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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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0.01.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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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길이신 그리스도-2: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화
사진출처=cartusialover.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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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적 거룩함은 단순히 도덕적인 완전함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덕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덕들을 모두 합친 것 그 이상이다. 거룩함은 선행이나 도덕적인 영웅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존재론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물론, 거룩한 삶에 대한 신약 성서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이 말을 이해해야 한다. 사도들의 서한을 통한 정신적인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대해 교리 차원에서 끊임없이 명확하게 해석해 주고 있다. 사도 요한 역시, 우리 삶의 영적인 열매들은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또한 그분의 신비한 몸에 포함됨으로써 결실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그 몸에 붙어 있고 포함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았다(요한 15,1-11). 그렇다고 이것이 덕행과 선행을 무의미한 것으로 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새로운 존재에 비한다면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스콜라 철학의 금언에 따르면 행동은 그것을 행하는 존재를 그대로 반영한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엉겅퀴 속에서 무화과를 수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내적으로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성령은 새로운 생명이자 그리스도이시다. 존재론적으로 성화되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성령과 일치해야만 한다. 성령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노력만이 우리를 도덕적인 선(善)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규칙, 윤리적인 실천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태어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갈라디아서 6,15 참조). 우리는 “사랑을 통해 드러나는 신앙”으로(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비로소 모든 덕행과 사랑의 원천이 되는 성령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덕스러운 그리스도적 삶은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덕행을 실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여 우리의 사랑과 새로운 존재를 덕행의 실천을 통해 표현하는 삶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우리는 모든 열성을 다해 그분이 당신의 덕과 거룩함을 우리의 삶 속에서 표출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기심, 불순종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반대되는 집착이라는 장애물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가 “그리스도 홀로 거룩하시도다!”라고 부르는 영광송은 확실히, 거룩한 모든 것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세상에 전달되고 드러나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께서 먼저 거룩해지셔야 한다. 우리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셔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고린토 전서 1,24, 30).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우리의 동의와 거룩한 은총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숨어 있는 거룩함을 드러내시며 그분은 영원하시고 인간의 눈이 볼 수 없는 영원하고 보이지 않는 시대의 왕으로서, 그분 자신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보내지는 빛 속에서만 관상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 “완전함”을 단순히 윤리적인 모험이나 목표물로 취급해 인간이 거기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순전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로 그의 아들을 통해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영혼을 숨어 있는 거룩한 신비의 구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사진출처=liturgia.mforos.com
사진출처=liturgia.mforos.com

그리스도인은 신비적인 삶에 깊이 헌신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대단히 신비적인 종교인 까닭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술적이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신비가”가 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모두 거룩한 존재를 완전하고 신비롭게 표출하고 그와 교류하며 살아야 한다.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전체의 목표이기도 한 구원은 하느님의 삶에 동참하는 것으로 그분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베드로 전서 2,9) 주신다.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삶과 희망을 그리스도의 신비에 두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된다”(베드로 후서 1,4).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힘과 하느님 빛의 에너지는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하여 성령의 힘으로 그것의 “밝기”를 한 단계 높여준다. 그리스도의 내적인 성화의 뿌리와 근본은 여기에 있다. 이 빛, 우리 삶의 에너지를 우리는 보통 은총이라고 부른다.

은총과 사랑이 성령에 의해 한 몸으로 부름 받은 형제적인 유대를 비추면 비출수록, 그리스도가 세상에 구현되는 것이며 아버지가 그만큼 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고 모든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되어 하느님의 사업의 최종적인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에페소 1,10).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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