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려 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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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려 들지 마라
  • 앤소니 드 멜로
  • 승인 2019.11.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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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드 멜로의 사랑으로 가는 길

하느님 나라는 지금까지 폭행을 당해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힘으로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 11,12)

활짝 핀 장미의 청명하고도 단아한 광채와 당신의 삶이 지니고 있는 긴장과 불안감을 비교해 보라. 장미는 당신에게 부족한 선물을 갖고 있다: 장미가 자기 자신인 것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는 선물이다. 장미는 날 때부터 당신처럼 프로그램에 규정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만족하므로, 자신 말고 그 어떤 다른 것이 되려는 충동이 조금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미는 인간존재 중에 작은 아이들과 신비가들한테서만 발견되는 내적인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이며 꾸미지 않은 은총을 지니고 있다.

당신의 슬픈 조건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언제나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하면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당신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고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 때문에 생겨나는 자아에 대한 편협함만 늘어난다. 그래서 당신이 성취하는 모든 변화는 늘상 내적인 갈등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갖지 못한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이 성취하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다른 어떤 모습이 되어갈 때에 고통을 받는다.

당신이 장미처럼 있는 그대로 자신에 만족하고 그 밖의 다른 존재가 아닌 것에 실망하지 않는다면, 질투와 부러움 때문에 고통을 겪을 것인가? 그러나 당신은 더 많은 지식과 더 좋은 외양, 더 많은 인기와 성공을 거두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의 충동을 받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더 덕스럽고 더 사랑스러우며 더 묵상적이 되고자 한다. 당신은 하느님을 발견하고자 하며, 당신의 이상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자기향상을 위한 당신의 노력들이 투쟁과 고통을 지불하고 결국 재앙이나 실패로 끝나는 슬픈 역사에 대해 생각하라. 이제 당신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든 노력들을, 당신에 대한 불만족한 마음을 ㅡ단념하고 돌아섰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과 주변의 모든 상황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잠드는 운명쪽으로 기울겠는가? 힘들게 당신자신을 한편으론 몰아붙이고 다른 한편으론 정체된 상태를 받아들이는 방법이외에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은 자아를 이해하는 길이다. 이것은 전혀 쉬운 길이 아닌데 당신자신을 무엇인가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려는 모든 욕구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 당신자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개미들의 습관을 연구하면서 그것들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과학자의 태도와 개의 습관을 연구하면서 개가 무엇인가 배우기 위한 관점으로 개를 훈련시키는 개훈련가의 태도를 비교할 때에 잘 알게 될 것이다. 당신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관찰하려는 생각으로 무엇인가 시도하고, 사람들과 사물에 대한 당신의 반응들을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어떤 판단이나 단죄 혹은 자신을 개혁하려는 생각 없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관찰은 비선택적이고 포괄적이며 경직된 결론에 절대로 고착되지 않고 언제나 순간순간 열려있고 신선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놀라운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즉 당신은 엄청난 깨달음으로 가득 차고 투명해지고 변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변화가 일어날까? 아, 그렇다.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둘러싼 상황 안에서. 그러나 그 변화는 당신의 영악하고 쉬지 않는 자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아는 영원히 경쟁하고 비교하며 기울어지고 설교하며 편협함과 야심을 갖고 조작하는데 빠져있고 그럼으로써 당신과 자연 사이에 긴장과 대립과 저항을 야기 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브레이크를 잡고 달리는 것처럼 소진되고 자기 파괴적인 과정이다. 아니다, 변화시키는 자각의 빛은 당신의 계획적이고 자기를 추구하는 자만심을 쓸어버리고 장미한테 해주는 것처럼 조작되지 않고 감사함과 자아에 대한 무의식, 전체성과 내적인 갈등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그런 변화를 가져오도록 자연에게 전체 권한을 부여한다.

모든 변화가 폭력적이므로 자연이 주는 변화도 폭력적이다. 그러나 자연의 폭력이 지닌 장대한 특징은 자아-폭력과 달리 편협함과 자기증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앞서 있는 모든 것을 쓸어 가는 비바람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연의 생태계 법칙에 순응하여 새끼를 잡아먹는 물고기들, 그리고 더 높은 선을 위하여 서로를 파괴시키는 신체의 세포들에는 분노가 없다. 자연이 파괴할 때에 그것은 야망이나 탐욕 혹은 자기 확대의 욕구가 아니라 부분들의 생존과 안녕을 넘어서는 전체 우주의 선을 추구하는 신비스러운 법칙들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폭력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 속에 뿌리박은 생각들과 구조들에 대해 격렬하게 반항하는 신비가들 속에서 일어난다. 신비가들은 당대의 동료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악을 이러한 자각으로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이 장미로 하여금 적대적인 힘들을 앞에 두고도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 폭력 때문에 장미는 신비가들처럼, 꽃잎을 햇빛을 향해 열고 난 후에 부드럽게 승복할 것이다. 또한 연약함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할당된 삶의 시간을 단 일분이라도 더 연장하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장미는 공중의 새들처럼, 들의 꽃들처럼 아무런 불안감과 불만족 없이, 그리고 꽃이라는 자각 속에서 만족하고 모든 변화를 자연 속의 하느님이 지니신 전능하신 힘에 맡기고 통제와 위압을 추구하는 인간세계를 나타내는 불안과 경쟁 그리고 질투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출처: <사랑으로 가는 길>, 안소니 드 멜로, 참사람되어 2001년 8월호>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
예수회 신부로서 인도 푸나에 있는 사다나 사목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18년 동안 피정 지도, 기도 연수, 영성 치료 프로그램 등에 중점을 두고 일했다. 지은 책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일분 헛소리>, <개구리의 기도>, <깨어나십시오>, <종교 박람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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