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저항: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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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저항: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걱정한다
  • 박병상
  • 승인 2020.03.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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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 칼럼
사진출처=
사진출처=pixabay.com

올겨울은 결국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보다. 송도신도시로 넘어가는 고가도로 아래 인천 연수구는 십여 대의 제설차를 준비했지만 한 차례도 움직이지 못했다. 녹지 업무로 공직을 마친 선배는 걱정이 많다. 맹추위가 없는 해에 해충이 들끓었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역병은 멈추지 않는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은 우리만의 걱정이 아닐 텐데, 중국의 거대도시 우한에서 전대미문의 역병이 창궐했다. 세계는 시방 일상을 유보하며 초긴장하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변형된 코로나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더라도 방역에 행정력을 몰두하는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지나간 뒤 긴장을 푼다면 새로운 역병이 이내 창궐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역병이든 재해든, 느닷없는 위험을 완충할 수단, ‘생태적 다양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비행기와 의자를 빼고 날개와 다리가 있는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먹는 관습이 인류 문화의 소산이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질병이 전파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거주 공간이 산이나 강으로 떨어져 있고 주위에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면서 질병은 창궐하기 어려웠다.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존재한 야생동물의 바이러스는 인류가 개조한 환경에 이따금 노출되어 변형되더라도 생태적 다양성이 보존되었다면 ‘코로나19’처럼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거나 고속도로를 타고 지역을 누빌 수 없다.

영국 <가디언>지 기자가 심층 취재해 엮은 책 <지구에 대한 의무>는 콘크리트를 주목했다. 채굴한 석회석을 가열해 만드는 시멘트는 세계 곳곳에서 인류의 휘황찬란한 꿈을 한꺼번에 실현해 주었지만, 생태계는 그만 다양성을 잃어야 했다. 이 책에선 미국이 20세기에 소비한 시멘트를 2003년 이후 3년마다 쏟아내는 중국을 지목하면서, 중국 1년 소비량을 영국에 쏟아 부으면 땅이 베란다처럼 편평해진다고 덧붙였다. 박쥐와 천산갑을 먹는 문화는 남아있고, 생태적 다양성을 잃은 지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변형돼 세계로 번져나간 사건은 세계 뉴스를 장악하지만, 예외적인 역병은 아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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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해로 전문가는 기록했다. 피부로 느낀 한여름의 폭염은 2018년이 더 심했지만, 연평균 기온이 섭씨 13.5도로 13.6도인 2016년 이래 최고의 더위였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에 7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내습했다. 우리만의 사정이 아니다. 6개월이나 이어지면서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을 절멸시킨 호주의 산불, 영구동토층을 녹인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산불은 지역에 국한된 재앙이 아니다. 수만의 유럽인을 희생시킨 2003년 폭염은 인류사회에 끔찍한 교훈과 숙제를 안겼어도 재발할 기미를 멈추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과 공직자와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코로나19의 전파는 진정되겠지만, 지구온난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대기권에 쏟아지는 온실가스는 생태적 다양성 위축과 비례해 늘어나기만 한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거리가 한산해지고 모임이 취소돼 자영업자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경제활동은 머지않아 재개될 것이다. 멈칫했던 온실가스 배출이 다시 늘어날 텐데, 코로나19의 확산을 차단하는 일은 여간 벅찬 게 아니다. 들어가는 돈과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고도화된 자본과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철두철미한 방역은 언감생심이다. 생태적 다양성이 위축된 국가에 동원할 에너지가 마땅치 않다면 바이러스 창궐은 걷잡지 못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를 휩쓴 역병은 과거에도 있었다. 드라마 속의 역병은 대개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흉작에 이은 기근을 보여주는데, 어느 나라나 경험해 왔으리라.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사는 한반도는 민중의 굶주림이 일상적이었을까? 농작물뿐 아니라 삼면의 바다에서 얻는 해산물, 그리고 산과 강에서 적지 않은 먹을거리를 구했기에 드물었을 것이라 사학자는 짐작한다. 국토의 4분의 3이 경사 급한 산지이고 비가 여름 한 철에 집중되지만, 화강암 모래를 품는 강은 사시사철 깨끗한 물을 흘렸고 해안의 드넓은 갯벌은 맨손어업을 보장해주는 혜택 덕분이었겠지.

편서풍 지대 서편의 드넓은 갯벌은 해안의 재난을 완충하고 수분이 풍부한 바람이 높은 산에 부딪혀 요긴한 빗물을 농촌에 뿌려주기에 홍수와 가뭄이 교차해도 피해를 완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대간과 산간에서 발원하는 강줄기가 다채로운 생태계를 보전하기에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생태계가 보전되던 금수강산이 한반도를 떠났다. 보전되던 산하는 분별없는 개발로 거의 도륙되었다. 기득권이 과실을 독점하는 경제성장을 무도하게 추구한 지 반세기 만에 재해를 완충할 자연을 대부분 잃었다.

