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에 저당잡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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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에 저당잡힌 사람들
  • 로버트 엘스버그
  • 승인 2020.01.2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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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스버그의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고요히 머무는 것을 배우기(1)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줄 알아라."(시편 46,10)

"우리는 하느님을 시끄럽거나 격동이 칠 때 발견할 수 없다.
자연, 나무, 꽃, 그리고 잔디는 침묵 속에서 자란다.
별, 달, 그리고 태양은 침묵 속에서 움직인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

오지의 부탄왕국은 히말라야의 그림자 아래 조용하게 앉아있다. 수년 전 부탄의 왕은 많은 관심을 끈 이상한 발표를 하였다. 그는 그의 작은 부탄의 국가정책이 국민 총 생산의 증가가 아니라, 국민 총 행복의 증가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과 언론 관계자들은 이 행복한 왕국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곳에 몰려들었다.

방문객들은 그곳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참으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들고 돌아갔다. 부탄은 소위 현대기술문명의 “혜택”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황폐되지 않았다. 어떤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부러울 만큼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경제전문가들이 거의 상품가치가 없다고 판정하는 상품이지만 “국민 총 행복”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인인 시간을 그곳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부탄의 주민들이 마술로 뉴욕 맨하탄에 이주한다면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가질까 궁금하다. 아마도 휴대폰을 들고 말하면서, 군중이 가득한 거리를 볼일을 보러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문화의 가장 전형적인 특색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현상은 “시간이 돈”이라는 규율을 말해준다. 어떤 순간도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두 세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전달매체의 놀라운 발달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대화할 때나 교회에 앉아 있을 때, 혹은 잠을 잘 때에도 항상 끊임없이 대기중이다. 통신회사들은 이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고 외친다.

다른 한편 이 모든 “연결”은 현재의 순간만 빼고 다른 모든 곳에 있으려는 우리의 비참한 욕구를 반영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을 무서워한다. 우리는 바쁜 일정이 주는 소모적 압력을 불평하지만, 자주 우리가 참으로 아쉬워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긴 시간, 고독, 혹은 고요함은 공포스러울 수 있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일정을 없애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텔레비전을 틀거나 신문을 보거나 전화기를 들어 통화하고, 우리가 그 전에 경험했던 것 보다 더 우리를 소진시킬 어떤 여행을 계획한다.

물론 참다운 노동의 정신이 있는 것처럼, 참다운 여가를 즐기는 정신도 있다. 그러나 진짜로 우리를 부추기는 것이 조용히 있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라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행복을 위한 처방은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하는 욕구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이다. 만일 그런 의미의 “행복”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진실한 조건을 감추는 위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성인들은 물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많은 큰 일들을 했다.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고요함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참으로 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와 관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고요함과 침잠 속에서 그들은 다른 모든 일과 행동을 분별해주는 평화를 발견했다.

조용한 장소는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그러나 단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내적인 소음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바깥이 조용해도 우리는 내적인 소리와 경고들, 해야할 일을 상기시켜주고, 잘못 처리한 일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안의 소리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소리들은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여기 지금으로부터­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소리들은 만일 우리가 다음 번 마감 때까지 해 치울 수 있다면, 적절한 신용장을 얻기만 한다면, 완벽한 일자리를 얻거나 안정권의 점수를 딸 수만 있다면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끊임없이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살 것을 준비한다면, 우리가 참으로 깨어 살게 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로버트 엘스버그 /1955년 미국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존재의 의미와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을 찾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 2학년을 마치고 1975년 도로시 데이와 함께 5년 동안 일했다.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모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한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변화된 가톨릭교회 모습을 체험했다. 도로시 데이의 작품집을 냈으며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학년을 가르쳤다. 1987년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 Orbis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모든 성인들>과 <모든 여인 가운데 복되도다> 등이 있다. 도로시 데이 시성식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뉴욕 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가 발간한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Robert Ellsberg)를 <참사람되어> 2005년 3월호에서 편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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