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주 렉싱톤] 오보나우사윈 일꾼의 집, 배움이 있는 농장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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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주 렉싱톤] 오보나우사윈 일꾼의 집, 배움이 있는 농장공동체
  • 참사람되어
  • 승인 2019.09.0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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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나우사윈 농장의 옆문으로 가는 자갈길에 들어서면 두 에이커쯤 되는 아름다운 채소 농장이 앞에 펼쳐진다. 한 여름 이곳의 채소들은 잘 가꾸어지고 아주 무성하여, 피터 모린의 시골스런 마음을 기쁨으로 넘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패트 올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농사짓는 일이 천직은 아니었으며 다양한 삶을 살아왔던 한 여인이 이 농장에서 벅찬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99에이커의 비옥한 땅인 오보나우사윈 농장은 "땅으로 돌아가자"는 가톨릭일꾼운동의 외침, 그리고 모든 자연적인 것에 끌리는 패트의 성향과 열성, 추진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패트는 도시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수 년간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신체적인 일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을 주로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디트로이트시에 있는) 데이하우스에 관계하고 있던 한 친구가 그 운동에 대하여 이야기 했었죠. 그러나 내가 그곳에 간다면 꽉 붙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았어요. 나는 매 일요일마다 가는 것으로 시작했지요. 그때 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그 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복음에 관한 공동신앙을 나누고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들은 그저 단순하게 사람들을 섬기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어요.

그들이 겪고 있었던 개인적인 어려움들과 생활방식은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지요. 난 그때 정말 아주 빠져버리고 말았어요.”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패트의 위엄과 열정 

패트는 마흔 다섯살의 나이에 작고 단단한 아름다운 여인이다. 탐스러운 은발머리에, 키가 180센티 정도의 사람에게서나 나올 우렁찬 웃음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패트는 위엄과 열성적인 확신을 지니고 사는 실천가이며 동시에 이상가이다. 그는 이 농장을 한데 엮고 있는 철사줄이다. “난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살아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껴요. 나에게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은 땅을 가꾸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며 어떤 사람도 억압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 일을 시작하기까지 난 농장을 본 적도 없고 채소를 키워본 적도 없었어요.”

그 자신의 신념과 피터 모린의 사상에 몰두하면서 패트는 꿈을 함께 나눌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사람들은 패트 자신이 도대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충고하기도 했지만, 그는 1978년 10월 20일 데이하우스의 회보 모퉁이에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가톨릭일꾼운동은 디트로이트에서 살아있고 숨쉬고 있으며 자라나고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근본적인 구성요소가 부족하다 : 그것은 농장이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꿈을 실현해보자! 다시 한번 모험해 보자! 농장을 시작해 보자!

왜 농장이 필요한가?

1. 농사는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는 방식이다. 농사는 다국적기업, 국가들과 최소한으로 관계를 가지고 그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삶의 형태이다. 또한 농사는 우리로 하여금 시대의 물질주의에 덜 매몰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농사는 자연적으로 공동생활과 나눔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하느님의 대지와 우리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해준다.

2. 농장은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건강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농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농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생산적인 일들, 협동적인 나눔, 하느님의 자연에 대한 존경심, 인내와 끈기의 덕을 길러준다. 또 누가 아는가, 우리앞에 이 모험을 통하여 어떤 보화가 나타날지 !

이렇게하여 기적이 하나 태어났다. 이건 하루밤에 만들어지고 손쉽게 나타난 기적이 아니라, 싸움속에서 만들어지는 기적이며, 인내와 기도 그리고 신앙의 기적이다.

농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패트는 초대장을 인쇄하였고 네 아이가 있는 한 가족과 열여덟살의 젊은 처녀가 응답을 보내왔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기 시작했고 피터 모린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땅을 찾고 나섰다. 패트와 그 가족이 주위에서 마련한 돈으로 1979년 10월,그들은 땅을 계약하였다. 그들은 숲속의 철부지들이었고 신참병들이었다.

