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리주 캔사스시티] 성가정 공동체 "이곳은 교회보다 더 영적인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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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리주 캔사스시티] 성가정 공동체 "이곳은 교회보다 더 영적인 곳이지요"
  • 참사람되어
  • 승인 2019.08.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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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낀 여름날 아침이다. 해는 목탄같은 짙은 구름의 늪 저편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드디어 회색의 이슬비가 이겨서 성가정 공동체를 이루는 두 집의 현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알리아, 페투니아, 담배꽃의 하늘을 향한 얼굴들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두 채의 집은 약간 언덕진 곳에 기분좋게 어울리며, 다른 모든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두 할머니들처럼 서로 붙어 있다. 31번가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이 공동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정집들은 모두 재개발 때문에 철거되었다.

성가정은 넓고 튼튼한 집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집이고 여성들과 아이들에게는 있을 곳도 제공한다. 3층의 돌집에다 떡갈나무로 된 마루는 꽤 아름답게 보인다.

성가정 공동체의 두 집 현관문이 거의 연달아 열린다. 그리고 혼자 혹은 둘씩, 남자들과 여자들이 섞여서 모두 여섯명의 일꾼과 봉사자들이 나온다. 지금은 아침 6시 45분이고 그들은 성 야고보 성당에 미사참례 하러 나서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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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성당에 가고

말리스 그레팅거가 차 열쇠를 갖고 있다. 낡은 차라서 비속에 움직이라는 초대를 달가와하지 않는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앉아있는 사람들은 조용해진다. 차의 앞창에 흘러내리는 비를 와이퍼가 장단을 맞추며 휙휙 씻어내리고 있다.

그들은 성당에서 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 루이스 로드만 수사, 토마스 알게어, 말리스, 잰 세블라 수녀, 데레사 혼-보스탤 수녀 그리고 대니스 코데이 등 모두 여섯이다. 그들은 성체를 모시려고 한다. 성찬례는 매일 찾아오는 사람들속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실재 속에서 살아있다. 그리고 매일 빵을 나누면서도 살고 있다.

아침식사는 대개 공동체 식구들끼리 가볍게 한다. 7시 45분이면 미사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온다. 커피 주전자가 빛깔좋은 커피 거품을 내고 있고,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부엌에 모인다. 일꾼들은 반나절이나 3/4 정도의 시간을 밖에 나가 일하고 있다. 루이스 수사는 솔제니친 같은 얼굴과 머리를 지니고 있다. 햇볕에 그슬리고 튼튼한 두팔과 다리는 농부같다. 아침마다 그는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지만 마음은 조용한 예언자 같다. 그는 곧 씨튼센타로 떠날 것이다. 이웃에 있는 이 공간에서 그는 노인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교육은 목적이고 전략이지요.” 아침을 들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발전을 향한 움직임, 시계를 읽고 편지를 읽는 것, 또 읽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억울하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 발전입니다.” 그는 안경넘어로 수저통을 보면서 말했다. “자신이 예순다섯쯤 된다고 생각하는 한 할머니가 이제 3학년 정도까지 배웠지요. 이제는 간단한 셈을 할 수 있어요. 이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데서 출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이지요.”

글을 모르는 것은 이 공동체가 이겨나가야 할 많은 문제중의 하나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 하나는 집없음이다. “눈에 보이는 집없는 사람들은 이곳에 한 500명쯤 되겠지요. 그러나 임시로 거처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 피난처는 시에서 주거나 친구들 혹은 친척들이 주지요. 시내를 보기좋게 만들려는 것이 시 정부쪽의 개발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싼 집세로 얻을 수 있는 집도 이젠 거의 사라졌어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공동체

그리고 가난이 또 있다. 루이스 수사는 말을 이어간다. “난 전적으로 가난해지는 경험과 고통 그리고 필요의 이야기에 공감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도 가난한 생활 자체를 선택하지는 않지요. 난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적은 것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나에게 있어 전적인 가난이란 공동체를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단계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집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즉 일꾼들의 공동체가 있고 그 다음에는 일꾼들과 봉사자들의 좀 더 열린 공동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꾼과 봉사자 그리고 손님들로 이루어지는 더 넓은 공동체가 있지요. 이 세가지 공동체들은 모두 중요하고 줄 것이 너무 많지요.”

