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린 "땅으로 돌아가, 창조적 손노동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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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땅으로 돌아가, 창조적 손노동 되살려야"
  • 서민호 미카엘
  • 승인 2020.01.0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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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운동에 관한 글 - 세번째」

이번 글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하여 무수한 자원으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종합했던 피터 모린의 생각을 좀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기계화된 노동

간디는 말한다:
“산업화는 악이다.”

산업화는 악이다.
왜냐하면 산업화는 자본가 계층에나
노동자 계층에
게으름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자본가 계층이나
노동자 계층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

창조적 노동은
사람들을 해악으로부터 지켜준다.

창조적 노동은
손으로 하는 노동이다.

기계화 노동은
창조적 노동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에서 아무런 기쁨도 못 느낀다

칼라일은 말한다:
“자신의 일을 찾은 사람은
그 일에서
모든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기계화된 노동에서
아무런 행복도 찾지 못한다.

챨스 데바스가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기계화된 작업을 행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별로 생각이 필요없으며
독창성도 요구되지 않고
전 생산과정에서
자신의 작업이외에 다른 과정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생산품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낄 자리가 없고
따라서 그들 일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디이 마샬이 말한 것처럼,
“전에는 노동자들이 모든 생산품의
전 과정에 자신의 손으로 참여하였다.
그 자신의 것인 모든 기술을
생산품에 담을 수 있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기계가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주의와 예술

에릭 길이 말한다:
“노동의 개념이 예술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유용의 개념이 아름다움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책임있는 노동자였던 예술가는 모든 노동자들로부터 분리되었다.
공장의 손들은 그가 생산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는 지적인 무책임의 비인간적 조건으로 격하되었다.
산업주의는 모든 유용한 것을 만드는 필요성으로부터 예술가를 풀어주었다.
산업주의는 모든 즐거운 것을 만드는 필요성으로부터 노동자를 풀어주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자료로부터 모린이 수집한 산업주의에 관한 비판을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아마도 사회분석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는 인정을 받았으면서도 사회문제에 관한 이런 분석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모린은 깨달았고 그래서 사회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모린은 사람들이 더 이상 “지적인 무책임의 비인간적 조건”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회에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는 공황시기였고 모린은 산업화가 실패했으며 유럽과 미국사회가 혼란에 떨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모린은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시작된 혼란의 암흑시기에 아일랜드의 학자들이 이룩했던 작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 암흑의 시기에 유럽은 전체적으로 혼란했으며 아일랜드의 학자들은 유럽을 폭력으로 물들게 했던 이른바 바바리아인들로부터 피난처를 마련하였다. 대륙에 질서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으로 학자들은 모린이 말한 것처럼 “지적인 종합과 행동의 기술”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의 기술과의 종합으로 학자들은, 중세 유럽의 기초를 놓기로 결심하였다.

이 기초를 놓기 위하여 아일랜드의 학자들은 ‘문화의 방’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 사람들이 사상을 추구할 수 있고 그럼으로서 빛을 찾을 수 있기 위하여 아일랜드의 학자들은 모든 유럽 곳곳에 농경센타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다음과 같이 통합하였다.

경배와 - 전례라고 할 수 있으며, 
문화와 - 문예라고 할 수 있으며, 
경작을 - 농예(農藝)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통합한 것이다.

모린은 단순히 농경공동체만을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아일랜드의 학자들처럼, 모린은 전적으로 새로운 문화적 기초, 즉 기초적인 농경과 수공예의 손노동과 창조적이며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위하여 자신의 지식을 심화시키는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 배움과 우리 삶의 방향과 힘에 끊임없는 원천이 되는 영적 기반으로서의 종교를 통합하여 새로운 문화적 기초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세가지 영적 실천적 기둥: 종교, 배움, 손노동 

모린의 견해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주제 즉 경배(종교), 문화(배움) 그리고 경작(손노동)은 새롭고도 건강한 사회질서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경배는 경작과 문화의 통합에 있어 핵심이다. 왜냐하면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초월성에 물들여져 있기 때문이며 그 완성은 거룩한 생활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참여가 가톨릭전례로 표현되고 있다. 종교란, 모린의 견해에 의하면 땅과 문화(배움)의 생활에 바탕이 되는 것이니, 예배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사고와 갈망에 일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삶은 그 중심인 영적 생활로 향할 때에야 비로서 정리되고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모린은 협동의 가치가 있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열매를 맺어 먹고사는 생활이며 기계문명에 반대되는 수공문명에 강조를 두는 생활인 농경생활방식이 이러한 영적 생활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농경생활에서는 믿음과 일 그리고 생활양식이 하나로 일치될 수 있는 것이다.

Holy Family Farmworkers, by Fritz Eichenberg
Holy Family Farmworkers, by Fritz Eichenberg

우리는 도시생활에서 종교와 일상생활이 얼마나 크게 분리되어 왔는가를 알아볼 수 있다. 일요일, 교회마당에서 복음적 가치나 영적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가 지닌 힘은 온통 일하고 있는 회사의 경제적 이익이나 우리 자신의 재정적인 안정에 관하여 혹은 기계적 생존이 일으키는 바로 그 부담을 잊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사는 데 소비되고 만다.

