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에 오는 분들은 밥을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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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에 오는 분들은 밥을 제일 좋아합니다
  • 서영남
  • 승인 2019.12.24 0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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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2019년 12월 23일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주변에는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것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분들은 밥을 제일 좋아합니다. 반찬보다 밥을 훨씬 많이 담습니다. 밥을 조금만 담으라고 부탁하면 아주 섭섭해 합니다. 밥보다 고기반찬을 더 담으라고 해야 섭섭한 마음을 풀 수 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밥 아닌 다른 음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떡국, 전복죽, 만두, 라면, 짜장면도 반기지 않습니다. 밥이 없어 밥 대신 먹을 수밖에 없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닭죽은 누구나 참 좋아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은 오래 굶어본 이들이 많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첫손님이었던 이는 9일을 굶었다고 합니다. 대다수가 며칠은 굶어 본 이들입니다.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고 하지만 우리 손님들은 희한하게도 사흘을 굶어도 담을 넘기는커녕 그냥 또 굶습니다.

어느 날 머리가 하얀 노인이 식사하러 왔습니다. 소띠라고 합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인데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있다고 하시는데 더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기초연금을 받은 것 중에서 13만 원이 있다고 합니다. 조금 더 보태서 어제 서산 여인숙에 방을 하나 얻어 드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에 알맞은 월세방이 나오면 옮겨 살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식사하러 왔습니다. 지난 밤에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잠다운 잠을 잤다고 합니다. 노숙을 할 때는 비몽사몽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밥맛이 꿀맛이라고 합니다.

데레사 자매님이 찾아왔습니다. 전라남도 함평에서 오셨습니다. 십몇 년 전에는 자주 오셔서 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설거지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후원도 해 주셨고요. 데레사 자매님은 이십 몇 년 전에 만났습니다. 그 때 아들이 감옥에 있었고, 제게 교리를 배워서 세례를 받았지요. 그러자 데레사 자매도 아들 따라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7년의 오랜 징역을 살고 나와 가정을 이뤘고 하는 사업도 잘 되어서 잘 살고 있답니다. 이제는 늙어서 더는 찾아올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서 받는 용돈이 있는데 그 돈을 감옥에 갇혀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달인가 더 이상 입금이 되지 않으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때는 하늘나라에 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들이 가장 힘들 때 옆에서 도와준 은혜 갚지도 못하고.... 작은 성의만 보탠다고 했습니다.

손님들이 후식으로 내어놓은 한과가 입에 사르르 녹는다고 합니다.

요즘은 담뱃값이 너무 비싸서 꽁초를 줍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담배 피는 손님을 위해서 후식을 놓는 자리 옆에 담배 한 갑을 놓아두면 담배 피우고 싶은 손님들이 한 개피씩 가져갑니다.

손님들이 먹고 싶은 음식 중에는 삼계탕, 육개장. 돼지고기 김치찌개, 고등어 자반, 돼지 갈비, 꽃게무침 등등이 있습니다. ''소고기는요?'' 물어보니 소고기는 너무 비싸서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살면 가난한 사람들 덕분에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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