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영적 성장을 위한 마음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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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영적 성장을 위한 마음 훈련
  • 헨리 나웬
  • 승인 2016.06.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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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이타적인 길-7
ⓒ한상봉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은 아래로 내려가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고 우리 시대와 장소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연민을 표현하는 증인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겪는 유혹은 성공, 드러남, 영향력에 대한 욕구가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여 위로 올라가는 파괴적 악순환의 움직임에 사로잡히는 지경까지 가서 결국 우리의 소명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명과 유혹 사이의 일생에 걸친 긴장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적 양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십자가의 길이 우리의 즉흥적인 응답에 의존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스스로 비우시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에 일치시킬 것인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 정신과 마음 곳곳에 다 침투하시어 우리를 다른 그리스도로 만드시도록 기꺼이 허락하며 결단을 내리는 것을 요구한다.

성장, 양성이란 변화이고, 변화란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시지만 거기에 매달리지 않 고 자신을 비우신 그리스도의 정신에 점점 더 일치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처럼 제자됨이란 훈련, 연습 없이 실현될 수 없다. 그렇지만 영적 삶에 있어 훈련은 무슨 체육훈련, 학문적 연구 혹은 취업훈련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훈련은 신체적 건강상태를 성취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제자됨에 있어 훈련은 무엇을 숙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숙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다운 그리스도교적 훈련은 그리스도의 성령이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변화 시킬 수 있도록 우리 안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인간적 노력을 뜻한다. 나는 영적 양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세 가지 훈련에 주의를 두고 싶다. 그것은 교회에 의한 훈련, 성경에 의한 훈련, 그리고 마음의 훈련이다.

교회에 의한 훈련

교회의 훈련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참다운 이야기와 늘 만나게 된다. 영적 삶을 정의하는 한 가지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이야기와 우리 자신의 이야기 사이의 연결을 계속 유지하는 삶으로서 영적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성령 없이, 위로 올라가는 우리의 삶은 온통 꽉 차있으나 서로 관심을 끌기 위하여 경쟁하는 수많은 이야기들뿐이어서 결코 채워 지지 않는 삶에 그치고 만다.

성령 없이, 우리의 바쁜 삶은 매일 수많은 사건들이 그저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들과 사고들에 불과한 지루한 삶에 그치고 만다. 성령 없이, 우리의 삶은 그저 무사평온한 삶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성령과 함께라면, 매일매일, 매주매주 그리고 매해매해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시간과 공간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알려질 수 있고 경험될 수 있다.

교회에 의한 훈련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대변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다. 이 살아있는 그리스도는 단순히 한 인격체일 뿐만 아니라, 한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이곳에 태어났고 살았고 죽었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났고 성령을 보내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인간 역사 속에서 행동하고 있는 하느님이다. 그리스도-사건의 이 신비를 교회는 전례에 의한 훈련을 통하여 볼 수 있게 만든다.

전례는 하느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전례는 인간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오시고 태어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고,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서로 친교를 나누도록 초대하신다. 성탄,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의 교회절기에 의한 기념, 그리고 준비기간과 성찰은 우리가 거기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사건의 충만함을 드러낸다.

우리의 영적 양성이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이고 첫 번째인 훈련은,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그리스도-사건을 진정한 사건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인간 연대기 한 가운데에 공간을 창조하도록 해주는 훈련이다. 이처럼 교회는 우리의 첫 번째요 가장 우선적인 영적지도자이다.

교회는 우리에게 무엇에 관하여 성찰할 것인가, 어디에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관하여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전례의 훈련 속에서 그리고 전례의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사건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참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삶에서 잡다하게 일어나는 굴곡의 사건들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우리들 사이에 실현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삶의 사건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대림절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성탄 때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다. 사순절기에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받으신다. 성 주간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다. 부활절기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다. 성령강림 절기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신다.

이것이 참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다른 모든 사건들은 그 개인적, 사회적 혹은 정치적 그 의미를 그리스도-사건으로부터 얻어낸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참으로 밝혀지는 것과 같이, 우리는 시대의 사건들의 그 진정한 의미를 그리스도-사건 안에서 그리스도-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통하여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말해지는 이야기 중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말해지는 이야기 중에 유일한 이야기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그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받는 이야기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역사를 실제로 만든다. 우리의 개인 삶의 이야기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교회의 일상 삶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주의를 집중시킬 때에만 자기-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로지 우리가 그리스도-사건 전체를 구약에서 준비된 대로, 신약에서 실현된 대로, 그리고 그리스도 공동체의 삶에서 선포된 대로 받아들일 때에, 오로지 그리스도-사건이 우리 삶의 기반으로 자리 잡도록 허용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연결에 의하여 치유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출전: 참사람되어,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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