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따라 사는 삶, 육을 따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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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따라 사는 삶, 육을 따라 사는 삶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0.02.0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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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길이신 그리스도-5: 육(肉)과 영(靈)
사진출처=monasticway.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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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가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은 다만 “육”이 아닌 “영”에 따라 “걸으라”(여기서는 살라는 뜻)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육이란 육체적인 삶이 아니라(성령께서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성화시키니 이것은 옳지 않다) 세속적인 삶을 총칭하는 말이다. “육”이란 관능성이나 방탕함 뿐 아니라, 세속적인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 인간적인 관점이나 사회적 통념을 근간으로 하는 활동들까지도 포함한다.

우리가 편견, 자기 만족, 편협함, 집단적인 오만함, 미신 숭배, 야망 또는 탐욕의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육”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이 마음의 진실함이 아닌 위선적인 가식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육”적인 것이다. “육적인 성향”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사람들의 찬사를 불러 일으킬만한 용기 있고 아찔한 행위일지라도 하느님 눈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간들을 향한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영광을 좇지 않고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영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생명과 평화로 이끈다.

영의 법은 겸손과 사랑의 법이다. 영의 목소리는 우리 영혼의 깊은 거처로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것으로 육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이다. “육”은 우리의 외적인 자아로, 거짓 자아이기 때문이다. “영”은 우리의 진실한 자아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한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이다. 우리 존재 안의 이 감추어진 성역에서 양심의 목소리는 우리 자신의 내적인 목소리인 동시에 성령의 목소리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존재”가 되면서부터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사시고, 성령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교적 덕은 이러한 내적인 일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의 자아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우리의 생각은 그리스도의 생각과 같아지며 우리의 욕망도 그분의 욕망과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성령과 하나된 삶을 말하며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삶인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삶이고, 완전한 영적 진실함이며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영웅적인 겸손함을 의미하는 삶이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진리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하찮음을 통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아야 한다. 자기자신의 덧없음을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삶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당신께 의탁하게 하시고자 하는 바로 그 현실이며 당신 자신의 형상과 모상 안에서 변화시키고 성화시키시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탁하여 참을성을 갖고 악과 겨룰 수 있을 만큼 차분하고 객관적일 수 있게 된다. 성령을 따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으로, 육적인 것을 거부하고 우리의 선한 의도를 지켜나가고 잘못된 외적 자아의 요구를 부정하고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활동에 우리 마음의 전부를 내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계신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8,9-11).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 신앙, 그리고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 안의 악한 경향은 -우리의 과거로부터 남아 있는 “죽음”의 씨앗과 뿌리-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은총은 그것이 자라는 것을 막아주며 우리가 이런 경향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려고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구원 활동의 확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 “보시는 것”은 우리의 악한 성향이라기 보다는 그분께서 주신 선함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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