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의 첫 미사 "제발 발코니에서 내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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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의 첫 미사 "제발 발코니에서 내려오라"
  • 김유철
  • 승인 2016.06.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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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쏟아진 주교 동정 뉴스

교계언론에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여러 교구의 주교 동정이 톱으로 올랐다. 선종한 주교를 비롯 교구장으로 취임 한 주교, 이임한 주교, 교구장 권한 대행 주교, 보좌주교로 새롭게 임명된 주교, 총대리로 보직이동한 주교 등 주교단을 둘러싼 다양한 뉴스가 한국천주교회 역사에서 드물게 한꺼번에 속출했다. 해당 교구의 애도와 기쁨이 섞인 가운데 한국천주교회는 추기경과 아빠스를 포함하여 현직 24명, 은퇴 14명 총 38명의 주교단을 거느린 지역교회가 되었다.

주교(主敎)를 일반 사전에서 찾아보면 1.주장으로 삼는 종교와 2.교구를 관할하는 교직 또는 그 직에 있는 사람이라 풀이를 하지만 <가톨릭대사전>에서는 교회법 375조 1항을 인용하여 “하느님의 제정하심에 따라 성령을 받아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하는 주교 즉 감목(監牧)은 교회 안에서 세워진 목자들로서 교리의 스승들이요 거룩한 예배의 사제들이며 통치의 봉사자들”이라고 ‘사람’에 한정하여 해석을 한다.

ⓒ한상봉

주교직은 사전적 의미 그 너머에 존재한다

교회에서는 교구장 주교와 명의주교, 교구장 계승권이 있는 보좌주교와 계승권 없는 보좌주교 등으로 세세하게 구분하지만 각 교구의 신자들에게 주교는 하늘처럼 -어쩌면 하늘보다- 높은 성직자들이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것이 현주소다. 교구와 특별한 연줄(?)이 없는 평신도들은 거의 몇 년에 한번 돌아오는 본당 견진성사나 대규모 교구 행사 때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다.

그런 행사에서 들을 수 있는 주교의 강론은 잘 들리지 않거나, 들린 다해도 교리서 혹은 ‘좋은 생각’류 말씀인지라 가슴에 담김 없는 “아멘”으로서 밋밋하게 답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교, 특히 교구장 주교들의 취임 일성이 거의 예외 없이 “교구 사제들과의 일치”임을 전해들을 치라면 주교들의 눈높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이 상당히 고난이도의 통치력(?)을 발휘해야 할 정도로 주교들을 애먹이는 대목이라는 것을 가늠하기도 한다.

<주교교령> 11항은 이렇게 말한다. “지역교회의 사목 책임을 맡은 주교는 교황의 권위 밑에서 정상적으로 직접 교회를 돌보는 목자로서 교도직과 사제직과 사목직을 수행함으로써 주의 이름으로 자기 양들을 양육한다.” 그러나 주교직은 사전적 의미 그 너머에 존재한다. 흔히 주교를 사도들의 후계자라 말하지만 그들은 특정 사도의 후계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기에 그렇다. 주교는 하늘만 쳐다보는(사도 1,11) 존재는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한 충성과 순명서약인가?

2013년 이후 교종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새로운 주교를 임명할 때마다 그들에게 부여하는 사명이 있을 것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교단인 가톨릭교회가 교회의 핵심중의 핵심인 각 교구의 교구장을 어떤 선정 과정을 거치고 어떤 판단기준으로 교종의 최종결재를 거치는지 어쩌면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임명된 주교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며 주님의 뜻을 교종과 함께 지상에서 수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교는 당연히 누구보다 ‘하늘의 임명권자인 예수와 지상의 임명권자인 교종의 의지’를 잘 새길 것이고 그런 의미로 주교직을 받아들이면서 취임에 앞서 교황청대사관에서 교종이 내린 임명에 대한 충성서약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충성에 대한 ‘의미’를 교구 사제단에게 전하며 그 ‘의미’에 대한 순명서약을 취임식에서 사제단에게 받으리라 생각한다.

