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황일광들에게 누가 천국을 선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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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황일광들에게 누가 천국을 선물하는가
  • 유대칠
  • 승인 2020.01.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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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47]

“보라,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장막이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으로 지낼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묵시록 21장 3절)

하느님과 더불어 있는 곳, 그곳이 천국이다. 아프고 힘든 이들이 차별 없이 더불어 울고 웃는 그곳이 천국이다. 홀로 아픈 이들과 더불어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바로 이곳에서 말이다. 하느님은 화려한 성전이 아닌 그 더불어 있음 가운데 함께 계신다.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순교자 백정 황일광 시몬의 말이다. 백정이 누구인가?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가장 아프고 힘든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다. 차별과 무시가 일상인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다. 가진 자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할 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아프기만 한 이들이다. 있음 자체가 아픔이고 슬픔이다. 노력해도 신분은 달라지지 않는다. 천민으로 태어나면 그저 천민일 뿐이다. 다른 미래란 없다. 모두가 무시했다. 누구도 더불어 있으려 하지 않았다. 아파도 홀로 아파야 했고, 슬퍼도 홀로 슬퍼야 했다. 황일광은 그런 삶을 산 백정이다. 누구도 홀로 아픈 삶을 반기지 않는다. 천당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든 삶을 천당이라 했다.

복자 황일광(박지훈 작)

하느님의 사랑이 이 땅을 찾아왔을 때, 이 땅은 아픈 곳이었다. 노력 없이 누리는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즐기며 살았다. 힘없는 이들은 죽도록 노력하다 그냥 죽었다. 이용당하다 버려졌다. 임진년, 조선을 버리고 달아나기 바빴던 양반과 왕족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명분 없는 소유를 즐겼다. 의병이 되어 싸우던 민초들은 여전히 힘들고 아프기만 했다, 조선은 힘없는 이들을 품어주지 못했다. 그 아픔이 깊고 깊어졌을 때, 하느님의 사랑이 이 땅을 찾아왔다. 어찌 보면, 이 땅의 아픔이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시는 그 분의 사랑, 그 사랑이 홀로 아프고 힘든 조선 민초를 찾은 것은 필연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필연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뜨거웠다. 기득권으로 살아가던 양반을 녹였다. 가난하고 약한 천민을 무시하던 양반을 녹였다. 백정 황일광에게 다가가 그 아픔을 안아주었다. 더불어 있었다. 양반이 백정과 더불어 있다는 것, 맞다. 바로 하느님이 오실 자리다. 양반이 천민과 더불어 밥 먹고, 그들과 더불어 하느님 뜻을 고민했다. 순교할지 모르지만 기꺼이 더불어 있었다. 그러니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그 더불어 있음 자체가 하느님 계심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 더불어 있음 가운데 서로는 서로에게 희망이었다. 더 이상 무시 받아야 할 ‘백정 황일광’이 아니었다. ‘사람 황일관’이며, 하느님 품 가운데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랑하는 가족 황일광’이었다. 당시 조선에선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황일광을 품어준 정약종은 한자가 아닌 민중에게 편한 한글로 하느님의 뜻이 담긴 <주교요지>를 적었다. 그 책을 들고, 양반과 상인 그리고 천민이 더불어 하느님 뜻을 궁리하였다. 황일광 시몬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 받고 다른 신분의 교우들과 더불어 미사 참례를 하였다. 더 이상 ‘홀로’ 아프지 않고 ‘더불어’ 하느님에게로 ‘우리’ 되어 나아갔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 되어 말이다. 어찌 천국이 아니겠는가. 박해기 고난과 힘겨운 삶이 그들을 힘들게 해도, 지옥이 아니었다.

천국이었다. 황일광 시몬에게 천국을 경험하게 한 것은 그를 안아준 사랑이었다. 더불어 있음이었다. 천국을 이곳에서 산 이에게 순교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의 천국에서 저곳의 천국으로 마치 이사를 가듯 담담히 하느님의 품에 안기었다. 이미 이곳에서 경험했으니 말이다.

2019년 1월엔 ‘철원’, ‘서울 화곡동’, 2월엔 ‘거제’, ‘여수’, 3월엔 ‘남양주’, ‘충남 공주’, ‘부산’, ‘양주’, ‘화성’, 5월엔 ‘시흥’, ‘김포’, ‘대구’, ‘공주’, ‘의정부’, 6월엔 ‘시흥’, 7월엔 ‘울산’, ‘제주’, 8월엔 ‘의왕’, 9월엔 ‘인천’, ‘충북 단양’, 10월엔 ‘제주’, ‘경남 김해’, ‘경남 거제’, ‘의정부’, 11월엔 ‘양주’, ‘가평’, ‘인천’, 12월엔 ‘천안’, ‘대구’... 가난과 온갖 사회적 부조리를 이기지 못하고 일가족 혹은 몇몇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야할 곳에서 ‘더불어 죽었다.’ 천국이어야 할 이곳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황일광 시몬이 경험한 그 천국은 지금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그저 홀로 웃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더불어 있음은 성가신 그 무엇이 되어 버린 것일까?

하늘로부터 내려올 아기 예수를 기다리던 대림의 시간, 대구 한 곳에선 40대 부모와 14살 아들 그리고 11살 딸이 가난으로 아픈 이 땅의 삶을 포기했다. 하늘만 보며 희망을 기다리던 우리는 바로 옆 아픈 누군가의 희망이 되진 못했다. 더불어 있지 못했다. 무능한 그들의 탓이라며, 나의 탓을 돌렸다. 부끄럽다. 이 땅 외롭고 힘겨운 삶 속, 따스한 빛으로 아프고 힘든 이들의 아픔을 품어 주었다면, 작고 작은 아집에서 벗어나 그 아픔을 품어 주었다면, 2019년 그 많은 가족들이 이 땅을 포기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황일광 시몬이 경험한 그 천국을 그들이 이 땅에서 느꼈다면 이 땅을 포기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 탓이다. 그렇다. 내 탓이다.

‘천국’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으로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따스함이 되어야 한다. 홀로 아프고 힘든 누군가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 땅이 천국임을 ‘더불어 있음’으로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다. 나만 홀로 웃기 위함이 아니라, 더불어 하느님에게 다가가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것, 바로 그곳이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게으르다. 백정 황일광 시몬이 이곳에서 느꼈던 그 천국이 이젠 먼 이야기가 되었다. 내 탓이다. 내 탓.

2020년, 더불어 있어야겠다. 아프고 힘든 자와 더불어 있어야겠다. 그렇게 하느님에게 다가가야겠다. 하느님이 오실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말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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