패트는 회상한다. “또 하나의 기적은 진짜 농꾼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지요. 그는 석주일 후에 우리에게 농사짓는 법과, 귀리를 심기 위해 땅을 갈아엎는 것을 첫번째로 가르쳐 주었지요. 그는 자기농장에서 병아리들을 가져와 모이 주는것도 시범을 보였어요. 그는 자주 왔어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줬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공동체는 농사기술을 지닌 일시적인 봉사자들을 많이 받아들이는 축복을 받았다. 초기에 온 사람들 중에 죠우 크롤리가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눈매에다 아주 짙은 턱수염 때문에 얼굴의 어떤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 남자였다. 대학시절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평화운동 사이의 끈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의 소명은 자급자족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죠우는 웃는다. “난 가톨릭일꾼 농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이런 농장에 사는 것이 꿈이었어요. 이 농장에 대한 글을 보았을때 바로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영원히 살려고 왔지요.”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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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위하여

그러나 죠우는 이곳에 온 첫해 동안에 오늘날도 여전히 농장을 괴롭히고 있는 어려움, 즉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싸움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농장에 관한 유토피아적 꿈을 갖고 왔던 것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복음과 도로시 데이, 피터 모린의 가르침에 불붙어 있기 때문에 기도와 공부, 공동목표 그리고 힘든 노동의 결속으로 단시일내에 친밀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상한 승무원들을 기대했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실망과 외로움에 지쳐서 그는 7개월후 농장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아주 가버릴 수 없었다. 2년후 그는 꿈많고 아름다운 로즈라는 새색시를 데리고 나타났다. 로즈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지만, 농사짓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생기있는 얼굴에 긴 머리 그리고 주근깨 투성이의 로즈는 정말 “시골사람”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거실의 아주 편하고도 낡은 의자에 앉아 로즈는 농장에서 솎아낸 애기당근들의 껍질을 벗기며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로즈는 기억한다. “난 죠우때문에 여기에 왔어요. 그리고 가톨릭일꾼운동의 가치관들이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일하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지요.”

노동의 가치를 믿고 있지만 로즈는 농장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일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잡초를 뽑으러가면 어떤것이 잡초인지도 몰랐으니까. 로즈 주변의 사람들은 호밀과 귀리의 효과를 구분하거나 퇴비 등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았다. 그는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나 차츰 로즈는 관찰과 겅험을 통하여 자신감이 생겼고 마침내 독특한 역할을 발견하였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나의 탈렌트는 내가 좋은 공동체 건설가라는 점이지요. 난 공동체의 문제들을 기꺼이 풀어나가려는 사람들의 엄청난 갈망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난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도 잘 알아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난 불쾌한 상황들을 기꺼이 대면하려는 의욕이 죠우보다 훨씬 더 많지요.”

죠우는 긴 고독의 시간을 더 좋아하지만 로즈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속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아주 강도가 높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공동체가 적은 공간에 살고 있어 서로간에 정신적인 배려와 신체적인 부딪침 등으로 더욱 힘들때도 있다.

선물처럼 주어진 아이

월요일 아침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꾸미는 영적모임을 한다. 사람들은 이 모임에서 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영적인 상황을 이야기 한다. 또한 수요일 아침에는 성무일도와 성서를 읽는 시간을 가진다. 그들은 그 지역에 있는 성당에 나가며 로즈가 기타 반주를 맡고 있다.

화요일 밤은 공동체의 여러가지 일들을 의논하는 시간이다. 이때는 농장과 일꾼들에 관한 모든 일들이 자유롭게 토론된다. 토마토 벌레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 어느정도까지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해에는 얼마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올것인가 등등.

어떤 문제들은 쉽게 해결된다. 장기적인 문제들은 더 오랫동안 이 공동체에 머물기로 결단을 내린 사람들에 의해서 표결로 결정된다. 이러한 정책결정 과정은 농사짓기로 결정해 놓고 추수하기전에 떠나가 버리는, 짧게 머무는 사람들의 경우를 뼈아프게 경험한 후 만들어진 것이다.

죠우와 로즈가 공동체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은 7개월 된 빨간머리 데레사 로즈의 현존이다. 데레사는 공동체의 모든 식구들이 열망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 겨울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집에서 태어났다. 데레사는 공동체에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전혀 모르지만 식구들 모두의 아이가 되었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주며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들 모두를 서로 친하게 만들고 있다. 데레사가 태어나기전에 죠우는 집안 구석구석을 손질하여 세식구가 한데 지낼 방과 손님용 방을 더 늘리기도 하였다.

