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랑의 빛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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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랑의 빛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4.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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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8)
사진출처=mymodernmet.com
사진출처=mymodernmet.com

 

사랑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허락한다. 표면 밑에 있는 더 깊은 진실과 가치를 보도록 해준다. 분명한 가치나 품격이 보이지 않고 초라하며 낡아빠진 어떤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일 때, 혹은 우리가 특별히 행복할 때,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부여된다. 우리 아버지의 낡은 스웨터, 어머니의 오래된 찻잔 등을 보면, 그 낡은 겉모습 아래 숨겨진 진실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은 고유한 비밀의 삶을 지니고 있다. 사랑은 이 공통점이 없는 것들을 한데 모으고, 그것들을 은총의 도구가 되도록 만든다. 성인들에게 온 자연질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무한한 소중함과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 사랑에 참여하는 만큼, 모든 것들은 자신들의 초월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모든 것들은 제각기 우리를 우리의 진정한 집으로 초대한다.

성인들은 보이지 않는 실재에 조율을 맞춘 사람들이었다. 즉 우리 모두가 사랑의 그물망 속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그래서 온 우주가 한 실재에 뿌리를 두고 있고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만일 우리에게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서로 갈라져있다는 꿈에서 즉시 일어나 경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실재를 성인들은 보았다.

이런 “사랑의 빛들”에 깨어있었던 한 젊은 가톨릭사제 잉겔마르 운자이티그는 바바리아 지방의 나치 수용소 한 가운데에서 그의 사명의 의미를 이해했다. 다카오의 이십만 수용인들 중에는 2500명이 넘는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이 있었고, 운자이티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치 점령자들은 성직자들을 따로 분리시켜 수용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미가를 만들고, 비밀미사를 하거나, 동료 수용인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카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도원” 이었다.

유대인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서품된지 얼마 되지 않아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된 운자이티그 신부는 다카오에서 첫 번째 소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수용소를 거룩함을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나에게 몰래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때때로 불운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매우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삶의 학교에서 오로지 경험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지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세상에 얼마나 평화가 부족한지 느끼고 경험해야 하며, 또한 그들이 참다운 평화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매우 소중하고 아끼는 것을 가져가신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1944년 12월 수용소에 장티푸스가 발병했다. 첫 번째 달에 2천명 이상의 수용인들이 죽었다. 전염된 사람들은 지저분한 막사에 격리되었고,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다카오의 지옥 안에서도 이 격리된 곳은 내적인 지성소가 되었다. 병자들을 위한 잡역부 소집에 운자이티크 신부는 20명의 자원 사제들과 함께 응답했다. 장티푸스의 심각한 전염 사태를 볼 때, 자원의 의미는 모두에게 확실했다. 이 자원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제들은 이 없음 속으로 자신들의 사랑과 믿음을 가져갔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존엄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병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이었다. 사제들은 또한 고백을 들었고, 마지막 성사를 주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나치들이 병동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그곳은 인간애가 표현되는 특별한 자리가 되었다.

수주일 후, 잉겔마르 신부는 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1945년 3월 2일, 서른 네 살 생일 다음날, 그리고 미군이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수주 전에 죽었다. 죽기 바로 전에 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은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리는 하느님 편에 있어야 합니다. 비록 때때로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에게 쓸모없는 일로 여겨진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사랑에 깨어 있음을 , 그리고 그 사랑이 피조물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께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오래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랑과 평화가 곧 다시 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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