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츄세츠주 윈첸든 스프링스] 한낮의 농장, 영적 전투가 이루어지는 기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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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츄세츠주 윈첸든 스프링스] 한낮의 농장, 영적 전투가 이루어지는 기도의 집
  • 참사람되어
  • 승인 2019.09.0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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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노동과 웃음이 있는 공동체, 당신의 낮과 밤을 부드럽게 해줄 음악이 건강하게 양념처럼 끼어있는 공동체를 찾고 있다면, 매사추세츠의 한 시골길 끝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윈첸든 스프링스 : 함께 일하며“ 이 공동체는 가톨릭일꾼 공동체 가운데 하나로 개인들이 도전받고, 신앙으로 채워지고 자유롭게 함께 일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부엌에서, 현관에서 혹은 정원에서 당신은 빌 버슬리와 그의 아내 리사 마하르, 루이즈 코크란과 남편 짐 레빈슨, 마이클 하랑크, 에블린 맥도갈 그리고 로버트 허비츠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이 집에 오게된 여정은 아마도 당신의 여정보다 더 복잡했을 것이다.

짐 레빈슨의 영적 귀향

짐 레빈슨은 곱슬머리와 수염을 기른 유대인으로 농업경제학과 국제영양학을 전공한 박사이며 교수 출신으로 피아노앞에 앉아 있다.

”난 수년간 국무성의 외국원조부에서 일했지요. 즉 인도에서 6년간 그리고 2년은 방글라데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난 미국정부가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간섭하는 걸 보고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쉬에서 실시하는 미국의 모든 프로그램은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사이의 격차를 더욱 넓혀갈 따름이었습니다. 난 보다 더 직접적인 어떤 것을 갈구했지요. 내가 그들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과 직접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와 아내 루이즈가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을때 그들은 더 좋은 것, 즉 공동체, 사명, 단순함, 저항등의 더 분명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무런 대안도 없었다.

”1981년에 노아(그들의 아들)가 태어났고, 우리는 자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에게는 이런 친구들이 있었지요. 아이를 갖게 되면 사회정의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아이의 물질적인 안녕에만 몰두해 버리는 그런 친구들 말입니다.“

짐은 다리를 꼬며, 기억을 더듬느라 샌달을 신은 맨발을 쭉 뻗었다. ”우리는 일하면서 세계를 여행 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우리는 첫번째 공동체 체험인 키무츠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어요. 루이즈와 나는 큰 감명을 받았지요. 그리고 필리핀에서 난 마르코스 정부 일을 약간 했었습니다. 그때 내가 옳지 않은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동안 난 헌책방에서 베리간형제회에 관한 계간지 성십자가 1971년도판을 구할 수 있었고 우린 굶주린듯이 그것을 읽고 빠져 버렸지요.“

갈증은 그순간 해소 되었다. ”우린, 언제까지 타협해가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어요.“ 보스톤에 돌아오면서 그들은 시내에서 스프키친을 열고 있는 할리 가톨릭일꾼공동체를 발견하였다.

할리 가톨릭일꾼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짐은 무고한 어린이들 살해 기념축일날 국방성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였다. ”그건 회심의 순간이었고, 영적인 심화의 극치였어요. 피와재, 그런 체험은 다시 못할 것 같아요.“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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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과 루이즈, 그냥 농사짓기로

짐과 루이즈는 세계의 보화들로 가득찬 방 14개짜리 집을 포기하고 할리 공동체로 이사 하였다.

”난 도로시 데이에 대하여 많은 책을 읽었어요. 나는 1930년대 뉴욕의 급진적인 저널리스트에게 진실로 응답하였지요. 도로시는 싸움을 통하여 깊은 영적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불란서의 가장 인간적인 농부 피터 모린에 대해서도 응답한 셈이구요.“

짐은 천 왓트짜리 웃음을 번쩍였다. ”난 마침내 농사짓는 것에 대하여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정하였어요. 그저 나가서 농사짓기로 한 셈이지요.“

보스톤에 2년간 살면서 ”우리는 도시의 스프키친보다 가족들에게 더 잘 어울릴 공동체를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라고 짐은 덧붙인다. 도시의 비참에 대한 해독제로 고전적인 가톨릭일꾼공동체를 윈첸튼 스프링스에 세우는 것이 그 답이었다.

