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일꾼운동을 알기도 전에 시작된 '프란치스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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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일꾼운동을 알기도 전에 시작된 '프란치스꼬의 집'
  • 가톨릭일꾼
  • 승인 2019.09.2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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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반짝이고 있고 그늘도 뚜렷하다. 이웃 주변은 바람에 휘날리는 쓰레기와 깨진 유리창 문들이 널려있어 마치 누더기 같다. 건물과 상가아파트들은 초창기 신시내티시를 장식했던 붉은 벽돌로 세워져 있다. 살기 좋았던 과거의 속삭임들이 들리는 것같다. 이 지역은 번화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켄터키와 서버지니아주로부터 행운을 찾아 이동해온 아팔라치아 이주민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모르고 시작한 환대의 집

짐 몰렌은 이곳에서 술집 두 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 팔아버리고 임시로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난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잘 곳이 없다든가 집이 없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방이 있었다면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곤 했지요.”

그러다가 한 달에 200달러씩 세를 내는 건물이 나왔고 짐은 술집에서 하던 임시 일을 정식직업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세를 들였고 침대를 얻어왔다. 이윽고 집은 사람들로 꽉 차게 되었다. 짐은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운동에 대하여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83년경 그는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한동안 하고 난후에야 난 워싱톤에 있는 가톨릭일꾼공동체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지요. 그들은 내가 하고 있었던 일을 모두 하고 있었고 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때까지 그들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요. 그래서 그 공동체를 맡고 있었던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어떻게 가톨릭일꾼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저 문에다가 <가톨릭일꾼공동체>라고 써붙이면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난 도로시 데이와 운동에 대하여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정말 놀라운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식 대로 하고 있었는데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대접하고 묵게하는 일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했어요. 난 아침에 일하러 나갔고 밤에 돌아오면 문을 잠그지 않고 모든 사람이 들어와 밤을 지낼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난 요리를 아주 잘 해요.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웃고 킥킥 댄다) 정말이지 훌륭한 요리사 입니다. 난 매일 한 솥씩 스프를 끓였고 소문이 퍼져서 수 많은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이 오기 시작 했어요.”

 

음식은 맛있고 풍부하다

공동체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모습이랑 주변의 많은 집들과 유사하다. 다만 현관문을 보면 차이가 느껴질 뿐이다. 그 낡은 문위에는 매우 단정하고도 큰 둥근 문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여호수아 23장 15절) 그리고 이 문을 통하여 4만여 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지난해 점심을 와서 먹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아씨시의 프란치스꼬가 환히 웃음지으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방에서 식사를 한다. 이 집의 친절은 아주 부드럽고, 까다롭지 않다. 사람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음식은 맛있고 풍부하다. 대개는 고깃국이 준비된다. 음식이 충분치 않을까 하는 걱정과 인색함을 찾아볼 수 없다.

부엌은 집 뒷쪽에 있고 아주 작아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기적같다. 봉사자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11시가 거의 되었고 곧 점심이 시작될 시간이다.

기적의 8천 달러

짐은 이렇게 말한다. “일을 시작해서 얼마가 지난후 주인으로부터 말을 들었지요. 집을 사든지 아니면 이사가든지 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살려면 1만5천 달러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우리 은행 잔금은 겨우 44달러 밖에 없었어요.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요. 그러다가 한 가톨릭회보 발행인에게 사람들이 모금을 어떻게 하는지 문의했어요. 그는 나에게 회답하는 대신, 그 편지를 회보에 실어 주었지요.