모린의 이상적인 생활방식은 아마도 오늘의 가톨릭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린은 농경공동체가 우리 현시대에 왜 설립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가족과 공동체들이 농경작, 수공예 그리고 자급자족의 산업을 통합하는 작은 농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비록 이 모든 시도들이 하나의 신앙아래 뭉치거나 모린의 생각을 그대로 도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신앙을 중심으로 농촌생활 - 단순한 생활양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혹은 배움은 개인과 공동생활의 두 번째 기둥이다. 모린은 도시의 인위적인 세계보다 땅에서 사는 것이 사람에게 기계적인 삶의 철학보다 유기적인 삶의 철학을 갖게 해 줄 수 있다고 느꼈다.

농경, 수공예 문명에 대한 책임과 노동의 통합성을 느끼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감지할 뿐 아니라 배움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격적인 상호의존성이 있기 때문이며 각자가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있어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의 틈바구니에서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느니보다,” 그리하여 수동적인 입장이 되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고유함을 취하도록 고무되기 때문이다. 모린의 견해에 의하면 주체적인 진취성과 상황파악의 필요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성과 아름다움의 개발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며 따라서 문화의 개발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이나 다른 자본주의사회에서 보는 것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고 다수는 그 결정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우리의 교육기관, 직장, 정부,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창조적이며 독립적인 사고는 거의 고무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 역사, 나라 그리고 우리 신앙에 대한 “배움”은 이제 그리고 지금까지 항상 사실을 암기하는 것에 그쳐왔다. 예술, 문화,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 종교를 정의하는 지적 작업은 오직 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만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경대학, 그곳에서 신앙과 배움과 농업이 모두 모든 사람에 의하여 실천되고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농경대학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학기관과 달리, 이 농경대학에서 사람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손까지 사용하는 법을 배울 것이었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이익이라는 생각대신 생존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존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주어왔다. 오늘날 우리시대에 생존농경이란 노예노동이외에 다른 의미를 사람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고용된 노동자들 역시,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생존이상의 것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여분의 돈이 있다면 전자제품이나 주말에 놀러갈 수 있는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입은 아직도 여전히 식량, 연료, 옷에 쓰여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생활은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의 영적 생활보다 개인적 소유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피터 모린의 사상적 배경

모린이 주장했던 생각, 개념들은 책에서만 수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생각들은 모린 자신의 개인적 체험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피터 모린은 프랑스 시골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고 초기 어린시절 대부분을 농장에서 보냈다. 한 그리스도 형제회와 짧은 기간동안 평화/정치운동에 참여한 후 32살에 모린은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도로시 데이를 만나기 전 약 20년 동안 캐나다와 미국에서 지내며 그는 농장에서, 혹은 철도 노동자로, 벌목 노동자로 일했고 노무자와 광부로서, 제재소에서 혹은 건물 수위로 일을 하였다. 당시의 많은 일일노무자들처럼 그는 정해진 숙소가 없었고 그가 받는 임금은 최저 생활을 겨우 면할 수 있게 할뿐이었다.

그는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에서 철학, 역사 그리고 종교를 배웠다. 그의 철학은 서구문화와 역사의 위대한 몇몇 사상가들에게 빌려왔지만 거리의 사람들, 가난한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는 노동자들에게는 생각하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는 먼저 도시화와 산업화의 엄청난 성장을 보았고, 이것 때문에 영혼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가 파괴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모린에게 현대화의 힘과 전통의 종말은 세계와 그 자신마저 암흑 속으로 내던지는 것 같았다.

모린의 목소리는 전통의 소리, 농경문명의 소리였다. 그것은 서구세계에 문화적 지속성을 마련함으로써 이 암흑을 밝히고자 하였고, 현재를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회질서의 기반을 형성함으로써 이 어두움에 빛을 주고자 하는 목소리였다.

먼저 생활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농경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자는 피터 모린의 사상을 공부하는 목적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실상과 문화적 전통에 대하여 더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며, 복음의 빛 안에서 그 실상과 전통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농경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 변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생활방식과 사고에 존재하는 이원주의를 성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자주 “기(氣)”에 대하여 또한 우리 자신의 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리듬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또 다른 순간에 “체제”와 “구조”에 대하여, 우리에게 하루살이같이 명이 짧은 안전감을 주지만 너무나 강건해서 점차 우리가 체험하는 부담과 개인적 갈등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체제와 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철학은 우리와 땅이 하나라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더욱 더 산업화되어 가고 우리의 사고는 더욱 더 이분화되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분리된 별도의 대상으로 보며 결코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기”를 자신들의 전통적 농경문화로부터 먼저 배웠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도시문화 속에서 다시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위험은 “기”가 한국에서 한 가지 산업으로 간주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기에 대하여 책을 쓰고, “기 운동”을 배울 수 있는 센타가 생긴다. 기는 우리의 모든 질병에 만병통치약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의 힘과 보다 더 일치하기 위하여 어떻게 생활방식을 바꿀 것인가 고민하기 보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에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경배, 문화, 경작을 일치, 통합시키는 모린의 사상은 땅과의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들과의 통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린은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선해질 수 있는 종류의 사회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이 기계와 도시사회가 인간을 격하시키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모린은 기계와 도시화가 인간에게 귀중한 것, 즉 창조적 노동, 우리 손으로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사용하는 능력으로서의 노동, 우리를 온전하고도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는 노동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민호 미카엘
미국인으로, 메리놀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였다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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