황제와 같은 교황이 있던 시절, 작은 황제와 같은 주교가 착좌하던 시절은 그 임명권자, 즉 사람에 대한 충성이겠지만 -신학자들은 그 ‘충성’의 의미를 더 복잡하게 설명하겠지만- 그 충성서약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충성이며 그 분이 세 번씩이나 말하던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21.15-17)는 ‘의미’에 대한 순명서약일 것이다.

주교의 주교, 로마의 주교라는 교종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교종의 소임을 수행하는 프란치스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를 생각한다. 2013년 3월 13일 추기경들에 의해서 266대 교종에 선임된 그날 오후 8시 15분 성 베드로 성당에 등장한 그는 모피가 달린 붉은 예복이 아니라 흰색 성직자 예복을 입고, 금으로 된 십자가 대신 주교용 은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나왔다.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통치자(!)로서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교종을 보면서 환호하기보다는 전율했다.

기적을 보고 만나는 일, 그 전율

교계언론 뿐 만 아니라 일반뉴스에서도, -심지어는 조중동까지, 물론 조중동의 관점은 달랐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관심과 여파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산타마리아 게스트하우스 숙소, 50달러짜리 손목시계, 낡은 구두, 방탄차 대신 오픈카,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를 위한 메시지 등은 이류 종교인이나 삼류 정치인들도 흉내 내고, 하는 척 하는 일이지만 성스러움의 극치인 ‘성 목요일 만찬’ 미사에서 리비아 출신 무슬림과 에티오피아 여성,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의 소년 등의 발을 씻겨주는 일과 자신의 생일날 성 베드로 성당 인근 노숙자들과 식사를 나누는 일은, 그것은 모두가 기적을 보고 만나는 일이었다.

‘기적’이란 단순히 장애를 극복하여 눈을 뜨고, 일어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 그것을 기적이라고 교회는 말한다. 주교, 특별히 교구장이 하는 일에서 기적을 보고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사랑과 연민, 연대성과 공동선, 무엇보다 자비로움이 담긴 기적이 새롭게 소임을 맡은 여러 주교를 비롯해 오랫동안 주교직을 행하고 있는 한국교회 모든 주교들에게서 품어져 나오길 바란다. 그 기적 속에 분명 우리 주, 예수의 손길이 담겨있을 것이다.

제발! 발코니에서 내려오라

언젠가 교종이 젊은이들에게 말한 “삶을 발코니에서 바라보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도전들이 있는 그곳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고자, 좀 더 발전시키고자 애쓰는 이들이 여러분들께 도움을 청하는 그곳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 빈곤을 타파하려는 몸부림. 가치들을 위한 고군분투. 매일 직면하게 되는 많은 삶의 투쟁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그의 말은 특별히 권한과 책무가 있는 주교들이 더욱 큰 무게로 받아야 할 말이며 ‘제발!’ 발코니에서 내려오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어떻게 증시가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고 노숙자가 거리에서 죽어가는 건 뉴스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라는 교종의 말을 교회에게 돌려주자면 “어떻게 지역의 선교율이 2포인트 오르는 것이 교구의 관심이 되는데, 지역의 노숙자가 거리에서 죽어가는 건 교구의 관심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라는 힐난으로 바뀔 수도 있다. “사목직을 통하여 주교는 자기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알도록 하고 참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양떼를 보살핀다.”라는 <주교교령> 16항의 ‘양’들은 교회 바깥에 더 많이 있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주교의 첫 미사가 시작이며 마침이기를

교종 프란치스코의 첫 방문지였던 람페두사 불법 이민자 수용소에서 그가 던진 말을 기억한다. “누가 울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세상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를 오늘의 기적으로 계속 연결하려면 최소한 그에게 임명받은 추기경과 주교들은 그 울음의 현장과 울고 있는 사람들을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안아주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주님께 ‘슬퍼하는 은총’을 청합시다”라고 요청하는 교종 프란치스코에게 보내는 충성서약이며 순명서약이다. 그렇게 될 때 후일 교구장 주교로서 혹은 보좌주교로서의 첫 미사가 그의 시작이며 마침이었다고 교구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오늘을 사는 평신도 시인이 주교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주님의 은총이 세상의 모든 주교에게 내리기를 기도한다.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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