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를로 까레또, 사하라 사막이 나에게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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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 까레또, 사하라 사막이 나에게 준 선물
  • 가톨릭일꾼
  • 승인 2019.10.0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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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 까레토 수사 선종 31주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 존경하는 예수의 작은 형제 까를로 까레토 수사님 (Carlo Carretto, 1910년 4월 2일-1988년 10월 4일) 선종 31주년 !

하느님의 부르심에 단호하게 "예"로 응답한 구도의 한평생!

"하느님의 부르심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 부르심은 신앙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목소리는 아주 가늘고 조심스러워 전적으로 내적 침묵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지상에 사는 인간들에게 그보다 더 결정적이고, 더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며, 더 믿을만하고 강력한 것은 없다."

하느님의 첫 번째 부르심

"나는 열여덟 살 때 느꼈다. 바로 그때 나는 나의 소명을 결정하였다. ... 나는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이 지나가심을 느꼈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느꼈으며 나의 인생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하느님의 두 번째 부르심

"내가 스물 세 살 때에 있었다. ... 조용한 성당을 찾아가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전에 내가 신부님에게서 고백성사를 받았을 때 들었던 것과 같은 그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결혼하지 말고 너의 삶을 내게 바쳐라. 그러면 나는 영원히 너의 사랑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세 번째 부르심 

이탈리아 가톨릭 운동권의 최고 지도자(1952년 "가톨릭 액션"회장)로 운동의 절정기에 사하라 사막으로 홀연한 은거. 수도승 출가. (1954년 샤를르 드 푸코의 작은 형제회 입회) 

 

 

"나는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에 그 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것은 나의 전 생애의 가장 엄숙한 부르심이었다. 즉 관상생활에 대한 부르심이었다. 그것은 밤이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인간의 힘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는 신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와 함께 사막으로 가자. 나는 더 이상 너의 활동을 원치 않는다. 너의 기도를, 너의 사랑을 원한다.' 이번에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또 '예'라고 대답했다."

... 그리고 그것은 그야말로 결정적인 부르심이었다. 1954년 성 까를로 축일의 저녁기도를 바치는 동안에 나는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으며 그때 나는 '예'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나와 함께 사막으로 가자. 너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생활인 기도가 있다. 말보다 더 큰 효과가 있는 사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막으로 떠났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규칙도 읽어보지 않은 채, 샤를르 드 푸꼬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 수도원에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사막에서의 편지>)

그토록 경애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 아시시의 수바시오 암자에서 성인의 영성을 묵상하며 성인의 전기를 쓰시고, 성인의 축일에 하느님 품에 안긴 수사님

<프란치스코, 저는>(장익 주교 역,1980년)

"프란치스코 같은 참 성인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 모두의 영혼을 늘 적시고 되살리는 그 생명수가 마를 줄을 모른다”(장익 주교)

“... 자네들에게 딱 한 가지만 부탁하겠네. 자네들에게 돈이 있으면 제발 잘 써요. 우리가 다 함께 그토록 사랑하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써 주어요. 내가 백 주년 경축 기간에 순례자의 옷을 입고 아씨시로 돌아오거든, 자리가 없다고 코앞에 문을 닫아 버리지는 말아요. 다른 사람들도 아닌 바로 자네들이 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매정하게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건 못된 짓이지.”

“나의 형제들아, 자네들이 나를 프란치스코 형이라고 부른다면 이렇게 말하겠네. 거룩해지게, 그러면 자네들에게 세상이 거룩해 보일 걸세.”

“마음만 있다면 해 보세요, 형제 여러분, 해 보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실 겁니다. 복음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비폭력은 폭력보다 건설적입니다. 정결은 부끄럼을 모르는 환락보다 더 맛스럽습니다. 가난은 부유보다 더 흥미롭습니다"(<프란치스코, 저는>)

10년간 사막에서 정련된 영성의 진주알같은 <사막에서의 편지>(LETTERE DAL DESERTO, (신상조 신부 역, 1964년) !

"사하라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던 기도의 주변에서 고독을 먹고 영글은 몇 가지 단상들을, 체계도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겠지만 한 번 엮어본 것이다."