짐의 부인인 루이즈 코크란은 깊고 푸른 두 눈과 잘 생긴 눈썹, 그리고 날씬한 몸매의 우아한 여인이다. 루이즈가 체험했던 영적 여행은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건 세계적인 체험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장로교 목사의 딸로서, 하바드신학대학의 강사로부터, 그리고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방그랄데쉬의 가난에 이르기까지.

”난 봉사하라는 부르심을 느꼈어요. 나는 티베트의 한 수도원에 가서 6주간 묵상코스에 참석 했었지요. 그건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었어요. 단식도 했구요. 우린 침묵을 지켰지요. 난 두려웠습니다 난 탐구자였어요. 이 코스를 끝낸후에도 짐은 나를 사랑할 것인가 하는 질문도 나 자신에게 했지요. 난 앞으로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정통적인 영적 훈련을 받았지요. 그때는 우연스럽게도 사순절기였어요.“

보스톤에 돌아와서 거의 목사직에 안수되기 직전 루이즈는 마음을 바꾸었다. ”난 목사 직분이 무슨 조합의 일과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건 짐과 내가 벗어나고자 애써왔던 세계입니다.“

1983년 할리 공동체에서 지낸 부활전야에 루이즈는 신앙을 고백하고 가톨릭인이 되었다. ”난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가톨릭일꾼공동체로 이끌려 왔어요.“

그러나 할리 공동체에서의 생활은 어려웠다. 한 방에서 엄마와 애기가 지내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 미칠 것같은 시간들이 있었고, 노아는 정해진 시간에 잘 수도 없었지요. 난 폭력을 두려워 했고 노아를 데리고 나가 헨리 나웬 신부의 아파트에 피신하기도 했지요. 전화와 현관벨, 사람들의 싸움등 집은 온통 난리일 때가 많았지요. 난 떠나고 싶었어요.“

그때 마치 기적처럼, 할리 공동체는 농장을 살만한 돈을 얻게 되었다.

리사 마하르, 명랑한 사람

리사 마하르는 공동 책상에 앉아 우편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오전내내 후원자들의 선물과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그의 글씨체는 무척 아름다웠고 마치 흐르는 것 같이 보였다.

”우린 농장을 1983년 가을부터 찾기 시작했고, 지금 이 집은 처음 본 집들 중에 하나이지요. 이 집은 정말 형편없었어요. 부엌은 황량했지요. 문턱은 닳아 빠졌고 마당에는 쓸 수도 없는 트럭이 있었구요. 다른 곳도 돌아다녀 보았지만, 18에이커의 땅에 13개 방이 있는 이 집이 그래도 가장 좋은 가능성을 지닌 셈이었어요. 또 길의 막다른 집이라 애들에게도 훌륭한 장소이었습니다. 결국 이 집은 우리들이 스스로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결정했지요.“

리사는 명랑한 사람이다.그는 모든 곳에서 웃음을 발견하고 항상 웃고 지낸다.

”처음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우린 아주 작은 것 하나 갖고도 많은 것을 창조해 냈어요.“

리사의 남편 빌 버슬리는 새로 덧붙여 만든 손님방을 페인트 칠하고 있다. 칠하거나 잡초를 뽑거나 추수하는 일이 없으면 빌은 목수일을 한다. 지금 그는 작업복을 입고 흠뻑 땀으로 젖어 있다.

