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역사공원과 노숙자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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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역사공원과 노숙자예수
  • 가톨릭일꾼
  • 승인 2020.02.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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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사진출처=cssphiladelphia.org
사진출처=cssphiladelphia.org

청동 조각에서 예수를 만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성경말씀을 새기며 캐나다 조각가 티모시 쉬말츠(Timothy P. Shmalz)는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 청동상을 조각했다. 그러나 그 청동상은 미국 뉴욕 성 패트릭 대성당과 캐나다 토론토 성 미카엘 대성당에서 모두 설치를 거부했고 노스캐롤라이나 성 어반 성공회 성당에 설치된 후 ‘신성모독’으로 철거되었다.

‘노숙자 예수’ 청동상은 도심의 벤치에 얇은 담요를 얼굴까지 덮어 쓰고 누워있는 전형적인 노숙인의 모습이다. 티모시 쉬말츠의 작품 어디에도 예수의 신성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담요 바깥으로 나온 맨발에 뚫린 큰 상처, 마치 십자가 위에서 받은 대못의 상처를 연상시키는 모습은 청동상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성호를 긋게 한다.

2013년 3월 로마 주교이자 제266대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된 교종 프란치스코는 그 해 11월 바티칸에서 티모시 쉬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청동상을 축복하고 기도했다. 교종이 청동상을 바티칸 라디오 건물 근처에 설치하기로 한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얼어 죽은 노숙자 여인을 추모하는 마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느님의 아들도 이 세상에 올 때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오래된 단어 ‘거지’가 아닌 낯선 단어 ‘노숙자’가 나온 것은 이른바 IMF를 겪으면서였다. 1998년 초부터 서울역에는 병든 노인이 아니라 사오십대의 건장한 이들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서소문역사공원이 아닌 서소문공원 시절 그곳에는 텐트촌이 생길 정도였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좁은 장소에, 가장 많은 노숙자’가 모여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1998년 10월 한겨레신문사 강당에서는 <작은책> 주최로 '당신도 노숙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주제를 놓고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이 열릴 정도였다.

티모시 쉬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청동상과 '당신도 노숙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교종 프란치스코가 201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의회 지도자들의 점심 요청을 뒤로하고 노숙자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하느님의 아들도 이 세상에 올 때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와 결코 다르지 않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서울역을 비롯한 곳곳에 노숙자는 여전히 많지만 서소문역사공원에서 노숙자는 사라지고 노숙자예수 청동상만 있는 것은 아닐까? 청동조각 ‘노숙자 예수’는 왜 서소문역사공원에 설치된 것일까? 공원 야외에 설치된 대리석 제대 옆의 ‘노숙자 예수’ 무슨 의미일까?

 

사진=김유철
사진=김유철

서소문역사공원과 노숙자

서소문역사공원의 조성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일방적 성지조성사업이라는 비난이 천도교·불교에서 나오고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원회 등의 시민단체 성토와 사회언론 역시 우려의 눈길을 보내던 2019년 2월 1일 종교투명성센터는 <순교자를 능욕하는 천주교는 서소문공원에서 철수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성명서의 3항에서 특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노숙자’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차라리 노숙자문화공원이 합리적이다. (중략) 천주교는 조선후기의 특정시기만을 대상으로 서소문일대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후기인 대한민국시기에는 그 공간은 한동안 노숙자들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잠깐 와서 처형당한 천주교신자들보다 노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머문 시간이 더 길다. 천주교쪽 주장대로라면 차라리 서소문순교성지로 하지 말고 한국노숙자문화공원으로 만드는 게 더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러하다.

서소문역사공원에 설치된 ‘노숙자예수’ 청동상과 관련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교계언론들은 청동상 조각의 겉모습 의미만 말했을 뿐 서소문공원과 노숙자의 연관성 혹은 노숙자의 숙식을 비롯한 생활과 건강 등을 보도한 것을 듣거나 보지 못했으며 심지어 청동상의 작가인 티모시 쉬말츠에게 모티브를 주었던 마태25장의 ‘가장 작은이’에 대한 의미마저도 성경 안에 가두어 버리고 접근불가로 만든 것은 아닐지 염려될 뿐이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노숙자를 이렇게 대했다

천주교인이 입만 열면 존경한다는 교종 프란치스코가 2013년 취임한 이후 그가 ‘노숙자’로 대변되는 가난한 이, 즉 ‘가장 작은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과연 세상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어떤 일을 해주기를 바라며, 언론은 무엇을 가치 있는 뉴스로 생각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략적인 뉴스만 열거해본다. 교황 “노숙자 죽음은 더 이상 뉴스도 아냐” 개탄. 헤럴드경제 2013년5월19일/ 교황이 초대한 생일 손님은…노숙인 3명과 떠돌이 개 한 마리. 한겨레 2013년12월8일/ 교황, 바티칸에 노숙자 샤워시설 설치 지시. 연합뉴스 2014년11월14일/ 교황, 생일 맞아 노숙인에 침낭 400개 선물. 경향신문 2014년 12월17일/ 노숙자들에게 샤워장 선물한 교황. 중앙일보 2015년2월9일/ 숨진 노숙자 바티칸 무덤에 묻힌다. 세계일보 20152월25일/ 교황, 노숙자들 해변 나들이 후원하고 피자 대접. 연합뉴스 2016년8월14일/ 교황 미사에 노숙인·빈민·난민 6000명 초대. 경향신문 201611월14일/ 팔순 맞은 교황, 노숙자 8명과 식사 나눔. 세계일보 201612월18일/ 노숙자를 대하는 교황의 태도. EBS 2017년2월28일/ 교황, 노숙자 무료 빨래방 열어. 조선일보 20174월13일/ 프란체스코 교황, 노숙자와 빈민에게 아이스크림 선물. YTN 2018년4월26일/ 교황청 자선소 ‘자비로우신 어머니 병원’ 개원. 가톨릭신문2019년1월6일/ 교황 노숙자 등과 오찬. 연합뉴스 2019년11월18일/ 교황, 교황청 궁전 개조해 노숙자 쉼터로 제공. 연합뉴스 2020년2월3일

 

서소문역사공원에 노숙자예수상은 왜 만들었을까?

교종 프란치스코를 존경하고 순명한다지만 그처럼 하기는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혹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프란치스코와 같이 노숙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노숙자를 위한 샤워시설과 빨래방과 병원을 만들고, 겨울에는 침낭, 여름에는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선물하고, 노숙자의 시신을 교회 묘지에 안장하고, 교회를 숙소와 피난처로 내어주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노숙자 예수’를 만나는 성경말씀이다.

서소문역사공원을 겉으로만 성지로 꾸미고 나서 성공의 축배를 들 때 ‘노숙자예수’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마태25,42-43)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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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2020-02-25 21:35:53
마드리드에서도 같은 조각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기사 내용과 같은 생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