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정의에 목마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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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정의에 목마른 소리
  • 방진선
  • 승인 2019.08.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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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선종 20주년

경애하는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님 (Dom Hélder Pessoa Câmara,1909년 2월 7일-1999년 8월 27일) 선종 20주년 !

1973년 브라질 독재군부가 방해한 노벨평화상!
1975년 "지상의 평화상"(the Pacem in Terris Award)!
2015년 시복 시성 절차 개시!

● 엄혹한 박정희 정권의 눈총을 끌어당긴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정의에 목마른 소리>(1973년) !

교회 밖의 환호와 교회 안의 냉대!

"교회에서 이런 책을 만들지 않으면 누가 만들겠습니까?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신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강론 때마다 사회 정의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분도 출판사 고 임인덕 신부) !

책에 적은 유명한 말씀.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가난한지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When I give food to the hungry they call me a saint; when I ask why the poor are hungry they call me a communist.)

대주교의 영성을 이어받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 !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깃발을 훔쳐간 셈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깃발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중심에 가난이 있습니다.” (I can only say that the communists have stolen our flag. The flag of the poor is Christian. Poverty is at the centre of the Gospel.)
-이탈리아신문 <일 메사제로>와의 인터뷰, 2014년 6월29일

가난한 이들의 존재론

(<2019년 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17일) 교황 담화>2019년6월13일)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시편 9,19). 이 시편 말씀은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시의적절합니다. 신앙이 특히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불의와 고통과 불안한 삶 앞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다는 심오한 진리를, 이 말씀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노예화와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낙인

"오늘날에도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젊은이와 어린이를 예속하는 수많은 형태의 새로운 노예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 가난한 이들은 흔히 사회의 기생충으로 낙인찍혀, 그들의 가난조차 용서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낙인은 늘 따라다닙니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또는 그냥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위축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 투명인간이며 이방인

"간단히 말해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주 멸시받고 참기 힘든 성가신 존재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모든 면에서 투명 인간처럼 되어 버렸고, 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거나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집에서도 이방인이 되어 가고, 이웃들 사이에서도 소외되어 갑니다."

☞ 우리가 건설하는 ‘적대적 건축’물

"설상가상으로 이 극심한 가난의 굴레는 벗어날 방도가 없으니, 가난한 이들은 막막할 따름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남겨진 최후의 보루인 길거리에서마저 이들을 쫓아낼 목적으로, 사람들은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을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 직면한 하느님의 심판

"최소한의 생활필수품도 없고 때로는 멸시와 착취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들을 우리가 날마다 도시의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고 있는 이때에, 이러한 부의 축적은 더욱더 부조리하게 보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7). 수 세기가 흘러도 역사가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도 남겨 주지 않은 것마냥, 빈부의 상황은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시편 말씀은 그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해당됩니다. 우리의 현재는 하느님 심판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 폭발하는 가난의 화약통 !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주님의 날”(아모 5,18; 이사 2-5장; 요엘 1-3장 참조)에는 나라들 사이를 가르던 장벽들이 무너지고 다수의 연대가 소수의 교만을 대신할 것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소외는 오래 이어질 수 없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높아져 온 지구를 뒤덮을 것입니다. 프리모 마촐라리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불의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화약통입니다. 이 화약통에 불이 붙으면 세상은 폭발할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소명

“가장 작은 이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복음의 기쁨」, 195항)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부름받은 우선적 선택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교회의 신뢰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수많은 힘없는 형제자매들에게 참다운 희망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 교종의 권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만나는 가난한 모든 사람 안에서 그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을 찾으라고 권고합니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물질적 필요에 멈추지 말고, 그들 내면의 선함을 발견하고 그들의 배경과 표현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 참된 형제적 대화를 시작하라고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이념적 정치적 입장이 초래한 분열을 뒤로 하고 그 대신에 본질에 시선을 고정합시다. 곧, 가난한 이들은 넘쳐 나는 말이 아니라 사랑의 눈길과 활짝 내민 손을 호소하고 있다는 데에 시선을 고정합시다. “가난한 이가 겪는 최악의 차별은 영적 관심의 부족”(「복음의 기쁨」, 200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업적과 계획을 과시하고자 인용하는 통계 수치가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은 만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외로운 사람들이며,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가난한 이들은 모두 친절한 말 한 마디를 기대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나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참된 복음 선포자

"주 예수님의 제자들이 참된 복음 선포자가 되고자 한다면, 구체적인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 그리고 가난한 이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기를 염원하는 모든 이에게 당부합니다. 이번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이하여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하여, 어느 누구도 친교와 연대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지 않게 도움을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미래를 선포하는 예언자의 다음 말씀을 언제나 소중히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말라 3,20).
- 바티칸에서 2019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축일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님!

저희가 대주교님의 "침묵의 세계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이 시대의 표징을 성찰하고 복음을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

● 주여, ...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교회가 돈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실히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더라면!

다른 이들을 회개시키고자 하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보다 깊은 내적 회개의 모범을 보여 주었더라면!

우리가 우정과 사랑을 통해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는 이상을,
우리의 담화나 비판, 또는 항의에 있어서
항상 추구했더라면!

사태는 좀 더 달라졌을 것입니다. !

● 주여,
당신 영을 보내 주소서.
성령만이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이기주의를 깨뜨려 버릴실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 상태에서 묶어 두는 불공평한 구조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도우시어,
참으로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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