빌은 오랫동안 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평화운동을 통하여 빌과 리사는 짐과 루이즈를 만나게 되었다. ”난 가톨릭일꾼운동의 평화와 정의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빌이 말한다. ”그러나 난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런 운동을 농촌지역에서 할 수 있으면 굉장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빌의 원예에 대한 꿈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난 피터 모린에 대해서도 읽었지요. 그는 땅과 노동의 통합적인 차원에 대하여 잘 정리했는데, 그것이 나에겐 무척 강하게 다가왔어요.“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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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하랭크, 그의 몸 전체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마이클 하랭크는 현관에 있는 부러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거무스름하고, 진지한 모습의 사람이다. 입과 머리뿐 아니라 그의 몸 전체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깊은 사고력을 지닌 그는 투신의 다양한 철학적 의미를 알아보며, 표현된 의견들의 포괄적인 적용에 대하여 제일 먼저 의견을 내는 사람이다.

마이클은 매사츄세츠주 린에서 카나다 불란서계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큰 형이 베트남 전쟁 징집을 거부하여 감옥에 가는 등 고통스런 어린시절을 보냈다. 도로시 데이의 인격주의에 감격해서 그는 1977년 10월 뉴욕의 가톨릭일꾼공동체에 도착하였다.

4년동안 그곳에 있었지만 매리 하우스의 문을 통하여 쏟아지는 일과 뉴욕거리의 모든 요구들도 그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부족했다. ”난 좀 더 조용한 곳에서 문제를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뉴 맥시코주의 한 분도수도원에 갔었지요. 그곳에서 6개월 있으면서 나 자신의 삶의 십자가로부터 부활을 향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렸지요.“

뒤로 기대면서 그는 심각하게 말한다. ”난 삶을 원해요. 이 풍요로운 삶을. 난 수년 간 그저 목숨을 부지했을 뿐이지요. 이제 난 정말로 살고 싶은 겁니다.“

그의 얼굴에는 받아들임의 미소가 어린다. ”우리는 자신들의 어둠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건 정말 벗어날 길이 없지요.“

”전쟁터에 있는“ 메리 하우스로부터 더 작은 공동체인 할리에 옮겨오면서, 마이클은 점차 간호원이 되고 싶다는 원의를 깨닫게 되었다. 농장이 시작되면서, 그는 공부하는 동안 농장에 살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사회적 존재로서 마이클은, 학교생활의 외로움 속에서 그를 지탱시켜 줄 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공동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상처와 약함, 필요함, 가난을 완전히 깨달을 때에 가능합니다.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로 뚫고 들어오실 때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공동체의 거처를 새로 구하다

가톨릭일꾼운동의 생일날인 1984년 5월 1일 마침내 농장 인수에 관한 마지막 서류작업이 이루어졌다. 들과 시냇물, 집 그리고 200년된 낡은 오두막이 모두 공동체의 소유가 되었다.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보자 (58, 6-7) :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이 집에 처음 발을 디뎠던 그룹이 공동체 이름을 "한낮의 농장"이라고 정했다.

농장은 거의 황폐직전에 있었다. 마리화나가 곳곳에 자라고 있었고, 페인트 칠은 벗겨지고 유리창은 깨져 있었다. 메리 하우스의 아릴린 로터가 포함된 첫번째 그룹은 집을 고치고 들에 채소를 심으며 손님맞을 준비를 하면서 우선 이층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일더미 속에서 공동체를 건설할 때에 항상 강조되는 점은 기도가운데 이웃과의 일치, 저항 그리고 사랑이다.

마이클은 말한다. “우린 첫해에는 함께 지내며 서로 배우고, 공동체적인 인식을 발달시키는 데에 치중하기로 결정했지요. 우린 공동체적인 방법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 우린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면 일은 실패합니다.” 리사가 강조한다 : “어떤 사람들에게 공동체란 호기심 투성이로 보이고 우리도 그 호기심을 만족시킬 만한 껍데기를 많이 이용할 수 있지요. 신앙에 중심을 두지 않으면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더 중요한 것들

타인보다 자기가 더 판단의 기준이 되고 갈기갈기 찢기는 관계만을 만들어 내는데 더 몰두하고 있는 것같은 사회분위기 속에서 신앙을 강조하며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3년동안 같이 살다보니 각자의 개성과 특이함을 모두 알게 되었지요.”

