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밥 말아 먹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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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밥 말아 먹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보물찾기
  • 서영남
  • 승인 2019.11.04 18: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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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일기]

11월부터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베드로 형제님이 격주로 <민들레국수집 일기>을 써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대사인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처럼 우리의 삶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 가는 호화스런 전원주택과 같은 천국이 아니라 땀 흘리면서 살아야 하는 삶의 현장에 하느님 나라가 숨겨져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보물찾기입니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보물찾기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섬기는 것이 보물찾기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야말로 세상의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가야할 길입니다.

 

이하 사진=서영남
이하 사진=서영남

노숙자에게서 예수님 발견하기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보물찾기만큼 어렵습니다. 더구나 술에 찌든 사람의 모습에서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며칠 전에 동네 시장 가는 길에서 “당신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며 성질을 냈던 술 취한 손님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국수집에 오고 있습니다. 밥을 먹어야겠다고 들어오려고 합니다. 제가 막아섰습니다. 막아서도 막무가내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당신이 뭔데 못 들어가게 막느냐.”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국수집 안에서 식사를 하던 한 손님이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야지 어떤 사람은 먹고 어떤 사람은 못 먹게 하느냐”면서 합세했습니다. 두 사람 다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봉사자들과 식사하던 손님들이 박수를 칩니다. 우리 손님들도 이 두 사람에게 당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벼르고 별러서 이제야 겨우 혼을 내었습니다. 이 기회에 두 사람도 조금 변하면 참 좋겠습니다.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들 중에 70퍼센트 정도는 다 떨어진 안전화라도 신고 있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하려면 안전화는 필수입니다. 인력시장을 통해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은 기술이 없으면 참으로 힘듭니다. 새벽 세시 반에는 일어나서 씻고 나가야합니다. 운이 좋으면 뽑혀서 일하러 갈 수 있습니다. 저녁 여섯시면 끝나서 일당 오만오천 원이나 오만 원 받아서 10퍼센트의 수수료를 떼이고 집에 옵니다.

저녁 먹고 씻고 곧바로 잠을 자지 않는다면 다음날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습니다. 소주라도 한 잔했다면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한 달에 서너 번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손에 쥔 일당 오만 원입니다. 거기에서 만원을 뚝 떼어서 민들레국수집 반찬을 사는데 보태라고 내어놓는 민수 씨가 고맙습니다. 착한 마음이 고마워서 물어보았습니다.

"무엇이 제일 먹고 싶어요?"
"라면에다가 밥을 말아서 먹는 것이요."

 

병원비 하려고 전세방 빼니 

민수 씨는 조그만 중국음식점을 운영했습니다. 직접 주방 일도 했습니다. 한 동안 행복했습니다. 욕심을 내어 조금 더 확장을 했다가 그만 빚에 쪼들리게 되었습니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해서 막다가 결국은 사채까지 빌려 썼습니다.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단칸 전세방에서 술과 친구하면서 지내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인천의료원에서 몇 달을 입원해 있었습니다. 병원비를 내려고 전세를 뺐습니다. 퇴원하니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습니다.

지난 4월부터 화도진 공원 근처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몇 번은 막노동을 나갔습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 힘이 없어서 막노동마저 할 수가 없습니다. 노숙을 하면서도 이웃과 나눌 줄 알던 민수 씨가 그만 술을 입에 대고 말았습니다. 길에서 만났을 때 민수 씨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천원만" 애원하기에 이천 원을 살짝 집어드렸는데, 또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붙들고 천원만 달라고 행패를 부렸나봅니다.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몸에서 술을 요구합니다. 체면도 없습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아주머니의 남편에게 걸렸습니다. 온갖 수모를 다 겪었습니다. 혼자서 훌쩍이면서 웁니다.

지난 6월 29일입니다. 민수(49세) 씨가 석구(50세) 씨와 함께 제게 와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두 달 전부터 화도진 공원에서 노숙을 하면서 지내는데 술 취한 노숙자들이 때리려고 한답니다.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합니다. 잠을 잘 수 없으니 일도 못 나간다고 합니다. 방 한 칸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함께 노숙하고 있는 석구 씨와 같이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술은 꼭 끊겠다고 합니다. 방을 얻으려면 지금부터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보름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보름 동안은 술 드시지 말고, 매일 찜질방에 갈 수 있는 돈을 드릴테니 찜질방에서 지내고, 밥은 국수집에서 먹으면서 기다리다가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하시면 떠나셔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속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밝히지 않는 주안 8동 성당 자매님이 당신도 어려울 때 수녀님의 도움으로 살았다면서 제게 봉투 하나 주십니다. 민수 씨와 석구 씨가 살 수 있는 방 한 칸 얻을 수 있는 돈입니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의 셋방을 얻으려고 돌아다녔습니다. 겨우 하나 찾았습니다.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노숙자에게는 방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노숙자에게는 방을 빌려 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노숙자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 사람이 노숙자가 되어 민들레국수집에 밥 먹으러 온다면 그래도 밥은 드려야겠습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더 셋방을 찾아보기로 하고 민수 씨와 석구 씨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민수 씨가 이런 말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가서 도와달라고 해 보고 안 되면 칼을 들고 강도짓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빌딩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석구 씨는 어쩔 수 없이 노숙하게 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밤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겨우 방 두 칸짜리 허름한 독채를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만 원입니다. 밥 먹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더 좋다면서 석구 씨는 잠만 잡니다. 민수 씨는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닙니다. 부귀와 건강과 명예와 권력도 아닙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즉, 섬김과 나눔의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사야 할 보물입니다. 값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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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영 2019-11-10 17:34:32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