농장의 현인

충실하게 결단을 내리고 있는 일꾼 죠우, 공동체를 키워나가는 로즈 그리고 그들의 아이 데레사가 이 오보나우사윈 공동체의 심장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 집안의 현인(賢人)은 칠순의 하얀 백발과 수염을 지니고 있는 위엄스런 모습의 헤이잔 오드웨이다. 그는 초창기부터 가톨릭일꾼운동을 알았으며 피터 모린의 원탁에서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사람이다. 비록 공동체에 영구적으로 살고 있는 식구는 아니지만, 그는 수 차례 오랫동안 공동체에 머물렀고 지금은 끝까지 살것인가를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마리스타 수도원에 2년쯤 있었지요. 신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겟세마니에 있는 트라피스트에서 살기도 했었구요. 그렇지만 가톨릭일꾼운동이 나의 소명이었고 수도생활은 그걸 준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톨릭대학에서 도로시 데이의 강의를 들었어요. 노동자들에 대한 정의를 외치는 데이의 열망과 노동계의 불의를 고치려는 갈망은 정말 굉장했었지요.”

데이의 메시지에 의해 불이 붙여진 그는 피터 모린을 만났고, 피터는 그에게 “유럽의 수도공동체들처럼 배움이 있는 농장공동체”로 그를 초대하였다. 헤이잔은 말을 이어간다. “그들의 운동 전체가 기적이고 또 운동이 발전되어가는 것도 기적이지요. 그건 하느님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에 떠밀려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계속 그런삶을 살게 되지요.”

헤이잔은 펜실바니아주 이스튼의 첫번째 농장공동체와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티볼리 공동체를 포함하여 수 많은 가톨릭일꾼공동체와 농장들의 터줏대감이다. 가톨릭일꾼운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부인과의 오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망과 비젼은 결코 기가 꺽이지 않았다. 이제 결혼생활은 끝났고, 그는 남은 생애동안 땅을 가꾸고 그가 얻은 지혜를 나누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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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고 자유롭게

농장은 도로시와 피터의 지혜에 이끌리고 신앙과 끈기라는 연료의 힘으로 패트가 그의 글에서 표현했던 꿈을 향해 긴 여정을 달려왔다. 자발적 가난의 삶에 대한 선택은 수많은 물질의 노예상태로부터 공동체를 자유롭게 하였다. 공동체가 살고있는 집도 한편으론 편안하지만, 매우 단순하고 가구는 분명히 모양을 전혀 고려치않고 헌것들을 모다놓은 상태다. 옷도 아름다움보다는 편안한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갖고 그들은 풍요롭다. 원하는 것이 별로 없고 또 기본적인 것은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일은 헌 기구들로 대부분 처리되고 밀 추수는 말이 끄는 콤바인(수확기)으로 하고있다. 모든 것이 절약되고 모든 것이 쓰여지고 있다. 아무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인색함이 아니라 모든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엄청나게 깊어진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채소껍질을 닭모이로 보고, 여러가지 혼합물은 다른 사람들에겐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는 생명을 다시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며 존중된다.

공동체는 자급자족을 위하여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그렇게 실천한다. 밀을 갈아 가루로 직접 만들고 고기를 살 돈이 없으므로 채소를 즐겁게 먹는것도 그중 한가지이다. 또 그들은 거의 생물을 죽이지 않는다. 어떤때는 벌떼도 그냥 내버려 둔다.

“어느날 내가 밭에 있었는데 죠우가 아스파라거스 밭에서 뛰쳐나오더군요.” 패트가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냄비뚜껑을 두둘기며 밭으로 달려갔어요. 벌떼가 몰려왔었고, 죠우는 냄비뚜껑으로 소리를 내면 그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어요. 우린 꿀벌통을 가져와 벌들을 그안에 모두 넣을 수 있었지요.”

패트는 그들 공동체가 80% 가량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기름이나 약간의 향료, 소금, 쌀, 그리고 설탕을 사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포도주조차도 야생포도로 만들어 먹는다. 그의 다음 꿈은 풍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립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다른 공동체들, 즉 디트로이트시의 데이 하우스와 허튼 로트시의 한 작은 침례교파가 운영하는 스프 키친에 그들의 풍요를 나누고 있다.

