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조용히 앉아있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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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조용히 앉아있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1.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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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요히 머무는 것을 배우기(2)

우리 세계는 산만함과 여흥의 기회를 끝없이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 다양함에 대한 굶주림은 근래의 현상이 아니다. 17세기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이미 이 문제에 관해 날카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때때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불행을 일으키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방에서 조용하게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파스칼은 시간을 보내는 세상의 방법들이 지닌 한계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간파한다, “세상의 방법들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주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참다운 행복이란 도박에서 이길 돈을 갖거나 사냥해서 잡힌 토끼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아무도 행복을 그냥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불행한 조건에 대하여, 전쟁의 위험이나 생계의 부담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주는 단순하고도 평화스러운 삶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방향을 바꾸게 하는 선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획물보다 사냥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세상의 방법들에 끌리는 것은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기보다 우리의 불행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방법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불행을 앞질러 막아준다. 파스칼에 의하면, 그러한 산만함은 재물과 권력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외친다,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공허하고 비열한가!”

그러나 그는 언짢은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의 실체, 특히 수학의 원리로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보였다. 천재 신동으로 그는 기하학에 관한 책을 썼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계산기를 발명했다. 이밖에도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고, 공기의 무게를 정하며, 파리의 공공교통체제를 처음으로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파리는 그를 지하철의 은인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파스칼의 실제에 관한 이해는 극적으로 확대된다. 그는 그 날짜를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30분 경부터 12시 30분 경”까지 라고­ 정확하게 적어 놓았다. 그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과 깊고도 신비스러운 만남을 경험했다. 그는 이때의 감동을 한 양피지 조각에 적었고 그것을 윗저고리 안쪽에 꿰매었으며, 죽는 날까지 간직하였다. 그는 8년 후 서른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증언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었다, “확실함, 확실함,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기쁨, 평화, 예수그리스도의 하느님...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파스칼은 이 체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체험 이후로 그의 탁월한 능력을 원추와 미적분보다 신앙의 문제에 집중시켰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교를 열렬히 옹호하는 글을 쓰고, 당대의 회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신앙에 관한 글, 역설적이게도 사후 1662년에 발간된 미완성의 글 <팡세>로, 파스칼은 가장 잘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 파스칼의 계획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기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증언과 인간마음의 신비에 대해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1부: 하느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2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인간의 행복”

하느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파스칼이 마음에 두었던 청중은 예의바른 불가지론자들이었다. 그들은 과학에 열중하고 가장 최근의 지적인 유행을 선도하고, 책들을 끼고 있으며, 또한 도박, 운동, 취미 등으로 쾌락을 즐겼던 사람들로서 자신들을 지상에서 비참한 사람들 측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러한 상태를 논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권태로움, 변덕, 불안”이 인간조건의 번지르르한 측면을 요약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파스칼은 기분전환 꺼리를 허기진 듯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우리는 절대로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한다. 우리는 마치도 미래가 너무 천천히 온다고 하면서 그것을 서둘러 오게 하려는 것처럼 미래를 기대한다. 혹은 마치 과거가 너무 빨리 날아간다고 생각하며 과거를 기억한다... 우리 각자의 생각을 살펴보자. 그러면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현재에 대하여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고 해도 현재가 우리의 미래계획에 어떤 도움을 준다고 할 때에만 바라볼 뿐이다.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되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는 그저 우리의 수단일 따름이고, 미래만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 이처럼 우리는 결코 실제로 살아있지 못하고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항상 행복해지려고 계획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파스칼도 인간존재가 행복에의 욕구와 그것을 찾을 줄 모르는 선천적인 혼동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의 비참함에 대한 가장 심각한 징후는 조용히 있을 수 없는, 현재에 존재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대신 우리는 영원히 이것저것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추구한다. “만일 사람이 행복하려면 성인들과 하느님처럼 덜 산만하게 되는 만큼 더 행복할 것이다.”

파스칼의 한탄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오늘날 이러한 산만스러움과 기분전환의 꺼리들은 더 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불란서보다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산만함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컴퓨터, 인터넷, CD, DVD, 가족오락체제 등, 이 모든 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편재하고 있으며, 모두 고독과 침묵의 관점에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에 대하여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우리 방에 조용히 앉아있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아마도 우리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보다, 오직 우리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밤에 홀로 미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은 내적인 삶이 양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독은 확실히 “지적인 삶”, 즉 학식을 배우는 역량과 같은 것이 아니다. 고독은 존재의 핵심에 머무는 문제이며, 사막의 교부들은 그 핵심을 마음, 혹은 영혼이라고 불렀다. 바쁜 상업문화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우리로 하여금 내적인 삶을 비켜나 표면에 살도록 부추기고 소비, 기분전환, 최근의 화제 꺼리, 혹은 다음의 큰 전율을 재빨리 정함으로써 우리의 불안한 갈증을 만족시키도록 몰고 간다.

이처럼 파스칼의 “변덕, 권태, 불안”이란 표현이 우리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것들이 인간 삶의 총체라면 행복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헛수고이다. 그러나 파스칼의 구도에서는 비참함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그는 인간존재의 비참함은 추방된 영장의 불행으로, 그에게 참다운 행복의 기억은 공허한 그림자처럼 맴돌며 어슬렁거릴 뿐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파스칼도, “하느님 홀로 인간의 참된 선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을 버렸는데도 자연의 아무 것도 그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별, 하늘, 땅, 식물 등등… 참다운 선을 잃어버렸으므로 사람은 아무 것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파멸 속에서도 선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빠져나갈 길은 있다. 파스칼에게 그리스도교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딜레마(창조와 추락에 관한 그리스도교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위대함과 비참함의 혼합)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힘과 두 번째로,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신뢰도에 있다. 그는 우리의 무질서의 심연과 하느님 사랑의 깊은 심연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참다운 본성, 우리의 진정한 집에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우주는 더 이상 우리가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는 차갑고 무심한 방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 신비에 머물면서 우리는 두려움없이 우리의 방에 앉아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인들과 함께 참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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