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처럼 작은, 민들레국수집이 꿈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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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처럼 작은, 민들레국수집이 꿈꾸는 세상
  • 서영남
  • 승인 2020.01.20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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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 일기]

식탁 하나에 간이의자 여섯 개를 놓고 배고픈 손님께 겨우 국수 한 그릇 대접하면서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입니다. 어느새 17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22세에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가서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25년을 살다가 나이 47세에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수도원을 나와서 제가 가진 것을 전부 털었더니 3백만 원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생색내는 돈은 받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착한 개인들의 희생으로 나누는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참 쉽습니다. 장소가 좁아도 괜찮습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따뜻한 마음만 담아서 대접하면 됩니다. 찾아오는 손님은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달걀 프라이 하나 얹어 드리면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합니다.

2008년 민들레국수집 5주년을 기념해서 무얼 할까 꿈꾸다가 지역아동센타나 학원도 갈 수 없는 동네 아이들을 우리가 도와주자고 시작한 것이 '민들레 꿈 공부방'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도 만들고 또 어린이 밥집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간식과 저녁을 나누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2009년에는 민들레희망센터를 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은 손님들이 빨래하고 샤워하고 낮잠도 잘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말하기 훈련을 하기 위해서 독후감 발표를 간단하게 하면 장려금으로 삼천 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민들레 옷가게도 있습니다. 그리고 민들레 진료소를 매월 두 번 운영합니다.

한 번도 우리 손님에게 잘 살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 희망센터에서 책을 보고, 몸을 씻거나 낮잠을 잡니다. 오후 5시면 다시 노숙하러 거리로 나갑니다. 감기 몸살로 아프거나 다음 날 새벽 일하러 나간다면 찜질방 표를 그냥 드립니다. 이제는 정말 노숙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 조금 거들어 드립니다.

2014년에 민들레국수집 운영은 안사람인 베로니카에게 맡기고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닐라 칼로오칸의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에서 민들레국수집 스타일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일을 했습니다. 나이 60에 새롭게 시작한 일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봄에 아주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터무니없게도 인천교구에서 주보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인천교구의 입장"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2014년에 깨끗하게 관계가 정리되었는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이러다가 문을 닫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멀리 필리핀도 날벼락이었습니다. 2017년 1월에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만 남겨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처럼 더 변두리로 가서 GMA 카비테와 나보타스 두 곳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그맣게 아이들이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나보타스 땅오스 마을에 민들레 작은학교도 만들어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필리핀 봉사자들이 스스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음에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소꿉놀이처럼 작은 민들레국수집이 꿈꾸는 세상은 가난한 이들 곁에서 가난하게 함께 사는 것입니다. 계획도 없이 그냥 옆에 있으면서 따뜻한 형제애를 나눕니다. 환대의 집처럼.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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