리사가 설명한다. “우린 많은 도전을 겪어왔지만 하나하나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농장에의 장기 투신과 인간 관계들은 우리들이 지닌 차이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짐이 씩 웃는다. “나에게 이 장소는 우리들이 함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또 스프치킨을 위한 식량을 생산해 내고, 가난한 이들과 나이든 분들을 돌보며. 피정도 하고 피터 모린과 가톨릭일꾼농장의 모범을 따르는 곳입니다. 난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일하러 나갑니다. 난 화가 나기도 하고 손해만 보는 느낌도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빠지고 나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이렇게 나는 ”존재하는 것“보다 ”일하는 것“에 많이 빠져 있었지요. 우린 한때 정말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지요. 공동체가 해체될 지경까지 갔어요. 식구들이 많이 상처들을 입었고 또 회복하려면 몇 달이 걸리지만, 난 이렇게 그냥 매달려 있습니다.”

“나의 가장 큰 갈등은 마치지 못한 일들이 그냥 남아 있는 채로 하루, 한 주간의 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짐의 모습에서는 걱정이나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난 현재 우리 처지에 편안해 합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공동체 생활은 더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인 관계나 공동체 차원의 관계에 대하여 난 더 신중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요.

그러나 난 조금씩 여유를 되찾고 있습니다.”

이 함께함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집에는 크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찬 방들이 마련되어 있다. 주로 모이는 큰 방에는 피아노와 벽난로가 있고, 큰 테이블과 의자들, 또 편안히 쉴 수 있는 낡은 소파들이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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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거리며 시작하는 공동체의 하루

겨울과 여름에 하루일과는 7시 30분에 시작된다. 어른들과 아이들은 가족을 위해서 마련된 사적인 장소에서 어정거린다. 하품과 커피, 우유사발 등이 첫번째 모임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지금은 여유있는 시간이다. 하루의 책임을 분배하고 나누는 시간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름에는 어른들이 돌아가며 하지만, 겨울에는 유아방을 하고 있는 리사에게 그 몫이 다 떨어진다. 학생인 마이클만 제외하고 모든 식구들은 공동체의 일상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일하러 나간다. 루이즈는 양로원에서 사목일에 종사한다. 짐은 아톨의 유대교회에서 독창자로 일한다. 과거에 짐은 대학원과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었다. 빌은 자신의 교회공동체를 갖고 있다. 또 모두가 농장일을 나누어 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침의 찬 공기 탓인지 엄마 아버지에게 착 붙어 있다. 공동체는 아침독서를 함께 한다.

짐이 피아노를 치고 공동체가 일어나 노래한다. 오늘 아침 그들은 라틴어로 마니휫깟을 부른다. 즐겁고 강건하게, 혹은 슬프고도 영으로 가득차서, 이렇게 노래부르는 모습은 한낮의 농장의 특징이다. 노래는 떼제공동체로부터 남아프리카 자유운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선정된다.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짐, 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하면서 하루는 풍요로와 진다. 이 집에서 노래는 모든것의 핵심이다. 기도의 노래, 식사와 함께하는 기도, 사랑의 기도등.

짐은 아침마다 6살된 아들 노아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있다. 아침을 먹은후 짐의 지휘와 노아의 열심한 손가락 덕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이곳에서의 삶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도시의 거친 삶이, 자연속에서 창조적으로 에너지를 쓰고 있는 삶의 자리를 내준 이곳에서 음악은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공동체 생활과 땅의 리듬은 잘 조화를 이루어 모든것을 새롭게 하고 치유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있다.

활기있는 식사시간

점심은 1시에 먹는다. 퀘이커 식으로 손잡고 활기있게 노래하면서 시작된다.

"이 음식, 이 음식,
이 영광스럽고, 영광스러운 음식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물들, 채소들
그리고 그것들을 키워주는 광물들에 감사합니다.
"

참치, 당근, 샐로리, 살라드, 빵과 치즈가 식탁에 올라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접시를 가득 채운다. 오후 수영에 대하여 리사가 이야기하고, 빌의 10살된 앰버는 새로지은 방을 언제 칠할 것인가 아버지와 의논한다. 최근에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한 사람이 손님으로 와 있다. 피아노 2중주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5살된 금발의 튼튼한 루크는 벌써 여름 캠프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즐 기고 있다.

