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같은 교회, 그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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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같은 교회, 그들의 천국
  • 한상봉
  • 승인 2016.06.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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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랑>, 리북, 한상봉 지음-10
뭉크, 골고타

불한당이란 “떼를 지어 다니는 강도. 명화적(明火賊), 화적(火賊)”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곧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고, 남의 재물을 폭력으로 빼앗는 자들이 불한당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인들에게 ‘나자렛 도당의 괴수’로 지목받아 처형되었다.

유대 전쟁사를 기록한 요세푸스는 그 반란의 무리들을 ‘강도떼’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면 예수를 따르는 교회란 기실 ‘제국에 반역하는 강도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는 모든 권위적인 질서를 거부하였다. 로마제국의 철권통치는 물론 헤로데 안티파스의 매판 권력 그리고 유대교 율법 전통을 거절하였다.

어느 시대에나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은 “영영세세 안녕” 또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를 연발해 왔다. 그리고 이런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날강도’로 취급하였다. 예수도 그 한 희생양에 불과하며, 마땅히 교회도 하느님 나라의 전망 안에서 기성 질서를 비판하고 “이건 아냐!”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평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의연하게 예수처럼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월트 휘트먼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 시대의 반역자들이었다.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였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본의 힘에 줄을 대고 있을 때, 그네들은 탈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자긍심을 느껴 왔다. 물질이 줄 수 있는 제한적 자유보다도, 영원한 진리가 주는 정신적 자유를 즐겼다.

산란을 위해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초월적 감각’을 지닌 사람만이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를 안다. 기득권자들은 이들을 ‘불한당’이라 부르지만, 민중은 그들을 ‘위대한 영혼’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남의 물건을 한 번도 빼앗은 적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재산과 몸을 만인을 위해 봉헌하였으며, 결국엔 강도나 불한당 대접을 받고 감옥에 갇히거나 모욕을 당하고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의 동반자가 되어 이득을 탐하고, ‘번영신학’에 빠져 있는 교회, 그래서 박해받지 않는 교회, 예언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기득권을 탐닉하느라 정신없는 교회는 ‘불한당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육시(戮屍)당한 시체처럼 버림받은 마르크스의 영혼이 내뱉은 예언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하고 말이다. 마르크스를 곱게 귀천(歸天)시키려면, 아편의 성분을 조사하기에 앞서, 먼저 예수의 성분, 성직자들의 성분을 검토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혈흔(血痕)에서 불한당의 피를 찾아내어야 한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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