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어느 제자가 1645년 즈음하여 <저녁의 성스러운 가족>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검갈색의 어둠을 그저 등 하나로 밝힌 어느 집 안에 세 사람이 보입니다. 등을 보인 여인은 등불에 책을 읽는 듯 책 위로 고개를 숙이고 있고, 잠자리용 모자를 쓴 노파는 피로해진 눈을 감고 있으며, 두 사람 앞자리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방 전체의 모습이 제대로 된 집안이기보다 차라리 지하실에 낸 방처럼 보입니다.
오이겐 드레버만은 <예수를 그린 사람들>(피피엔, 2010)에서 “이 소박하고 검소한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하느님은 특별한 것, 떠들썩한 것,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 따위에는 머무시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처럼 아이 하나와 함께 두 여인이 사는 집 안의 희미한 빛 속에서 모습을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랑을 알아볼 수 있을 때,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 지금-여기에서 실제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예수-하느님을 너무 으리번쩍한 곳에서 찾으려할 필요가 없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너무 많은 고통이 밀려와서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부터 찾아가야 할지 황망합니다. 아님, 이 자리에서 부지런히 기도하는 게 나을까요? 매일미사를 봉헌하며 날마다 ‘하느님게서 가련하고 호소할 곳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제자라는 우리들은 그 손을 잡아주기를 늘 주저합니다. 피곤하고 귀찮다 생각합니다. 파주로 이사 온 뒤론 저도 몸을 움직이는 걸 몹시 주저하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도 대림절, 그분을 기다리면서 나도 한 걸음 그분께 다가가야 하겠지요. 많이 부족하고 박약한 신앙 앞에서 늘 절망하지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십사 간청하는 하루입니다.
그동안 가톨릭일꾼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반 년 가까이 사무실처럼 빌려 쓰던 서강대 인근 인문카페 엣꿈이 문을 닫게 되어서, 저희도 지난 12월 9일 토머스 머튼 기념 일꾼월례미사를 끝으로 사무실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많지 않은 짐이지만 저희 집으로 옮기고, 저희 집 다락방을 편집실 삼아 일하려고 합니다.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당하1길 20-20’으로, 사무실 공용전화는 12월 18일부로 ‘031-941-2736’으로 바뀌게 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 해에 두 차례 열리는 ‘가톨릭일꾼세미나’는 설을 지내고서 2020년 2월경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월례미사는 1월에 쉬고, 2월부터 다시 시작될 텐데 확정되면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2020년부터는 수도권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소박하게 가톨릭일꾼 대화모임을 가질 생각입니다. 지역에 계신 분들이 서로 만나 안면을 트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교와 배움의 자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6월부터 풀타임으로 활동하셨던 신배경 클라우디아 자매님이 이번 12월부터 상근을 그만 두게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제 불찰도 있었고, 혼자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그동안 수고해 주신 신배경 자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께서도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동반해 주시길 바라며, 기도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환대의 집이 마련되고, 일꾼운동이 더 활성화 된다면 우리 모두 활동하기가 더 나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예수여, 오소서! 저희 마음에 오소서.
세상 가득 축복처럼 당신 자비 내리시고
우리 영혼 축복처럼 당신 안에 머물게 하소서.
2019년 12월 17일
한상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