접시들이 거의 다 비어지고 마감 말씀을 읽은 후, 아이들은 떠난다. 이제 어른들은 화제를 돌려 공동체 영성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찬 홍차를 한 잔씩 들며 대화가 계속된다.

기도하는 삶

리사는 묵상에 잠겨, 다시 익숙한 주제로 돌아간다. “난 기도 때문에 힘들어요. 가끔 난 하느님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오락가락 할때가 있지요. 일상에 촛점을 두어야 겠어요. 정말 어려워요. 난 가톨릭으로 키워졌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면 절대로 택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난 가톨릭으로 계속 돌아오고 있긴 하지요. 성사와 신비는 계속 나를 부르고 도전을 하고 있거든요.”

“난 특별히 종교적으로 자라나진 않았지만, 내 가족은 축일을 기념하곤 했었고 성년식도 했지요.” 짐이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인 이 집에서 기도한다는 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난 예수를 랍비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유대인으로서 난 그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려고 일생동안 노력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리스도나 야훼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내 경우 별로 편안치가 않아요. 그건 내게 익숙한 전통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기도속에서 예수의 이름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의 진실성은 수 년동안 나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왔습니다.” 빌이 덧붙인다. “난 항상 진실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언제나 노력은 합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앉는다. “세상속에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힘이 키워지기도 하지요. 이 집은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내가 가장 나 자신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공동체에선 그렇게 도망갈 구석이 많지 않아요. 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줄 수 있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빌은 몸집이 큰 사람인데 비해 매우 섬세한 사람입니다. “난 삶의 선물에 대하여 경이롭게 여기고 있지요. 세상과는 거꾸로 된 신앙의 세계에서 걷고 살아간다는것, 위험을 무릅쓰는 것, 하느님께 신뢰하는 선택을 하는것 이 모든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력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는 웃는다. “열한 식구가 2만 9천불로 일년을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지요! 난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난 이렇게 살도록 세상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공동체로서 그렇게 살라고 해야겠지요.”

마이클의 경험이 빌의 경우와 어우러진다.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인간성의 기적은 그냥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공동체에 신앙이 없다면, 그건 이기심의 전투장에 불과합니다. 공동체란 부족함과 약함을 깊이 느끼고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요. 바로 그때에 은총이 들어옵니다. 상처 받았을 때에 우리는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고, 그 상처를 이웃에 보이게 하고 또 하느님께 신뢰하기 위하여 은총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에블린 “난 사랑하는 마음에서 가톨릭 교회를 떠났어요

에블린 맥도갈과 로버트 허비츠가 미네소타에 있는 에블린의 가족을 만나고 사흘만에 돌아온다. 에블린은 23살이고 공동체에 일년간 살기로 결정했었는데, 그 기간이 거의 끝나간다. 로버트는 더 나이가 들었고, 수염을 기르고 근육이 튼튼한 사람이다. 그는 긴 머리털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매고 있다. 그는 아직 공동체 식구가 아니다. 그는 근방에서 목수로 일하며 있을 곳을 찾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농장생활에 깊이 빠져있고, 염소가 있던 외양간을 고쳐 두개의 손님방을 들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에블린은 다른 사람들처럼 가정과 일에 있어 고통을 겪어 왔다. 그는 이곳에 있는 일년동안 차차 치유되고 있다. 그는 젊고 곱슬머리이다. 애들은 에블린을 좋아한다. “난 사랑하는 마음에서 가톨릭 교회를 떠났어요. 난 로마에 있는 사람들과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제 깨달은 것이 있고 그래서 로마 사람들과 동의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영적일 수 있지요. 난 이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또 다른 사람을 돌보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공동체에서의 생활은 에블린에게 자신과, 또한 땅과도 가까이 만날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시간

도라가 피곤해져서 한바탕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은 후 자러 간다. 접시가 치워지고 식탁이 정리되면 공동체 모임 시간이다. 기도한 후 이미 나열된 문제들이 하나씩 거론된다. 집의 아주 작은 문제들도 다룬다. 이건 공동체의 전통이다.