또 한편으로 나는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 청원기도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기도 마지막 날에 어떤 사람이 헌옷 상자를 가져왔는데, 열어보니까 맨 위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가 놓여 있었어요. 난 그걸로 우리 기도가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어요. 곧 기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한 주일 안에 8천 달러가 모여졌지요. 그런 큰 돈을 갖고 있으니까 꽤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래 우리는 다른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현재의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이 공동체를 시작하겠끔 한 것은 아니지만, 난 이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발견했어요. 우린 냉장고 하나로 시작했지요. 지금은 냉장고가 7개나 됩니다. 난 음식에 대해서 걱정 안해요. 항상 먹을 것은 풍부합니다. 어떤때는 정말 놀랍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전화하면서 우리에게 줄 고기가 좀 있으니까 와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 가봤더니 오천 달러 상당의 핫덕과 베이콘, 소시지, 그리고 가공한 고기식품이 있더라구요. 우린 트럭 가득히 싣고와서 냉장고에 모두 채우느라 반나절을 수고했어요. 그러고도 냉장고가 부족해서 남는 것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정말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습니다.”

“내가 겪은 가장 큰 기적이요? 그건 내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기대가 무엇인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기적입니다. 또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바로 기적이지요.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하거나 계속 취해 있을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그는 지난 3주일 동안 아니 다섯달 동안이나 술에 취하지 않았었지. 그건 정말 잘했던 일이야. 그래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지.‘ 실망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받아들임이 여전히 힘들때도 있지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적

깊고 푸른 눈과 시골사람의 소박한 자세를 지닌 깡마른 죠니는 서버지니아주 불루휠드산에서 왔다. “난 콜롬버스시에서 일했는데 해직 당했지요. 그래 신시내티 시에 일자리를 찾으려고 왔는데 몹시 아프게 되어 여기에서 머물게 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이제 한 달쯤 지났고 여기가 좋습니다.”

죠니는 아주 큰 솥을 닦기 위하여 부엌 뒤에 있는 목욕통으로 간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린 지난주에 쇠고기 스튜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고기는 있었는데 당근이나 배추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 어떤 노인 한 분이 싼 야채 시장에서 산 것같은 큰 주머니를 갖고 나타났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그들은 나에게 물건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정말로, 내가 그 주머니를 열었을때 거기에는 엄청난 양의 배추와 당근이 있었지요.“

이 프란치스꼬 공동체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봉사자들이 있다.

알마 설리반은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편안한 균형을 갖춘 회색머리의 여인이다. 그는 처음에 이 집에 관한 기사를 읽고 사무적인 일을 도와주려고 왔다. 물론 이 집에는 사무적인 일보다 그때 그때 즉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더 많긴 했지만, 알마는 접시를 닦고 식탁을 치우며 밥그릇을 놓고, 손님들을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있다. ”한 소년이 오는데 내 손자를 생각나게 하지요. 그런데 그는 아직 어떻게 삶을 살아야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신차리고 잘 했지요. 먹던 약도 끊고 학교에 돌아갔는데 지금은 다시 제자리 걸음이예요. 정말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지요.“

그리고 봉사자들 중에서 시내에서도 매우 잘 알려진 집안의 대가족 부대가 있다. 처음에는 70대인 노부인이 먼저 왔었는데 그 부인은 점차로 친구들과 열자녀, 그들의 배우자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동원하여 이제는 약 육십명의 튼튼한 가족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부엌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매주 일요일 돌아가며 식사에 필요한 모든 일을 다 맡아 한다. 또 변호사, 지붕 고치는 사람, 자동차 수리공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집안의 다양한 일들을 든든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적도 있다. 짐은 동경하는 듯한 눈초리로 이렇게 말한다.

”우린 농장을 원하고 있습니다. 시내에서 멀지않는 곳에, 3.40분쯤 떨어진 곳에 우리가 먹을 채소를 키우고, 맑은 공기속에서 손님들을 맞아들이며 전례를 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게 언제나 가능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추진하는데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는 돈을 가져왔어요. 아마도 올해 안에 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난 믿고 있어요. 언젠가는 될 겁니다. 피터 모린에 대해서 알기 이전부터 이건 나의 꿈이었지요.“

“난 우리가 휴가를 가질만큼 여유가 있을까 늘 걱정하곤 했었죠. 그러나 이젠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집은 세금면제가 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지서처럼 매달 정규적으로 돈을 보내주고 있어요. 그저 하느님께만 의지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넉넉하게 주어집니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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