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역사공원은 십자군전쟁 전리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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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역사공원은 십자군전쟁 전리품인가?
  • 김유철
  • 승인 2019.10.22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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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서소문역사공원 표지판. 이하 사진=김유철

역사의 점유 혹은 전유

점유(占有)는 일정한 지역이나 대상을 차지하는 것이고 전유(專有)는 오로지 혼자만 소유하는 것이다. 지난 5월 25일 개장한 서소문역사공원(서울시 중구 의주로 2가 16-4)이 그러하다. 사실 공원 내부의 이름마저 ‘서소문역사박물관’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다.

총 600억 원에 육박하는 공공 예산(국가 50%, 서울시 30%, 중구 20%)이 투입되었지만 개장 5개월이 되도록 서울시 혹은 중구청 홈페이지 문화관광 안내에서는 서소문역사공원을 찾아볼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장에 즈음하여 “서소문역사공원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토리와 역사를 가진 장소지만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재탄생한 역사공원을 인근의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와 연계해 서울의 관광 명소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지 그의 순박한 꿈이거나 누군가 적어놓은 것을 읽었을 뿐이다.

서소문역사공원 개장 나흘 후인 5월 29일 역사공원 지하의-이름도 어려운-콘솔레이션(consolation·위로)홀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축성 및 봉헌 미사를 했다. 그 날이 천주교회가 정한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기념일임을 상기하며 염 추기경은 “순교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애써왔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축성하는 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역사공원 시설 안내판
역사공원 시설 안내판

위탁받은 공공건물에 대한 축성과 봉헌

근본적인 물음이지만 교회재산이 아닌 것을 교회가 축성하고, 그렇게 봉헌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그 장소는 분명히 공공예산으로 조성한 곳이다. 지상의 역사공원은 물론이지만 지하시설은 분명히 서울특별시 중구청 공고 제2019-439호에 나와 있듯이 <서소문역사박물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서 장소의 이름을 <서소문역사박물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추기경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라고 말했을까?

위 조례 1조 목적에서 ‘박물관의 효율적 운영을 도모하여 서소문역사공원의 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살려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하여 중구를 관광 문화의 도시로 알리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역사박물관을 위탁받은 서울대교구가 스스로 ‘성지역사박물관’으로 말한다면 박물관 설치 조례의 목적에 어긋난 것은 아닌가?

서소문 역사공원 조성과 관련하여 역사공원 안팎으로는 「도시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 및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 적용되는 장소에 대해 위탁계약을 한시적으로 중구청과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위탁을 받은 것처럼 시설물과 전시물의 대부분을 특정종교, 즉 천주교회의 생각대로 한 것이 다종교사회이며 다문화를 인정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천주교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다른 종교와 다른 가치관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해도 서울대교구의 최고수장이 축성하고 봉헌해서는 안될 일이다. 단지 천주교회는 국민과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역사공원의 박물관을 한정된 기간 중구청으로 부터 위탁 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사실의 전부다.

 

역사공원에는 순교자 현양탑과 야외 제대도 있다.
역사공원에는 순교자 현양탑과 야외 제대도 있다.

십자군전쟁의 오판을 기억하라

새삼 역사공원이 개장되기 전까지 동학(천도교)를 비롯한 아웃종교와 종교투명성센터 등의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많은 문제들을 재론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오래전에 김선필 칼럼 <서소문순교성지개발 사업에서 예수 강생의 의미를 생각하다>(가톨릭일꾼. 2016년 12월 28일)를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태도로 서소문 밖 순교지를 대할 것인지 피력한 바 있다.

천주교인으로서 순교자들의 순교정신과 순교지를 폄훼하려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장소를 혼자서 차지하려는 점유와 전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점령일 뿐이다. 2000년을 앞두고 교종이 바티칸에서 세계인들에게 용서를 청한 교회사에서 가장 불행한 일중의 하나인 십자군 전쟁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지 않았는가?

일찍이 서소문 순교지에 대한 혜안을 가진 사람들은 순교지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약현성당을 건립하고 순교자들의 억울하고 거룩한 죽음을 기리며 순교자 기념비와 기념관을 만들었다. 더 무엇이 부족한가? 꼭 그 장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꼭 그 자리에서 위로를 나누어야 하고, 꼭 그 장소를 크고 멋지게 꾸며야 하고, 꼭 그 장소를 순례해야 순교자 현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순교의 정신으로 예수의 유언과도 같은 ‘세상의 복음화’가 이루어진다고 보는가?

 

외부 조형물. 십자가로 이루어진 칼과 박해연도가 새겨져있다
조례상 역사박물관을 역사성지(shrine)박물관으로 표기했다
역사박물관 전시물은 천주교회관련 일색이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천주교회 점유대상이 아니다

서소문역사공원에 새로 만들어진 외부 조형물은 조선천주교회의 박해시기인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를 상징하는 숫자가 새겨져 있고, 건물의 유리창(스테인글라스)은 물론이고, 역사박물관 안에는 ‘미사예물 접수처’와 성인 이름으로 된 ‘정하상 경당’이 있었으며, 박물관의 전시물 중 천주교회 관련물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가히 천주교회가 형평성 있게 공공의 박물관을 수탁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새삼 말하지 않아도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공식 처형지였던 서소문 밖은 시대의 변혁을 꾀했던 허균과 홍경래를 비롯한 임오군란, 갑신정변의 관련자들과 숱한 동학의 지도자들이 민족의 개벽을 원하며 목을 내어 놓고 사라진 역사의 현장이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효수 당한 조선인 첫 세례자 이승훈과 율도국을 꿈꾸었던 허균과 녹두장군 전봉준이 바라본 하늘은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서소문역사공원은 분명 천주교회 단독의 점유 대상이 될 수 없다.

 

김유철 스테파노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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