로버트가 위험스러운 공동체의 차량사정을 식구들에게 상기시킨다. 차들이 거의 폐기 직전에 있는 것이다. 그는 미네소타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주 좋은 차를 발견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어떤 벌 치는 사람이 갖고 있었던 작은 반 트럭이다. 가격은 나무랄데가 없다. 보스톤으로 가져갈 채소를 싣는데도 아주 적당하다. 공동체는 로버트의 말을 경청한다. 그는 차를 자세하게 조사했다. 그들은 관심이 많다. 누가 다시 조사해 보기 위해 로버트와 함께 갈 것인가? 사람들이 자원하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간다.

오후가 길어진다. 아이들이 피곤해 한다. 그들은 앉아 있다가 나가서 놀다 들어오기도 한다. 이젠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 모임을 끝내야 할 판이다. 어떤 문제는 해결됐고 어떤 것은 보류되었다. 합의를 본 문제도 있고 의문이 제기된 문제도 있다. 여느 때 모임처럼 그들은 어떻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에너지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배울것이다.

이 공동체의 무의식적 선동가들인 아이들은 보배이다. 그들은 60년대 히피집단의 아이들처럼, 헝크러진 머리에다 코흘리개가 아니고 단정치 못한 차림새가 아니다. 5살된 루크는 경쾌한 옷차림을 자랑하고 있고, 앰버는 거무잡잡한 살결에 따뜻한 품성을 지닌 아이로 모든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된다. 노아는 말이 많은 루크와 균형을 이루느라 조용한 편이다. 이 둘은 좋은 친구이다.

이 농장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울수 있는 훌륭하고도 아름답고 안전한 곳이다. 2살된 도라는 예쁜 신발을 신고 있고, 모든 사람의 애기다. 농장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이로서 도라는 이곳을 좋아한다. 공동체의 중요한 그룹으로서 아이들은 하루에 세번 식사, 저녁의 가정적인 분위기, 그네 타고 미끄럼 타는 시간등 공동체의 리듬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들은 자비스럽게 어른들의 지나친 심각함을 자제토록 하며 가족들을 좀 더 배려하도록 만든다. 도라는 “지구에 사는 것은 행복하다” 라는 철학을 갖고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

미래로 들어가는 길을 함께 내려다 보고 있는 이들

마이클은 독신이지만, 가족중심을 지지한다. 그렇게 하는것이 자신이 자라며 지니게 된 상처를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가족에 대한 배려가 공동체의 특별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성들, 임신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이런 공동체, 가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어떻게 손님들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린 친절에 대하여 주의깊게 생각해야만 됩니다. 친절이란 숫자 이상의 것을 의미해요. 숫자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관대한 인격주의자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그들이 어린이들에게 표현하는 똑같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공한다.

이웃에 대한 공동체의 열정과 신중함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 미국 정부의 무기 경쟁등에 대하여 정치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보스톤에서 스프키친을 위해 봉사하고 할리 공동체를 도울만큼 채소를 가꾸게도 한다.

빌은 "한낮의 농장"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로부터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기에 모여있고, 땅에 가까이 이사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며, 서로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이 사회에 구조적이며 체계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 변화를 살아야 합니다.”

루이즈가 이 말을 다시 확인한다. “나에게 있어 공동체는 꿈이 실현된 것과 같아요. 어떤때 우리가 가장 격렬하게 싸우거나 안간힘을 쓸때, 우리는 가장 함께 있는 것이지요.”

이 공동체의 사람들, “미래로 들어가는 길을 함께 내려다 보고 있는 이들” 은 방금 끝나고 또한 동시에 방금 시작된 여정으로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사야의 말씀을 담고 있다.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 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 오리라." (이사야 58, 9-10)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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