16세 연하의 친구 이반 일리치 신부님 (1926-2002)의 감동적인 머리말!

"제 친구인 까를로 까레토 수사님께서 원래 유럽친구들에게 쓴 이 책에 관해 영미권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숙소에 들르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면 사막 밖에서는 위화감을 느끼겠다는 생각이 늘 듭니다.

사막의 광활함은 사람의 강함도 약함도 모두 압도합니다. 이슬람교인 목동이 부르는 노래가 확고한 믿음의 엄격함 속에서 이탈리아인의 프란치스코성인 식의 다정함을 휘감습니다. 사막의 공허함을 통하여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즉 쓸모없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받아 들이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벗어나 까레토 수사님의 인품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독자들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수사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겠다는 노파심도 듭니다. 하지만 영어판의 일부 독자라도 어느 완전한 침묵의 날, 거의 누리지 못하거나, 더 자주 비난 받는 바로 그날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졸역임, 원문참조)

"My friend Carlo Carretto has asked me to introduce him to the American and English readers of these pages, which were written originally for his European friends. - - - We became friends. When he came to visit me he told me stories. Remembering them I always felt that outside the desert they would sound out of place. The immensity of the desert overwhelms both the power and weakness of men. The Muslim shepherd’s song envelops the Franciscan tenderness of Italian in the austerity of unambiguous faith. The emptiness of the desert makes it possible to learn the almost impossible: the joyful acceptance of our uselessness. I fear that outside this context and not knowing Carlo in person, many readers will have to make a great effort to learn from Carlo what he taught me.
But I do hope that at least some readers of these pages in English will do so on a day of complete silence -- to which they rarely treat themselves -- or, more often, to which they are condemned.
(<Letters from the Desert>(1972년)

진주같은 사막의 영성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믿는 만용을 은연중에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제일 위험한 이기심 곧 정신적인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위선이다. 이것 위에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신심과 기도를 이용하여 견고한 바벨탑을 쌓는다."(7. 마음의 정화)

"그렇다. 당신의 생활 안에서 사막을 만들고, 때때로 사람들을 피해서 침묵과 기도 가운데 영혼을 재건하기 위해 고독을 찾도록 하라.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사막에서의 영성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보다는 남에게 멋있는 것이라는 감탄사를 듣기 위해 새것을 들여 놓는다.
이 자유가 없는, 아니 이 유행의 노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묶어버리는 악마이다. 그 악마의 제단 위에 얼마나 많은 돈이 낭비되는가! 달리 사용함으로써 얼마든지 선용할 수 있는 돈인데도! 달리 사용함으로써 얼마든지 선용할 수 있는 돈인데도!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유행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렇다. 청빈의 정신은 자유이다."(9.길에서의 관상)

"생명이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고, 모범이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다. 모범이 없는 것은 신앙과 사랑 대신에 빈 말만을 나열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로 복음을 외치고 싶다.> 샤를르 드 푸꼬는 여러 번 말했다. 그는 가장 효과 있는 사도직의 방법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설교를 듣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12.나자렛)

마지막 기도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당신들은 참으로 또 영원히 믿음의 스승이요, 완전한 모범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비춰 보고, 잘못을 고치고, 우리의 약점에 힘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 옛날 당신들이 예수 옆에 계셨듯이 지금은 우리 옆에서 우리를 영원하신 분에게 데려가 주시고, 일에 있어 우리는 작고 가난하다는 것을, 귀양살이에서의 인내를, 생활에서의 겸손을, 시련에서의 용기를, 기도에의 충실을, 사랑 속에 열망을 가르쳐 주소서.
우리가 죽는 시각이 올 때, 우리의 친구인 밤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되게 해주시며, 또한 예수께서 우리 지상에 오실 때 밤하늘에 빛났던 별이 우리를 위해서도 빛나도록 해주소서."(17.밤은 나의 연인)

까레또 수사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저희의 장터같은 마음 속에 가진 것을 하나라도 더 버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막을 만들어 침묵 가운데 홀로 주님과 만날 수 있는 은총을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 빌어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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