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게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니요?
상태바
노숙인에게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니요?
  • 서영남
  • 승인 2020.04.07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인천 동구청에서 <무료급식소 운영방식 개선 등 방역조치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들고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것입니다. 도시락마저 나눌 수 없으면 우리 손님들은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설 외부에서 줄 서는 경우 최소 1~2m 거리 유지한다면 도시락 꾸러미를 나누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가깝게 붙어 있는 것이 이제는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은 철저히 혼자입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무료급식소는 문을 닫았습니다. 노숙인 쉼터는 신규 입소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모여서 노숙하던 곳은 거리두기 때문에 혼자서 견뎌내야 합니다. 도시락을 나눠 주는 곳을 알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나눠 주는 시간도 들쑥날쑥입니다. 왜 시간이 들쑥날쑥인가 하면 민원 때문입니다. 노숙인이 모여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구에서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지난 2월말부터 민들레국수집도 결국은 급식을 중단하고 도시락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도시락 용기를 구하는 동안 김밥을 도시락 대신 나눠드렸습니다. 우리 손님들께 김밥을 두 개씩 드렸는데 손님들 입장에서는 터무니없게 적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은 김밥 두 개에 즉석 사발면을 하나씩 드렸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즉석 사발면을 생으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어서입니다. 뜨거운 물은 눈치껏 구해야 하는데 어떤 곳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쓸 수 없게 전기 코드를 뽑아 놓는 곳도 있다고 말합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사흘째에야 도시락 용기를 구해서 도시락을 쌌습니다. 5칸 도시락 용기에서 가장 큰 곳에 밥을 담았는데 우리 손님들에게는 너무 모자랄 것 같아서 두 칸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국은 사발면으로 대신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반찬이 모자랄 것 같아서 김 하나 담고,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빵을 도시락 봉지에 담아서 손님들에게 드렸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손님들이 사발면은 저녁으로 먹기 때문에 국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국을 따로 담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락을 담는 일, 도시락용 반찬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준비하면 오전 11시에야 나눠드릴 수 있습니다. 손님들은 민들레국수집 밖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서 기다립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줄을 서면 꼴찌부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결코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시락을 나누는 데 줄을 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절대로 도시락이 떨어져서 도시락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없도록 할 것이니 줄을 서지 않고 이곳저곳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가 한 사람씩 도시락을 받아 가자고 당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악착같이 줄을 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2m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손은 깨끗하게 소독하고 마스크를 해야 합니다.

마스크 없는 손님에게는 마스크를 드렸습니다. 도시락을 나눠 주는 일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손님도 계속 늘어납니다. 차비조차 없어 부평에서 두 시간 반이나 걸어서 오는 손님도 있습니다. 라면만 끓여먹다가 밥 먹고 싶어 온 손님도 있습니다. 수원에서, 서울에서도 옵니다. 노숙하는 손님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 배고파 쓰러질 것 같습니다.

손님들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립니다. 도시락, 국, 사발면, 김, 빵, 음료수, 과일입니다. 매일 꾸러미의 내용은 조금씩 변합니다. 희한하게도 무엇인가 모자랄 것 같으면 택배가 도착합니다. 돼지고기, 손질 생선, 구운 달걀, 빵, 딸기, 천혜향, 사과즙, 호두과자, 음료수, 수제 쿠키, 말린 나물, 파김치와 갓김치도 왔습니다.

오늘 오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늦게 도시락을 찾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내일 반찬을 하려면 달걀을 사야 하는데 라고 말할 때 전에 민들레국수집 손님이었던 이가 달걀 다섯 판을 들고 왔습니다. 요즘 택배 일을 하는 데 힘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일하다가 어려울 때는 달걀 몇 판 사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면 히이 난다 합니다. 참 좋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