깨닫기 위해서였다. 또한 회심, 연민, 하느님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세 가지 상처들”을 받고자 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줄리안의 기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보인다. 그런데 줄리안이 흑사병 대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그는 고통이 말 그대로 실제이고, 만연되어 있던 때에 살았다. 줄리안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겪었고, 그래서 고통의 본질과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개인적 경험 안에서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질병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정화되고, 그 후에 그 질병 때문에 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해서”였다.

줄리안은 고통을 체험하고자 하는 그의 간구가 서른 살 때에 응답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 때 그는 신비스럽고 파괴적인 질병을 앓았다. 나흘 밤낮으로 그는 마비상태에 있었고, 견딜 수 없게 고통을 겪었다. 마침내 사제가 병자성사를 주기 위하여 왔고, 줄리안의 얼어붙은 시선 앞에 십자가를 들었다. 그 때 갑자기 모든 고통과 비탄이 그를 떠나갔다.

그 순간에 줄리안은 “살을 입은 예수님, 고통 중에 있는 살을 입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쥴리안에게 말했고, 다른 신비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신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하느님의 손안에 호두처럼 잠겨있는 세계를 보았고, 확신이 자리 잡았다. 결국 우리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며, 모든 사물의 모습이 좋을 것”이라는 잊을 수 없는 환시를 본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줄리안의 환시는 병리학적으로도 생생하다. “나는 왕관 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뜨겁고 마음대로 풍부하게 흐르며, 살아있는 시내였다. 떨어지는 커다란 핏방울... 마치 청어의 비늘처럼”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의 관상은 사랑의 깊이에 모아졌다.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분이 고통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쥴리안에게는 이 모든 사실이 위안과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분은 기쁨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분이 고통을 받았던 이유는 그분의 본질적인 선함 때문에, 우리를 그분과 함께 그분의 기쁨의 상속자로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내가 너를 위하여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만족하는가? ... 네가 만족한다면 나도 만족한다. 너를 위하여 수난 받는 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며, 끝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내가 더 고통받을 수 있다면, 분명코 나는 더 고통받을 것이다...”

모든 예상과 빗나가며 줄리안이 죽지 않고 완쾌되었을 때, 그는 받은 계시를 모두 라틴어가 아니라 중세영어로 썼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노르위치의 교회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지금까지 그의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먼저 극한의 고통을 겪었으나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더욱 강해지고 에너지를 충만하게 받은 삶의 지혜를 절실하게 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살았다.

14세기의 줄리안이 가졌던 비전들이 오늘날 우리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줄리안의 신비적인 관점은 교회의 전통적인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류의 모든 죄의 빚을 대신 “갚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빚을 대신 갚았다는 말에 대해 위안을 받지 못하며, 편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쥴리안의 관점은 이 대속의 의미를 넘어선다.

줄리안에게 예수의 고통이 지닌 깊은 의미는 하느님의 연민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는 것이고,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기꺼이 고통을 겪으신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에서 위로를 얻을지 모르지만, 줄리안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했다. 줄리안은 고통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가 “영혼과 육체로서 하느님의 선함으로 옷을 입고, 그것에 둘러싸인 존재” 라는 거룩한 진리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줄리안이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터득한 영감이며, 절망이나 금욕적인 체념이 아닌 깨달음이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이 연민을 실천하는 기회라고,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생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천하기엔 엄청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성인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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