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외로움 속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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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외로움 속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4.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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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7)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연극에서 잔다크 역할을 맡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연극에서 잔다크 역할을 맡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가 죽던 해, 1897년에 태어난 도로시 데이는 “소화”와 별로 닮은 점이 없다. 실제로 도로시 데이는 데레사를 처음 알았을 때 호의를 가지지 않았다. 1928년 고백신부에게서 데레사의 자서전을 받았을때,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열여덟 살에 엄격한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면서 약을 먹거나 식사를 할 때,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수녀원 안의 악의 있는 동료들을 참아내는 일이 영웅적인 애덕을 실천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느꼈다니, 도대체 이 성인은 어떤 성인이었는가?”

개혁자 아빌라의 대 데레사나 쟌다크 같은 성녀에게 도로시 데이는 더 이끌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는 소화 데레사를 좋아하는 성인으로 삼았고, 그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하고, “작은 길”의 영성에 대해 표현하기도 했다. 데이는 소화 데레사의 가르침에서 사회적 의미를 파악한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것들의 중요성을 우리는 무시한다. 작은 것들을 위한 항의와 입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도록 불리었고, 거룩함이란 사랑의 실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데이는 주장한다.

데레사의 “사랑의 기술”이 지닌 실천적인 지혜는 도로시 데이에게 “무시되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생활로 광범위하게 확인되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아직도 어떤 규칙이나 심사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환영되고 받아들여진다. 결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보이는 것처럼, 온갖 사람들의 집합체로 나타난다. 순례자들, 학자들, 그리고 “거룩한 바보들”,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들, 노동자들, 부랑자들, 미친 사람들, 하층사람들, 쓸모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랑만이 그런 집구석을 유지시킬 수 있다.

또한 데이는 이런 집에서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짐은 너무 무겁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 사랑은 너무나 작다. 어떤 폭력까지 느낀다. 내 마음 속엔 사랑이 없고, 아무것도 그들에게 줄 것이 없다. 그래도 마치 사랑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은 그런 가장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길 원한다면, 곧 당신은 사랑하게 된다. 이 미치광이 노인을 사랑하길 원한다면, 언젠가 당신은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도로시 데이가 분명히 사랑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매우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무정부적인 기능은 전형적인 수도원의 체제와 너무나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비슷하다. 즉 일꾼운동에 모여든 사람들 하나 하나가 “애덕의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공동체로 산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협력과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소화 데레사의 생각을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한 식탁에 앉아 소리내어 먹으면서 신경을 거슬리는 사람을 참는 것보다 추상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일을 하며 치러야 할 단련이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을 정제시켜 준다. 우리는 용서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 비로소 용서를 배우게 되고, 우리의 인내가 불가피하게 시험될 때에 인내를 배우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공동체를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길을 배우는 학교”라고 불렀다. 이것은 수도원이 소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머튼에 의하면, 수도공동체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하느님의 행복을 나누는데” 있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바보들을 쫓아버리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길이라고 믿기 쉽다.

이런 관점은 가족에 관해서도 사실이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해서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다. 때때로 가족은 자연적인 사랑과 지지의 장소이다. 또 다른 때에 가족은 숨막히게 만드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 역시 애덕의 학교이다. 우리가 가장 친밀하게 알고 있고, 또 우리를 그렇게 알고 있는 가족 안에서도 우리는 단순히 서로 참아낼 뿐만 아니라, 더 용서하고 더 인내하는, 더 나은 우리자신이 되라는 도전을 받는다. 그런 도전을 찾아 다른 자리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도전들은 매일, 매순간이 아니라도 우리를 찾아내고 있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 일꾼가족 안에서 보여지는 실패와 불화에 끊임없이 울었다. 그리고 천국을 일별하는 것 같은 짧은 순간의 친절함과 동료애로부터 위로를 받았을 뿐이다. <긴 외로움>에서 데이는 모든 소명의 핵심에 있는 근본적인 고독에 대하여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책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빵을 쪼개면서 그분을 알고, 빵을 쪼개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긴 외로움을 알고 있고, 유일한 해결책이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온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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