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에 등불을 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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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마음에 등불을 켰는가
  • 박철
  • 승인 2020.01.1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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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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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가 4,21-22)

날이 밝으면 등불을 켜서 손에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사람을 찾는다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란 철인(哲人)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무어라 했을까? 미친 사람쯤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거지처럼 남루한 디오게네스는 거짓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사람을 속이고 울리고 등치는 짓거리를 한다는 것은 제 살을 제가 베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을 디오게네스는 알았다.

나는 어릴 적 학교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호야를 닦는 일이었다. 집 앞 개울가에 가서 짚으로 호야를 닦는다. 짚을 호야 속에 집어넣고 돌리면 새까만 그을음이 잘도 닦인다. 투명한 호야를 호롱불 틀에 끼우고 어머니는 불을 붙인다. 어두운 방안이 금새 환해진다. 어머니는 호롱불 아래에서 재봉틀을 돌리셨다.

우리가 살던 집 앞에 육군 의무중대가 있었는데, 훈련하다 다치거나 질병이 있는 군인들이 일정한 기간동안 치료를 받는 병원이었다. 어머니는 군인들을 상대로 군복수선을 해주는 일을 하셨다. 그런데 가끔가다 호롱불이 껌벅거릴 때가 있다. 심지가 눌러 붙었을 때이다. 그러면 심지를 가위로 자르고 올려주거나, 딱딱하게 눌러 붙은 심지를 손으로 만져 부드럽게 해주면 불이 잘 붙어 환하게 빛을 비춘다. 등불이 잦아들면 심지를 돋우어 등불을 환히 밝힌다. 심지가 부실하여 기름을 빨아들이지 못하면 빛을 밝힐 수 없고 등잔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내가 문제이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고는 아무런 삶의 진전이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다. 예수의 일방적인 선언은 우리를 그만큼 신뢰하신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빛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모든 사람을 밝혀 주어야 할 빛을, 아니 생명을 자신의 이기심이란 됫박으로 제한시켜서, 그 생명력을 질식시켜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 이기심의 됫박으로 등불을 덮어 버릴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둠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어둠 속에 갇혀버리게 만들 것이다. 등불은 등경위에 두어야 한다. 좋은 삶의 양식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등경 위에, 아니 산(山)이라는 교회의 등경 위에 올려놓아 암흑의 세상을 밝히어 온 누리에 빛을 비추게 해야 한다. 그 빛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이며 희망이 되겠는가?

등불의 속성은 어둠을 물러나게 해 그 주변을 밝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등불이 비추는 반경 내에는 밝음이 머문다. 등불은 밝은 데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둡기 때문에 등불이 필요하다. 실체만 있고 불이 켜져 있지 않거나 감춰져 있어서 세상을 밝게 하지 못하는 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있을 때 행위 또는 언어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행위의 씨앗을 심든 그 결과는 열매로 보여 진다. 이 세상 모든 일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속이는 일은 잠시 사는 일이다. 진실을 말하는 일은 오래도록 살아남는 슬기로운 방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둠 속에 있을 수 없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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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언행은 언젠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마음의 등불을 꺼둘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나 비리를 부인하고 감추려다가 들통 나서 망신을 당하고 명예마저 잃어버리는 유명인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실을 감추려다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솔직한 편이 낫다. 등불을 켜야 한다.

남이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내 속의 진정한 내가 죽는 일이다. 내 속의 진정한 내가 서서히 삭아가는 일이다. 마음에서 꺼져가는 양심이라는 등불을 켜라. 오해로 멀어져간 내 친구에게, 나를 기다리는 이웃에게 사랑의 등불을 켜는 것이다. 서로 가슴을 여는 일이다. 이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그의 삶이 얼마나 환하고 좋겠는가?

"그대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모질고 험한 시련의 언덕을 넘을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등불이 되어 준다면
그대의 꽁꽁 언 손을 붙잡아 준다면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가 될 것인가
갈 길은 멀기만 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늘도 땅도 산도 나무도 아득히 잠든 밤
홀로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며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 준다면
그대의 외로움과 눈물을 닦아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환해지겠는가
겨울나무 사이로 쇳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가고
멀리서 개짓는 소리 컹컹 짓는 외로운 밤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는 첩첩 산길
지친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밤길을 걸어갈 때
누군가 그대를 위하여 등불이 되어 기다려준다면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만큼
반가움으로 그리움으로 가득하지 않겠는가
아, 그리운 등불이여"
(박철. <등불>)

 

박철
샘터교회 동사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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