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 공동체 실험, 실패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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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공동체 실험, 실패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 서민호 미카엘
  • 승인 2019.12.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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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olic Worker Farm in Siler City
the Catholic Worker Farm in Siler City(사진출처=worldpress.com)

가톨릭일꾼운동에서 처음 시작한 농경공동체였던 이스톤 농장은 점차 정리되었고, 가톨릭일꾼운동은 지금의 '피터 모린 농장'이라고 불리는 땅을 구입하였다(뉴욕시에서 몇시간 떨어진 곳에). 피터 모린 농장은 뉴욕의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과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전히 농경 공동생활과 농경대학의 요소를 융합시키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농작은 유기농법으로 하며, 무공해작물을 생산하고, 대부분의 생산작물은 농장 자체에서 소화시키며 잉여분은 이웃이나 이주노동자들 혹은 뉴욕의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으로 보낸다.

오늘날 많은 농경 공동체들이 성공적으로 활기 있게 운영되고 있지만 도로시 데이가 1963년 가톨릭일꾼농장들에 대하여 썼던 것처럼, “피터가 꿈꾸었던 농경공동체가 아니라 가족농장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어떤 농장은 세 가족이나 여섯 가족이 모여 운영하기도 한다. 더 많은 대부분의 경우 한 가족이 살고 있는데, 특히 아이들이 많은 경우 다른 가족들이 떠나고 난후에도 혼자 남아 농장을 운영해간다.”

이러한 농장들 중의 하나가 캘리포니아에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네 가족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 몇몇이 있었다. 그들의 지향은 농경 공동체와 환대의 집을 통합하는 형태였다. “도시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땅에 돌아와서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곳. 아니면 숨막힐 것 같은 도시생활을 떠나 잠깐만이라도 방문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곳.” 그들은 이곳이 “학자가 노동자가 되고 노동자가 학자가 되는 곳이 되기를‧‧‧ 이웃사람들과 함께 사는 마을의 핵심이 되기를‧‧‧ 심오한 영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지향과 너무나 달랐다. “우리는 고립되었다. 그리고 일은 고되었다. 가장 큰 축복은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 이곳에서 살았던 손님들, 아직껏 친구인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보다 넓은 공동체이다. 사람들은 떠났고 그것도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립된다는 것이었다. 혹은 공동체 생활에서 오는 부담과 긴장이었을 것이다.”

이 농장은 17년 동안 계속되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네 가족과 두 명의 독신여성들이다. 그러면 그들의 비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가 지난 12년 동안 해오고 있는 초 제조사업(수공)은 이제 자리가 잡혔지요. 우리는 미국 전역에 이 초를 팔고 다른 나라에도 보냅니다. 여기서 들어오는 수입이 농장 전체수입의 반을 차지하지요. 닭이나 염소 돼지는 달걀, 우유제품 그리고 고기를 마련해주어요. 많은 손님들이 이곳 농장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 실마리를 잡게 됩니다. 또 우린 성인장애자들을 위한 여름 프로그램을 가집니다. 언젠가 에이즈환자들과 있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쉬고 피정할 수 있는 집을 끝내 마련하게 될 겁니다‧‧‧ 일을 하기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함께 생활하고 끊임없이 우리들 서로에게 용기와 열정을 불어넣어 줄 사람들을 말입니다.”(가톨릭일꾼신문, 1993년 5월)

이러한 모든 공동체들을 꿰뚫고 있는 공통의 연결점은 가톨릭일꾼운동의 비젼, 즉 복음의 가르침에 집중되어 있는 비전을 따르려는 강한 결단과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모린의 비전처럼,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땅과의 밀착된 관계의 중요성, 일용할 양식을 위한 노동, 공동협력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공동선에 대한 지향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planting seeds at the catholic worker house garden (사진출처=flickr.com)
planting seeds at the catholic worker house garden (사진출처=flickr.com)

공동체들의 출발과 또 지금까지 지속된 과정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은 소위 전문농민들, 목수들, 전기 기술자들, 하수도 기술자 등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이다. 이 전문가들은 공동체 구성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웃사람들, 혹은 도시의 가톨릭일꾼 공동체의 친구들이기도 하였다. 함께 일을 하면서 그들은 친구가 되었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생활방식을 자신들의 삶에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리하여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로 드러나는 체험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 농장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우리가 피터의 이상을 달성할 수 없었다면 그건 아마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를 운영하고 농경대학, 피정집, 노인들을 위한 집, 미혼모와 청소년들을 위한 피난처, 공동체, 종교, 인류와 국가, 전쟁과 평화등을 위한 연구소 등 얼마나 많은 일인가?! 우리는 목표를 너무 높이 잡았다. 그런데 우리는 ‘양심을 일깨우는’ 일 하나만이라도 충분히 이루어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길이 있다.

아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하겠다. 여기에 한가지 길이 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두 개의 위대한 계명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두려움은 초자연적 가치관들인 믿음과 희망에 관한 실습에서 오는 것이다. 기도로서 우리는 즐겁게 때로는 행복하게 그 한 가지 길을 갈 수 있다. 기도가 없다면 그 여정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가혹할 것인가!”

[참고자료]

도로시 데이, <빵과 물고기>
마크 엘리스, <피터 모린, 20세기의 예언자>
도로시 데이, <묵상>
도로시 데이, <긴 외로움-자서전>

 

<필자가 덧붙이는 말>

요즈음 괴로움을 겪고 있는 농촌과 농민들의 삶에 대하여 다각도에서 사람들이 응답을 하고 있습니다. 무공해 농작, 유기농법 등으로 생명을 살리는 농작물 생산에 주력하는가 하면, 수입농산물 개방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우리 농산물 우리가 먹기, 우리 농촌 살리기 등의 주제를 내세우며 생산과 유통과 농업정책 등을 변화시키려는 구조적인 움직임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농촌 삶의 인간적인 가치관, 생활양식, 문화, 인간관계 등을 포함한 공동체적인 농촌생활 전체를 새롭게 부활(?) 시키려는 생활차원에서의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인간화, 복음화, 사회변혁, 농업문제 변혁 등의 다양한 동기에 의하여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복음적이고 신앙적인 동기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하느님 나라를 느끼게 하는 희망의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에서 소개된 가톨릭일꾼운동(미국)의 농경 공동체는 농촌생활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과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에 대항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식이라서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창립자 피터 모린은 주장합니다. 오히려 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현대의 극대화된 자본주의, 소비주의, 물신주의적 생활방식을 하느님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맘몬 지향의 생활방식이라고 간주하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자원인 땅과 일치되고 밀착된 관계에서 출발하여 신체노동으로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땀을 흘려 마련하고 하느님의 가치관, 기준, 관점을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선택함으로써 창조된 모습 그대로의 존엄성과 자기 가치를 깨닫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생활이요 공동체 양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자주 말하고 있는 “밥은 하늘이다”라는 말도 가톨릭일꾼운동의 이런 지향과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농경공동생활은 더이상 산업이 아니라 삶 자체라고 생각이 듭니다.

현재 우리들 주변에서 혹은 우리들이 직접 시도하고 있는 움직임들과 부족한 자료이지만 가톨릭일꾼운동의 농경공동체를 비교해보며 한국상황과 농촌문제, 농민 삶에 더 적절한 응답과 대안의 삶을 숙고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참사람되어에서 피터 모린의 사상과 농촌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동기를 더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움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민호 미카엘
미국인으로, 메리놀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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