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원만 빌려줘요” ... 수급비가 나오는 날 갚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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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만 빌려줘요” ... 수급비가 나오는 날 갚겠다고
  • 서영남
  • 승인 2020.04.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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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문주원(가명)님은 나이가 일흔 다섯입니다. 동인천역 근처 여인숙에서 혼자 삽니다. 민들레국수집이 2003년에 문을 열었을 때부터 단골손님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동인천역 근처 쪽방에서 혼자 살면서 껌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밤마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껌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은 방세를 내고 나면 밥 사먹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지 못한 날은 국수집에 와서 밥을 먹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형편이 영 불안하게 보였는지 반찬값에 보태라면서 만 원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아마 문주원님이 전 날 번 돈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식사 후에 자랑을 합니다. 국수집에서 밥을 먹은 덕분에 돈을 조금 저축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쪽방에서 조금 큰 집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답니다. 몇 년 동안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고달픈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늙고 병든 모습으로 지팡이에 의지해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왔습니다.

어느 겨울 껌을 팔면서 이 술집 저 술집 다니다가 그만 쓰러졌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이 신고를 해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만 몸은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비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서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는 밥을 너무 적게 주는 것 같았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라서 따로 병원에 돈을 더 내지는 않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으니 배가 고파도 빵 하나 사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퇴원해서 기초생활수급비를 직접 받는다면 밥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동인천역 근처 여인숙에 한 달 방세가 20만 원 정도니까 방세 내고 남은 돈으로 담배도 피울 수 있고, 밥은 경로식당과 민들레국수집에서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어서 왔다고 합니다.

문주원(가명)님은 지팡이에 의지해서 밥을 먹으러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경로 식당은 하루 한 번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경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또 오후 네 시쯤 다시 국수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도 일주일 내내 하는 곳이 없습니다. 쉬는 날에는 밥을 사 먹어야 하니 수급비로 받은 것만으로는 돈이 모자랐습니다. “이만 원만 빌려줘요.” 수급비가 나오는 날 갚겠다고 합니다. 수급비가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만 원을 갚았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 지나면 이만 원을 빌렸다가 또 갚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이만 원을 빌리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제야 생각했습니다. 이만 원을 빌려 드리고 그 돈을 받지 않아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탕감해드렸습니다. 그제야 돈을 빌리는 일이 끝이 났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경로식당이 당분간 문을 닫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도 당연히 문을 닫은 줄 알고 밥을 계속 사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수집은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는 줄 알았답니다. 돈을 아끼느라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았는데 그 돈마저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기에 걸렸나 봅니다. 여인숙이 너무 추워서 감기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침을 합니다. 식사하던 손님들이 질겁합니다. 재빨리 자리를 옮겨 드렸습니다. 기침이 나오면 반드시 옷소매로 가리고 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며칠을 고민을 했습니다. 기침을 한다고 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손님들을 생각하면 기침하는 분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밖에서 혼자 식사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오늘 아침입니다. 우리 손님들은 담뱃값이 너무나 많이 올라서 꽁초도 주워 피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식사 후에 담배 한 개비라도 편하게 피울 수 있도록 담배를 내어 놓으면 담배 피우고 싶은 손님은 하나씩 가져갑니다. 손님들에게 나눠드릴 담배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오는 주원(가명)님을 봤습니다.

오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손님들이 기침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니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는 국수집에 오시면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굶어 죽어야 하는데... 더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십만 원을 쥐어 드렸습니다. 힘드시겠지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드세요.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오십시오. 이렇게 돈을 많이 주다니... 고맙다고 하면서 오던 길을 돌렸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이 되면서 민들레국수집도 어쩔 수 없이 손님께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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