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신의 안녕이 큰 숙제인 것처럼, 구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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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신의 안녕이 큰 숙제인 것처럼, 구원은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19.10.09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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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10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다. 광대정 산골의 숲이 짙어지면서 마음이 흠뻑 젖는다. 못자리를 해놓은 산논에 물꼬를 보러 올라갔다. 메말랐던 땅이 젖으면서 흙냄새가 확 끼쳐 오른다. 중국산이라는 보이차를 마실 때 이런 황토냄새가 났던 기억이 난다.

봄가뭄 때문에 아직 논에 물이 차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허옇던 논바닥이 비에 젖어 암갈색으로 변해 있는 것만 봐도 속이 후련하다. 숨통이 열리는 것 같다. 농부의 마음이 다 그런 법일까? 마늘밭이며 감자밭에 심어놓은 작물이 갈증을 식힌다고 여기니, 내 마음이 그만큼 가벼워진다.

며칠 동안 숲은 생기 가득히 축복 가운데 있었다. 그러곤 생각했다. 도시 살 때 가뭄이 심하면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비가 와야 할 텐데, 올 농사 다 망치겠네 하며 안타까워하던 것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이 그 갈증을 안다. 나 역시 이렇게 한 해 두 해 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감수성을 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어머니의 감수성, 흙과 가난과 노동, 그리고 자연이 주는 은총에 대해서 내 영혼의 창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사진=최민식
사진=최민식

노동자들의 글을 담아놓은 <삶글>이라는 잡지에 실린 오철수님의 ‘사용하지 않는 창’이란 시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용하지 않는 창이 있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잠에서 일어나 무심결에 여는 창도
일을 하다가 비가 오거나 하여 다가서는 창도
밖으로 나갈 때 확인하는 창도
늘 한쪽 창이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커튼도 늘 한쪽으로만 쳤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으므로

어느날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아들놈이 잡아놓은 매미를 날려주어야 한다고 징징거렸다 매미는 저녁밥도 못 먹고 지금쯤 엄마의 걱정이 대단할 것이라면서도 손으로 잡는 것이 무서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매미의 날개를 잡아 아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잡으면 돼, 말하고 유리창으로 갔다 그런데 열리는 창은 모두 방충망이 되어 있어 결국 도대체 한번도 쓰지 않은 창을 열어 매미를 날려주며 나는 보았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해진 그 창문으로는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의 일상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붙박여 있는 하나의 창이다. 세상이 가르쳐 준 한 가지 방식으로 삶을 꾸리고 사람을 바라본다. 다만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는 삶인지 원하지 않는 삶인지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렇게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그리고 내일이 진부하고 때로 지루하게 엮어진다.

내 육신의 안녕을 가장 큰 숙제처럼 이고 사는 사람들, 내 식구들의 안락함이라는 자못 엄청난 사명을 매일같이 확인하며 사는 사람들, 다른 이들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서 손수레를 끌고 다니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먹을 때, 내 아이들이 다만 그걸 구경하거나 졸라대다가 지쳐 잠드는 일이 없기를 소원하는 사람들, 그래서 늘 삶은 생존 투쟁이고 타인은 경쟁 상대일 뿐이므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스스로 출근길마다 다짐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창만이 빠끔히 열려 있다. 그 창이 그 사람의 세계이고, 그 세계에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리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천진한’ 아이를 통해서 우린 어쩌다, 다행히도 기적처럼 우리 인생에 아직 열어보지 못한 다른 창이 남아 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저 낮은 곳으로 향한’ 길, 그래서 상처와 고난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내 영혼이 바닥에서부터 원하고 있었으며 하느님께서도 태초로부터 내게 갈망하던 삶을 발견한다.

그 다른 창은 매미의 목숨을 살려주는 창일 뿐 아니라 그 창을 여는 자의 영혼을 전혀 다른 세계로 연결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한 번 그 창을 열어본 자는 다시 그 창을 닫지 못할 것이다. 그 창밖엔 참되고 신선한 바람이 흐르고 있는 까닭이다. 그 바람이 그 사람의 숨통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전] 작품 일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전] 작품 일부

우린 최민식이란 사진작가를 통해서 다른 빛의 눈길을 발견할 수 있다. 최민식은 어린 시절 가난이 싫어서 집을 나와 품팔이·공장생활·지게꾼 등 바닥생활을 하다가, 나중엔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경 중앙미술학원 야간부에서 공부했다. 그 시절 헌책방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이란 사진집을 보고 감동하여, 그처럼 상처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는 데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되었다.

그는 가난이 주는 상처 때문에 울었다. 가난이 사람의 영혼을 묶고 모든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보고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남루함과 고통을 증언함으로써 일그러진 한쪽 창만 열어두고 있는 자들에게 반성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최민식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란 책 앞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땅에 빈자가 존재하는 한 나의 증언은 멈출 수 없으며, 그들을 배제하고는 내 인생 자체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사진 창작에 필요한 경비 부담으로 항상 고민해야 했다. 쌀 사놓으면 연탄 떨어지고, 연탄 들여놓으면 쌀 떨어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도 팔아야 했기에 지금은 달동네로 올라와서 살고 있으나 전화라도 한 대 있으니 다행이다.

사진가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사진을 위해서 현실적인 불행과 고통을 즐겼다. 그 어떤 어려움도 사진의 거름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사진 때문에 더욱 불행해져야 했다. 벌거벗은 겨울 나목이 모진 혹한을 이겨내듯이 나도 사진이라는 기막힌 꿈을 꾸면서 그 어떤 불행도 쾌감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오기로 남몰래 미소짓곤 했다."

사진=최민식
사진=최민식

그의 사진은 고단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실상을 밝히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나라의 위신을 깎는 이적행위라고 매도당하기도 하였다. 사진집 세 권은 판매 금지당했고, 외국에서 작품전 초대를 받아도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단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말한다.

“사진은 사진 그 자체로 말할 뿐이다. 가난한 자의 행복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나의 사진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무한한 행복을 위하여 바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분명 다른 창이 더듬거리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창이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우릴 먼저 구원할 것이다. 예수도 그 창을 통하여 세상과 인간을 만나고, 급기야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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