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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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 박철
  • 승인 2020.03.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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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Bloody Redemption by Charlie Mackesy.
Bloody Redemption by Charlie Mackesy.

교회나 성당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중대한 말씀 또한 그리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 라이트푸트(John Ligtfoot)라는 성서 학자는 히브리어 관용법을 관찰한 결과 이것을 "나는 참되고 살아 있는 길이다"라고 과감히 번역했다. 독일어 성경에 의하면 "나는 길이고 또한 목적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의 전후 문맥을 관찰해보면 누구든지 쉽게 '길'에 관한 말씀이 중심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진리와 생명은 앞에 있는 '길'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1) 예수는 자신을 '길'이라는 것과 동일시하였다. 예수께서 길이라고 하셨을 때, 이 길은 윤리적인, 도덕적인 의미의 원리나 체계이기보다는 예수 자신의 인간성과 인격과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자신을 비워 인간의 모습으로 종이 되어 이 세상에 인간을 섬기러 왔고, 또 섬겼던 제자들 발을 몸소 씻어 주셨던 그 예수의 삶, 친구를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던지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던 그 예수의 농도 짙은 사랑과 인정, 이것이 바로 삶의 길이라는 의미다.

다음으로 예수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 교훈과 설교를 의미한다.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이 동전의 앞뒤와 같이 나뉠 수 없는 불가분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예배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가르침, 어린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가르침, 그 교훈이 바로 우리 인간의 길이 되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흔히 하느님의 율법을 가리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고 재해석하고 재천명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를 로고스(Logos)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가르침은 단순한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서 인간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복음의 가르침이요 교훈이다. 십자가 사건은 그가 인간을 구원하는 진정한 길임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교는 영광과 승리 이전에 십자가의 길이고 십자가의 도라고 볼 수 있다.

(2) 예수그리스도는 참된 길이 되신다. 이 말은 예수의 길이 보편타당한 우주적인 길이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길인 것이다. 참된 길이란 또한 '유일한' 길임을 말한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이르지 못한다"고 선언하셨다.

이 참된 길이란 또한 '새 길'을 뜻한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는 "새 길을 여셨다"고 말한다. 세상이 알지 못하던 길을 예수께서 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새 사람, 새로운 존재, 새 피조물,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 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 이 참된 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영생으로 인도하고, 유한 존재에서 초월적인 존재로 이르는 유일한 새 길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살아 있는 길이다. 이 말은 예수의 길은 어떤 원칙이나 이념, 우상, 전설이나 신화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는 추상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 전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가 참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하늘, 새 땅을 향해 지금도 계속 행하고 있는 길이다.

성서적으로 보면 우리는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양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길로 오셔서 우리를 삶으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나는 길이다"라고 하신 그분 자신이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묵묵히 그의 길을 가셨다.

그는 또 "각 사람은 자신에게 운명 지어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고 앞장서서 가셨다. 우리들은 그의 분부를 따라, 길 자체이신 그분의 뒤를 따라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나오는 글 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고
밑으로 파고 들어가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박철 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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