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교회 달력, 질 낮은 신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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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교회 달력, 질 낮은 신앙 교육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19.11.23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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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교회달력에 관하여-1

십수 년 전 늦가을에 캐나다를 간 적이 있다. 그곳 단풍잎은 붉은 빛이 하도 맑아서 정말 예뻤다. 그 아름다운 선혈이 낭자한 낙엽 사이를 걸어 서점엘 들렀는데, 한창 달력이 전시되고 있다. 수십 수백 종은 됨직했다. 인디언 문화를 소개하는 달력이며 늑대 사진들이 많았고, 여러 예술가들의 미술작품이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달력에 박혀 있었다.

달력은 특성상 한 번 구입하면 일년삼백육십오일 들여다보아야 하는 법이라서, 그 사람의 영혼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고, 따라서 공들여 만들었으니 달력 값도 꽤 비쌌다. 달력이라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거저 얻는 게 상례인지라 좀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선물도 할 겸 몇 개 사들고 나왔다.

우리 돈으로 계산해보면, 십여 년 전인데도 달력 한 부에 1만 원정도 하였다. 예전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달력 기획사업을 할 때 보니, 한 부당 판매가가 1천5백원이란다. 몇 년째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것은 교회달력 시장의 엄청난 경쟁 때문이란다. 요즘은 출판사뿐 아니라 신학교나 교구에서도 달력을 수익사업으로 만든다. 그러니 본당에서는 본당 사제와 연분이 있거나 가격이 싼 쪽을 선택한다. 물론 어디나 가격은 비슷하고, 달력의 수준도 비슷하다.

달력제작 단가를 낮추려다 보니 교회에서 달력 만드는 사람들은 사진도 그림도 거저 얻으려고 한다. 사실 좋은 달력을 기획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이다. 결국 달력 생산자는 저투자로 질 나쁜 달력을 만들어 인맥에 의존해서 팔아보려고 애쓰고, 수요자인 본당에선 장사하는 신자들에게 하단광고를 실어주는 대신에 돈을 받아, 그 돈으로 달력을 사들인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대림절에 달력을 거저 나눠주면서 생색을 낸다.

 

RITA CORBIN Calendars
RITA CORBIN Calendars

구태의연한 신앙교육

교회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야 한다. 복음 안에서만 빛을 발하는 메시지를 신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에서 우린 교회의 오래된 전통에서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성당 안에 있는 수많은 조각들과 스테인드글라스, 이콘(성화) 등은 라틴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래서 성경의 말씀을 사제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신자들에 대한 배려였다. 신자들은 이런 이미지를 통하여 성화될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사찰 벽면에 탱화나 심우도와 같은 도판을 그려 넣어 불자들을 교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심오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지침이었고, 그 안에서 배워 착하게 살고 영생을 발원하였다. 학력수준이 높아졌다는 대한민국의 천주교인들도 사실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 교회의 신앙교육 수준은 대체로 유치하고 대부분 일률적이다. 신자들의 고유한 영적 여정과 상관없이 늘 반복되는 똑같은 기도(매일미사 책에 나오는 보편지향기도는 정말 치명적이다.), 틀에 박힌 성모상과 십자고상을 매일 마주하면서 영적 자극을 얻을 수 없다. 한편에선 한가로운 '살만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신자들은 그저 부실한 강론이라도 귀담아 들어야 건질 게 있는 형편이다.

신심을 북도는 이런저런 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사제들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형국이고 보면, 신자들은 스스로 자기만의 ‘깊은 고요’에 머물며 자기 신앙을 성찰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그들은 그저 ‘할’뿐이다. 생각은 필요 없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대신 생각해서 안내해 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 움트고 있는 성령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 자신과 대화하지 않는 신앙은 돌처럼 굳은 신앙이다. 그렇게 이미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 안의 삶을 통해 살해당하고 있다.

 

"beautiful woman gardener" of oil painting Raphael
"beautiful woman gardener" of oil painting Raphael

정말 중요한 교회 달력

대부분 집안에서 벽걸이용으로 전락하고 있지만, 신자 가정에 하나쯤 걸려 있는 이콘에 대해 교육이 필요하다. 이미지는 문자보다 더 깊은 영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교회가 교회미술에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중에 교회 달력은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미지를 통해 재복음화 할 수 있는 귀한 매개체이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그분은 “와서 보라!”고 했다. 그러니 볼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일부 신자들만 참석하는 교육 프로그램보다 요긴한 달력에 본당 예산을 좀 팍팍 쓰자. 가능하다면, 다양한 신자들을 고려해서 본당에서 여러가지 달력을 구비해 놓고 신자들에게 직접 선택할 기회를 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하나를 골라도 제대로 생각해서 선택하자. 요즘 같아선 분도출판사에서 해마다 나오는 달력이 이미지로는 제일 좋은데, 이미지와 문자가 영감이 주는 건 이철수 판화 달력이 아직은 최고다.  

달겨에 담긴 이미지 선택에서도 신중해야 한다. 모든 그림은 나름대로 신학과 이데올로기 전략이 있다. 그러니, 가능한 복음적 가치가 돋보이는 달력을 택해야 하겠다. 이를테면 교회달력에 자주 등장하는 르네상스 시기에 베드로 성전을 장식했던 라파엘로의 그림은 거룩한 남녀 성인들과 주님의 모습을 당대의 지배권력과 귀족들의 모습으로 갈음하였다.

그의 그림에서 예수 아기씨를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는 나자렛 촌집이 아니라 궁전에서 귀족처녀 마리아를 만나고 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많은 성화에서 예수님은 어린 시절을 궁전에서 놀았고, 마침내 수난을 받으신 뒤에는 천상의 봉건적 지배 권력자가 되신다. 이는 복음서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었지만, 이 화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사치스러운 교황과 제후들의 입맛에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림을 보는 우리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 정말 복음적인, 그래서 신자들이 벽에 걸어두고 일년삼백육십오일 복음을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족) 교회달력 가운데 교회건물(성당)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최악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건물이 '교회'와 신앙인의 신원을 알려주는 기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란 교계제도나 교회건물로 대체될 수 없다. 하느님 백성을 드러내고, 그들의 참 신앙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미지가 요청된다. (2007.9.2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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