또 일년내내 이러한 풍요를 잘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하여 로즈, 죠우, 헤이잔 그리고 다른 봉사자들은 채소와 과일들을 깡통에 저장하거나 냉동시키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배추, 호박등은 1월의 추운날들을 위해서 움에 저장된다.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재구성

도시생활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피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농장에 온다. 어떤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이 공동체의 환대로 기운을 차린다. 어떤이들은 와서 생기를 얻어가지만 다시 안 나타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농장일을 하기에는 너무도 지쳐서 이곳에 온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은 피정 중에 식구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기도 한다. 어떤 아름다운 여름에는 손님들이 13명이나 함께 머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끝까지 이곳에서 함께 살 가족공동체의 크기는 약 15명의 어른으로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15명은 결혼했든 안했든 확고한 결단을 갖고 살 것이다. “그 이상은 가족이라는 친밀감을 느낄 수 없게 되지요.” 하고 패트는 말한다.

문제가 꽤 어려웠을때 패트는 실망해서 약 일년동안 집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고 전국에 있는 가톨릭일꾼 공동체들을 찾아다녔다.

“난 어떻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지 전혀 몰랐어요.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나 않은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요.”

일년동안 기도하고 생각하며 방문을 끝내고나서 패트는 미시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난 한 달 동안 혼자 지냈어요.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지요. 내가 떠나있는동안 집은 더 형편없이 황폐해져 있었어요. 집안엔 쥐가 가득 있었구요. 할 일은 태산같은데 수중에 돈이라곤 11불밖에 없었고 이걸로 한 달을 버텨야 했지요. 어느날 본당에서 두 여자가 찾아와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이어서 성령기도하는 두 남자가 와서 우물의 펌프를 고쳐주었지요. 닭모이가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이웃에 사는 농부에게 옥수수와 귀리를 청했어요. 그는 이것뿐만 아니라 돈 200불을 빌려 주었지요.”

그때에 죠우와 로즈가 다시 돌아왔고 약간의 기금도 내놓았다. 패트는 약간의 희망을 보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공동체에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마련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농장은 엄격한 선생님

이 젊은 가족공동체는 땅에 집을 짓는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결단을 다시 하려고 한다. 죠우는 그들이 이웃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다. “이 공동체의 삶은 인근 사람들에게, 그들의 중산층 의식에 도전을 주고 있어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해 왔지요. 그들은 또다른 존재양식과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장은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많은 기술의 습득을 요구했고 모든 식구들이 더 능력을 개발시키기를 원했다. 죠우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때는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에서 사는 것이 괴로웠어요.” 거실 선반에는 피터 모린의 책과 함께 축산법, 식품저장법에 관한 책들이 꽃혀 있다. 또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긴 외로움>이 유기농법에 관한 책들과 나란히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공동체 식구 모두가 땅을 단순히 생산지로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존중하면서 회복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화학비료 때문에 심하게 손상당한 땅들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다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간다. 땅이라는 하느님의 귀한 선물에 대한 존경은 다음과 같이 쓰여진 공동체 글귀에 잘 표현되고 있다.

“오보나우사윈.... 그것은 북미에 살던 토착민의 말로서 생명이라는 뜻이다. 이상한 말이다. 아마도 인디안의 방식이 서구인의 사고방식에는 항상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이상한 말이다. 마치도 1854년 백인들이 ”그들의“ 땅을 사겠다고 말하자 시애틀 추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워싱톤에게 했을때 이상했던 것처럼. ‘어떻게 당신들은 하늘이나 땅의 따뜻함을 사거나 팔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이 우리들에겐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이나 물방울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땅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오보나우사윈은 우리에게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한 오보나우사윈의 리듬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인디안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땅은 생명의 중심이며, 생명은 땅으로부터 창조되었고, 생명은 땅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생명은 땅으로 돌아가서 삶의 과정을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우리는 배우고 싶다. 어떻게 소유하고 지배하며, 독점하고 단정짓는가가 아니라 우리 주위의 생명의 순환과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가를."

오보나우사윈 농장에 서서 바라본다. 보이는 축제를 음미한다. 낟알들이 사랑스럽게 키워지고,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 수확을 기다리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황금빛 곡식의 물결을 본다. 젖짜기를 기다리는 엄마소 흐란시스, 아직 초록색이지만 필요한 이들에게는 좋은 식량이 되어줄 토마토, 도시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스스럼없는 만남. 땅은 부자연스럽게 강요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풍요로움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해 보인다. 피터 모랭과 도로시 데이의 영이 느껴진다. 자신들이 추구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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