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타스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은 배 고프면 공부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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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타스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은 배 고프면 공부 할 수 없어요"
  • 서영남
  • 승인 2019.12.12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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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2019년 12월 9일

지난 11월에 필리핀을 열흘 동안 다녀왔습니다. 나보타스 Tangos 마을에 조그만 민들레 작은학교를 열고 왔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현재 필리핀에 두 곳이 있습니다. 2017년 초에 삼 년 동안이나 재미있게 운영하던 칼로오칸 공동묘지에 있던 민들레국수집을 문을 닫고 더 변두리로 가서 다시 시작한 곳입니다.

인천으로 돌아온 몇 달 후인 2017년 6월에도 필리핀 우리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나눌 수 있도록 많은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다섯 달만에 다시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다시 만난 우리 아이들은 훌쩍 커졌습니다. 아이들 가정들도 극심한 빈곤에서는 거의 벗어났습니다. 겨우 3년 동안의 작은 도움뿐이었는데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분들을 봤습니다. 놀랍습니다.

특히 재래시장 길바닥에서 바나나를 팔면서 손주 넷을 돌보는 마누엘라 할머니 가정이 잘 되어서 참 뿌듯했습니다. 이제는 가게도 마련했고요. 변두리에 작은 집도 마련했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배 곪지 않고 잘 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11월까지의 장학금 여섯 달치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살고 있는 행복마을에 급식을 할 장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그곳 성당과의 관계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두 곳의 가난한 지역에 새로운 장학생들을 뽑았습니다. 아무래도 장학금만으로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언가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밥입니다. 배가 고파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기에 밥을 다시 나눌 수 없을까 생각에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산위의 마을 박기호 신부님이 필리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써 주면 좋겠다시며 500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느 분이 산위의 마을에 입촌하면서 그 동안 힘겹게 모은 돈을 기부하셨는데 그분의 뜻에 맞갖게 잘 써달라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먼저 마닐라 남쪽 근교인 GMA 카비테 가난한 마을에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11월에 먼저 GMA 카비테에서 민들레국수집 무료급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작은 도서관도 함께 마련해서 아이들이 밥도 먹고 책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나보타스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무료급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보타스의 민들레국수집 봉사자께서 벌써 아이들 급식 명단을 작성해 놓았답니다. 얼마나 밥 한 그릇 나눔이 절실하면 이럴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때 고마운 분이 도와주셨습니다. 서둘러 나보타스에도 조그맣게 국수집을 마련하고 2018년 3월에 급식을 시작했습니다만 너무너무 좁아서 골목 길에서 아이들이 밥을 먹었습니다. 

우기에 되면 대책이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기가 오기 직전에 조그만 방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과 엄마들 120여명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는 턱없이 좁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야 우리 아이들 방과후 작은학교 겸 식당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고생했지만 마음은 뿌듯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책을 펴도 머릿속은 먹을 것만 아른거립니다. 아이들의 작은 배가 불러지면 책도 보고 싶어 하고 공부도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지난 3년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만 밥을 먹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마을의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가족들 간의 사랑이 깊은지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필리핀 피딩 프로그램에서는 밥과 반찬 한두 개 뿐인데 아이들은 밥만 먹고 반찬은 몰래 가져가서 동생들을 먹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이나마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와 함께 온 동생들도 같이 밥을 먹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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