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중인 나라..."호텔과 VVIP룸과 귀빈실을 허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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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 중인 나라..."호텔과 VVIP룸과 귀빈실을 허물어라"
  • 김유철
  • 승인 2019.12.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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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누구와 벌이고 있는 종교전쟁일까

기독교와 불교 혹은 천주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전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의 성지나 성상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소수의 무리는 있을지언정 이른바 ‘종교전쟁’은 대한민국에서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종교전쟁’은 없는 것일까.

타종교, 좋은 의미로 이웃종교와는 좋은 게 좋은 것처럼 지내는지 몰라도 개별종교 안을 들여다보면 종교의 창시자가 말한 대로, 행한 대로, 생각한 대로 하지 않으려는 전쟁은 분명히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범그리스도교는 과연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며 그 하느님 나라에 모든 것을 건 예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그가 가장 반대하던 것을 그의 이름으로 백주대낮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을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례를 받은 흔적과 얽히고설킨 모임을 혹여 '교회'라고 부르고 있으며, 하늘로 부터 받은 각자의 카리스마를 마치 신분이나 계급처럼 행세하며 때가 되면 다가오는 성탄을 즐기고, 사순을 슬퍼하며, 부활을 승리처럼 맞이하는 것을 고창한 전례로서 되풀이 한다면 그것은 분명 종교 창시자와의 전쟁임에 틀림없다.

 

아기 예수의 탄생. 1306. 조토, 스크로베기성당 파도바 이태리
아기 예수의 탄생. 1306. 조토, 스크로베기성당 파도바 이태리

우리는 성탄 때 누구의 성탄을 기리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예수는 그리스도교를 창시하지 않았고 그런 의도도 없었다, 단지 그의 삶과 죽음 속에서 하늘의 뜻을 받아드린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실천하며 만들어진 모임의 흔적이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것을 자타가 ‘크리스챤’이라 불렀을 것이다. 크리스챤이라 불렸던 사람들에게 예수 성탄의 의미는 무엇이라 전해졌을까?

우리는 성탄 때 누구의 성탄을 기리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가 만나고 경배하려는 아기 예수는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성탄 대축일 미사에서 읽는 복음 내용대로 “마리아는 해산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루카 2,6-7)이라면 마리아와 요셉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러 곳에 이미 불을 밝힌 예수의 성탄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반짝이고 있다. 그 화려함이 거룩함으로 보이는 이도 있겠지만 그 거룩함이 미친 헤로데의 화려함이나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맘몸의 변신술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우리는 분명히 종교전쟁 중에 있다.

호텔 외에는 장소가 없을까

아기 예수의 부모가 박대당한 여관의 헛간에 놓인 구유에 비할 바 못되지만 호텔이라고 하는 곳에서 교회와 교회관련 단체들이 무감각(?)적으로 벌이는 행사들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장소 선정임에 틀림없다. 격조 높은 일이거나 참석자의 예우 등을 감안한 장소선택이겠지만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 예수가 스스로 다가간 ‘가난하고 억눌린 죄인’들을 생각하다면 재삼 숙고해야 할 오늘의 장소들이다.

2019년 교계신문에 보도된 교회관련 단체의 행사 중 호텔에서 열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서울 명동 로얄호텔), 3월 지학순정의평화상 시상식(서울 명동 세종호텔), 3월과 7월 서울대교구 가톨릭경제인회 조찬세미나(서울 명동 로얄호텔), 9월 서울가톨릭청소년회 20주년(서울 명동 로얄호텔), 10월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위한 행복모임’(서울 반포동 쉐라톤 서울팔래스 강남호텔), 10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세미나(서울 태평로1가 코리아나호텔), 11월 한국가톨릭학술상 시상식(서울 명동 로얄호텔) 등이다.

행사의 성격상 마땅한 장소 선정의 고민이 있었겠지만 교회 관련 모범적인 단체들답게 시선을 복음적으로 돌이켜 더 깊은 고민이 따라야 할 것이다. 쉽고 편하게 하려는 마음에 예수의 구유는 늘 성탄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그것 또한 종교전쟁의 한 장면이다. 대포소리 요란한 것만 전쟁이 아니라 소리 없는 전쟁이 더 무서운 법이지 않은가.

장례식장의 귀빈실과 VVIP는 정말 웃프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주교회가 운영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친절할 것이고 뭔지는 모르지만 양심적으로 운영하리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일반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들이 벌어져도 애써 감싸는 것이 천주교인의 마음이기도 하다. 허나 이런 병원의 장례식장 시설 명칭을 바라보면 과연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부를까 싶기도 하다.

한 수도회가 대구대교구와 마산교구에 운영 중인 병원의 장례식장은 ‘귀빈실’ ‘특실’ ‘일반실’ 이거나 ‘VVIP실’ ‘VIP실’ 으로 나누어 있다. 장례식장에서 귀빈이거나 VIP는 누구이고 일반은 누구일까? 망자인가 상주인가? 설사 장례식장의 운영권을 외부에 주었다 해도 적어도 수도회 운영의 병원이라면 그러한 용어는 예수가 제일 반대했을 용어들이다. 한마디로 반복음적이다.

어쩌면 성전정화사건처럼 젊은 예수는 허리띠를 풀어서 그 명판들을 떼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일반 장례식장들이 어떤 이름으로 망자와 유족들을 맡고 있는지 눈이 있으면 가서 봐야 할 일이다. 그러기에 종교전쟁은 분명 자기 종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종교전쟁에서 나가는 길

우리는 예수가 성령의 힘으로 잉태되었고, 그 예수가 말먹이 통에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았으며, 그에게서 기적의 힘을 체험하였고, 그가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그리고 끝내 부활하여 다시 우리 안에 머무시는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힘임을 믿고 일상 안에서 실천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교회라 부르고 불리는 것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벌리고 있는 종교전쟁에서 나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모든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동방박사들이 찾던 별빛이 내릴 것이고 그 별빛이 비춘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자리가 아기 예수가 탄생할 구유이며 힘없는 아기 목소리를 복음처럼 듣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이 모여든 것을 교회라 말하리니 예수의 목소리로 들어라. “그리스도인이 모인 호텔과 VVIP룸과 귀빈실을 허물어라. 그때 내가 누울 모든 짐승들의 먹이통 구유를 다시 세우겠다.”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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