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양준일과 순철이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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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양준일과 순철이를 소환한다.
  • 심명희
  • 승인 2020.03.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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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희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시간여행자’라고 불리는 대중가수가 나타났다. 요즘 ‘핫’한 양준일씨다. 대중이 외면했던 잊혀진 가수가 ‘9119’, 1991년에 나타났다가 2019년에 다시 나타났다는 상징과 함께 사상초유의 신드롬을 몰고 왔다.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가로질러 시간여행자로 대중스타를 재탄생 시킨 일종의 레트로 현상이다.

시대적 흐름을 앞서 갔기에 대중으로부터 이해와 호응을 받지 못하고 퇴출 당한 20대의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가수가 쏟아진 야유와 비난을 뒤로 하고 홀연히 사라진 후 30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잊혀진 그를 다시 불러내서 과거의 그에게 방점을 두고 현재의 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의 과거로의 회귀, 기억과 추억에 담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대중은 과거에 미처 알아보지 못한 그의 가치와 그가 긴 시간동안 겪었던 아픔에 대한 보상으로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한 가수의 전성시대를 뜨겁게 열어주고 있다. 그동안 아픈 기억을 삭제하기 위해 전력투구 하며 과거의 쓰레기를 치우며 살았다고 고백하는 스타에게 보내는 대중의 열렬한 응원은 스무 살 시절의 그와 쉰 살의 그를 통합하여 새로운 스타로 재창조했다. 음지와 무덤에서 소환한 과거의 인물에게 빛과 생명을 불어넣어 환생시키는 시간여행,이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즘 잠자리에 눕자마자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피로와 내일의 걱정에 휘둘려서 진지하고 꼼꼼하게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시간에 대한 무례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과거라는 삶의 족적, 흔적, 지문이 새겨진 개인의 역사를 진지하게 열고 음미할 여유를 놓치고 살았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에 쫓긴 채 인질이 되어 끌려다니는 답답한 내 모양새를 발견하고 역설적이게도 과거라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복기해 보자는 일종의 도전이자 발상인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여행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게 된 계기는 최근에 직장에서 안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자고 눈만 뜨면 모여서 머리를 맞대지만 각자의 입장과 처지, 업무가 다르다 보니 소통 보다 단절이 공감 보다 오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갈등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사람들을 다시 보지 않는 한 이런 일상은 무한반복이 될 테니 이 압박과 긴장으로부터 피할 피난처가 간절히 필요했다. 무자비한 현실의 폭격을 피해서 잠시 숨을 고를 케렌시아(Querencia) 같은 은신처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내가 받은 상처를 보듬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오늘 겪었던 납득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불쾌하고 화나서 얼굴 붉힌 장면들이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면 어떻게 처리를 해야하는지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시공간에 갇힌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소박하고 단순한 수단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대중이 스타를 소환한 것처럼 나는 순철을 불러냈다. 눈동자가 유난히 노랗고 얼굴은 하얀데다 머리카락까지 연한 갈색이라서 처음 본 순간 외국에서 온 아이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나뿐인 소꿉친구, 다섯살에 만난 순철이다. 동생이 태어나자 직장생활을 하던 부모님은 나를 시골 외갓집에 보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인데다 낯선 곳에서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인지 스테레스로 밤낮으로 울었다. 분리불안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외손녀의 울음에 드디어 할머니의 입에서 굿 이야기가 나올 즈음 순철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옆집으로 이사온 그는 엄마 손에 이끌려 외갓집 뜰에 수줍게 서서 나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매일 의례(ritual)를 치루는 것처럼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명희야! 놀자!”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사회부적응자인 나와 자상하고 정 많은 그는 동네 사람들의 예측을 뒤엎고 완벽한 케미를 이루었고 단짝이 되었다. 나를 향한 그의 무조건적인 포용과 관용 덕분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소꿉놀이의 결말은 거의 그의 눈물로 끝나곤 했다. 내 고집과 독선에 그는 참았던 설움과 고통을 눈물로 펑펑 쏟으며 울음으로 항변했고 그것으로 그날의 소꿉놀이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그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문 앞에서 큰 소리로 “명희야!” 불렀다. 황폐하고 외로운 외갓집 살이는 따뜻하고 순수하고 이해심 많은 순철이 덕분에 점점 적응이 되어 갔다. “명희야, 우리 순철이 때리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신당부 하던 순철의 큰 황소 눈을 꼭 닮은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리고 순철네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시간여행은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자신만의 내밀한 장소를 탐험하는 경험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 역사의 현장이자 기억의 장소엔 추억할 수 없는 사건과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 잊었던 사람과 사건을 찾는 작업은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는 것처럼 기대가 되고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다.

다섯 살 시절 소꿉친구 순철은 과거라는 광맥에서 캐낸 보물이다. 어둡고 칙칙한 기운으로 나를 옭아매는 내 주변의 사람들, 각개전투장을 방불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온 몸을 던져 생존에 몰입하며 관용은 줄어들고 증오와 분노의 게이지만 높아가는 내 앞에 다섯 살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나 피난처를 찾는 나에게 위로와 감동과 치유를 주기 때문이다. 가시처럼 뾰족한 말로 마음을 할퀴어도 이유 없는 심통과 투정으로 소꼽 놀이판을 엎어도 장애인을 재활시키듯 무한대의 넓은 마음으로 괴상한 아이를 받아주었던 그 아이를 기억하는 순간 그는 시간여행자가 되어 내 곁에 와 있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부부가 헤어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유명한 영성가에게 물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때 그곳에는 행복했고 아름다왔던 당신들이 살아 있고, 그 기억을 통과해서 그때의 자신들을 만나라고.

시간여행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를 불러낼 수 있다. 삶은 짧은 행복과 긴 고통의 반복이기에 시련을 이겨내는 힘은 ‘행복의 기억’에 있다. 그 기억의 용광로 속에 불행한 현재를 던져 불행이라는 불순물을 정련하고 행복의 순수 결정체로 다시 태어나라고.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기념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이 십자가와 부활로 기억하는 종교예식 처럼 양준일과 순철이를 불러내는 대중과 나의 일상의 시간여행도 역시 과거의 우리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를 치유하고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삶의 부활을 향한 갈망이리라.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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