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진보 지식인의 후진 젠더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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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진보 지식인의 후진 젠더의식
  • 이필
  • 승인 2019.10.3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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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 칼럼
사진=이필
사진=이필

김경숙 열사 40주기 기념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장녀로 태어난 김경숙은 동생을 키우느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동생이 굶주림으로 죽자 그제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다시, 남동생 공부를 시켜야 해서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공장에 들어갔다. 10년을 공장에서 일했고 3년 동안 YH무역 노조 지부장으로 조직활동을 했다. 그리고 신민당사 농성 중 1979년 8월 11일 경찰 진압으로 사망했다.

김경숙의 묘지에는 “저 악독한 유신 팟쇼를 끝장낸 바, 한 떨기 백합꽃 아가씨여”로 시작되는 시인 고은의 묘비명이 있다고 한다. <YH노동조합사>(1984)에서 그는 YH 여성 노동자들을 “민족의 해당화”로, 김경숙을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민족의 꽃송이”라고 불렀다.

 

사진=이필
사진=이필

남성 진보 지식인들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대상화는 양성우의 추도시 「그대 못다 부른 슬픈 노래를」에서 더 두드러진다.

"아아, 열아홉 순정이 짓밟히는구나
엉겅퀴 쑥대밭에 불길로 타고
두 손에 큰 돌멩이 나눠 들고 소리치며
아아, 열아홉 순정이 짓밟히는구나
평생을 살아봐도 오히려 낯선
짐승 우는 야만의 푸른 언덕 위에
누가 남아 피 흘리며 날선 칼을 꽂을까?
모두가 어둠 속에 묻힐지라도
밤은 끝내 밤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나니,
그대 못다 부른 슬픈 노래를
땅을 치며 부르리라, 예쁜 아가씨
죽어서도 오히려 또다시 죽는
이 나라의 배고프고 예쁜 아가씨
눈 먼 풀잎 모조리 태우는
끝 모를 모래벌판 여름 불볕 아래
아아, 열아홉 순정이 짓밟히는구나"

“한 서린 처녀”, “한 떨기”, “열아홉 순정”, “짓밟히는구나”, “예쁜 아가씨” 따위가 죽음으로써 투쟁한 여성 노동자의 삶을 가리키는 적절한 레토릭인가? 그리고 열아홉 아니다. 김경숙은 스물둘이었다. “열아홉 순정”이란 젊은 여성에 대한 이 후진 레토릭은 도태도 되지 않고, 출처가 어디인지? 김경숙이 죽기 전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고 한다.

“나는 10년 가까이 노동생활을 하면서 가난의 속박과 소외가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가를 체험했다. (...) 우리 노동자가 노예가 아닐진대 어찌 순순히 끌려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이 암혹한 노동 현실에 이 한 몸 노동운동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노동운동에 거름이 된다면 바랄 게 없다.”


* 이 글의 주된 소스는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발제이고 제가 따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필 효주 아녜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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