백두대간은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도로에 난자당했고, 4대강은 댐과 대형보들로 흐름을 잃었으며, 갯벌은 대부분 매립되었거나 매립 중이다. 단위 면적 당 들이붓는 시멘트의 양은 중국 못지않다. 매립한 갯벌을 밟고 치솟은 송도신도시의 초고층빌딩 숲은 전기 과소비 없이 온전할 수 없고 매끈한 건물을 잇는 아스팔트는 막대한 석유를 들이킨다. 속도와 높이를 위해 다양성을 희생한 회색도시는 재해에 무력하다. 해운대의 절경을 독점하며 하늘 높이 오른 부산 마린시티는 태풍이 올 때마다 불안에 떠는데, 인천 송도신도시는 아니 그럴까?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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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로 짓는 농사

심화하는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라는 수식은 이제 식상하다.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은 우리나라를 비껴가지 않는다. 하루 600밀리 강우로 강화를 쑥대밭으로 만든 1998년 폭우는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4대강의 16개 대형보는 도미노처럼 재앙을 안길 수 있다. 해수면의 온도가 다른 해역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동북아시아에서 전에 없이 자주 발생하는 태풍은 계절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세력을 키웠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은 언제까지 찬란할 수 있을까?

여름에 강우의 60%가 집중되어도 논이 빗물을 잡으며 지하수로 이어주면서 재해를 완충해주는 우리나라였지만 요즘 도시 주변에서 논은 물론 습지도 자취를 감췄다. 농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양한 품종의 농작물로 자급자족하던 농촌은 다국적기업에 굴복했다. 다수확 품종을 획일적으로 심는 농업으로 규모를 키운 결과 기후변화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4대강 대형보로 높아진 수면에 맞춰 대규모로 들어선 강가의 시설농업단지가 특히 그렇다. 대형 보의 철거를 극력 반대하는 농업자본은 자급자족과 거리가 먼 수출용 채소를 획일적으로 재배한다.

한겨울에 선보이는 딸기는 차라리 석유다. 식량의 4분의 3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꿈꾸는 수출농업은 신기루일 따름인데, 시설농업이 주로 재배하는 수출용 채소 역시 석유다. 에너지 투자 없이 생산이 불가능한 농업은 기후변화에 무력하다. 아니 촉발한다. 석유 없이 경영할 수 없는 농업은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보다 많은 석유를 요구하는 농업은 닥칠 기후변화를 이길 수 없다.

일찍이 문화혁명을 몸으로 체험한 중국 인민대학의 원톄쥔 교수는 ‘삼농’을 말한다. 농촌과 농민을 소외한 농업은 삼농일 수 없다. 지역에서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삼농일 때 지속가능한데, 요즘 우리 농업뿐 아니라 수입하는 농산물은 기후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다국적기업에 의존하는 농업일수록 석유 낭비를 요구한다. 곡물 사료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 역시 기상이변에 무력하고 한두 품종을 대량 사육하는 가축은 질병에 매우 약하다. 살처분만이 조류독감과 구제역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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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멸종 저항

동북아시아 해수면의 수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얼마나 될까?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해수면의 온도를 높이는 요인에서 핵발전소도 한 몫 한다. 같은 용량 화력발전소의 2배 가까운 온배수를 해안으로 토해내지 않던가.

환경단체는 기후변화보다 ‘기후위기’라 말하고, 유럽인들은 ‘멸종저항’ 운동에 나선다. 기후위기를 버려둔다면 멀지 않은 후손이 멸종의 길로 들어갈 게 명백하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제성장에 저항하는 행동에 나선 것인데, 기후변화의 위험요인은 한 국가의 노력으로 줄어들 리 없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후손의 처지에서 절실하게 인식하고 늦기 전에 함께 대책을 세워 행동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달콤함에 취한 시민들을 설득하고 함께 행동하려면 솔선수범이 필요한데, 무엇이고 가능하기는 할까?

전기나 수소자동차는 아니다.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와 발전사업에서 그칠 수 없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연료만이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영원히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핵발전도 대안일 수 없다. 발전 중에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지만 핵원료를 채굴, 운송, 가공, 폐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온실가스를 더는 배출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시급히 실천해야 하지만 기후위기를 촉발하는 대기의 탄소를 당장 줄여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미국의 토양미생물 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발밑의 혁명>에서 무경운 사이짓기로 대기의 탄소를 흙에 서둘러 돌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멀지 않은 과거, 조상의 농업, 유기적인 소농이자 가족농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틀렸다. 후손에게 성장이 아니라 행복을 물려주어야 한다. 고갈을 앞둔 석유로 행복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탐욕스러운 경제성장이 이끈 기후위기의 파국은 정부가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네덜란드 법정은 판결했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자 남극 빙하가 후퇴하고 티베트 빙하 아래 잠든 과거의 바이러스가 깨어날 준비를 한다고 멸종저항 운동가는 절규한다. 코로나19는 무엇을 웅변하는가?

돌이킬 시간이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손이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석유 없이 행복한 삶을 연구하고 어서 실천해야 한다. 생활협동조합 운동에 투신하는 일본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는 ‘FEC 자급권’을 제안한다. 지역에서 식량과 에너지와 복지를 해결해야 지속가능하다는 주장인데, 기후위기에 대처할 솔선수범이 아닐까?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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