루이스는 천천히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내 생활에서 내가 가난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시간과 공간의 부족입니다. 아! 잠시만이라도 조용한 순간과, 전화나 대문 심부름이 없는 아주 조용한 장소 말입니다. 5년이나 여기서 살았는데 아직도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지요. 난 한참동안 너무 빨리 가길 잘 합니다. 그러면 필요가 점점 과장되지요. 잰은 나에게 천천히 하라고 하지만, 난 듣는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요. 난 매우 효율적인 사람이지만, 손님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싶어요. 그것도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말이죠.“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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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

한때는 정치적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반전평화 항의 시위때에는 감옥에도 갔었지만, 지금 그는 집안일에 더 열중해 있다. 최근에 과테말라에서 3주일을 보내고 온 그는 바로 이런 집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결론 짓는다.

”과테말라의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똑같은 봉사직분 때문에 그곳에서 총에 맞고 있지요.“

데레사 수녀는 ”무기가 아니라 농장을“이란 표어가 쓰인 셔츠를 자랑하면서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다. 수녀는 곧 시내에 있는 소화데레사 본당에 가서 사회봉사일을 할 것이다(수녀는 그곳에 취직해 있다). 데레사 수녀는 17살에 수녀원에 입회했고 센트 루이스에서 수년간 가르쳤다. 1982년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됐을때 그는 이 성가정 공동체에서 여름에 일손을 청하는 광고를 보고 왔었다. 지금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지만, 수녀는 이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있다.

데레사 수녀는 아주 강한 여성이다. 매일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노동하고 수많은 분노와 노여움 그리고 내적인 분노의 불길을 질식시키는 경제제도를 비판한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 많은 가족과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살아요. 난 일터에서나 여기에서나 그들을 볼 수 있어요. 기저귀 현상만 하나 보더라도 분명하지요. 5년 전에 우리는 일회용 기저귀를 나누어 주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루에 한 건씩 터지고 있어요. 기저귀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애가 있는데 집이 없다면 어디가서 기저귀를 빨겠어요?” 불똥이 튄다. “지난달에 우리는 2명부터 4명의 아이가 있는 세 어머니를 받아들였어요. 그들은 아무데도 갈곳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가엾어요. 여기저기 끌려다녀야 하다니! 어떻게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대하겠어요?” 데레사는 머리를 앞뒤로 강하게 흔들었다.

“이런 곳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요. 모든 기부금들은 기적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해요. 우린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관대할 수 있지요. 기적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항상 갖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희한한 일이지요!”

기적_토요일의 식량 줍기

데레사의 목소리는 점점 흥분해 갔다. 그의 들뜸이 부엌을 밝게 하였고 여기에 햇빛이 가세했다. “기적은 우리가 가는곳 어디에나 따라옵니다. 우리는 집세를 도와주는 야고보 공동체에 매달 1천 불씩 줄 수 있었어요. 이곳에서 우리는 친절과 음식제공에만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점이 우리의 핵심이지요. 우리는 한달에 식비를 500불씩 쓰고 또 이밖에도 가게와 빵집, 채소가게에서 엄청난 선물을 받습니다. 토요일이면 우리는 내버리는 식량을 걷으러 나갑니다.”

이 일은 시가 운영하는 옥외시장에서 벌어진다. 오후에 도착하면 농민들이 파장할 즈음이다. 봉사자들과 일꾼들은 쓸만한 식량을 찾기 시작한다. 조금 흠이 있거나 벌레먹은 것들은 맛이나 영양에는 별 영향이 없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약간 깨진 반타스의 수박과 조심스럽게 썩을 것을 골라내야 했던 몇바구니의 복숭아, 삼사십개의 훌륭한 오이들, 루이스 수사의 친구인 야채장사가 기부한 50파운드의 맛있는 당근, 많은 참외 그리고 토마토등을 얻을 수 있었다. 작은 기적은 마지막 수색작업에서 일어났다.

쓰레기 더미 맨 꼭대기에 20타스의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장미가 크레용 상자속에 담겨 있었다. 한 타스씩 팔기위해 포장했는데, 겉의 꽃잎끝이 얼었다 녹아서 약간 색깔이 변한것 이외에는 아주 훌륭했다. 그날 저녁, 장미로 식탁을 황홀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데레사의 싱긋 웃음이 번쩍였다. “이 토요일의 식량줍기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과 계속 만나도록 해줍니다. 또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싱싱한 채소를 식탁에 올려 놓을 수 있지요. 그리고 봉사자들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토요일에 이 채소들을 다듬고 껍질을 베끼고 골라내고 줍기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옵니다.” 데레사는 웃으며 설겆이를 끝내고 일하러 나간다.

 

성가정 공동체의 탄생

성가정 공동체는 1974년에 탄생했다. 그때의 목적은 세금과 징병거부에 관한 교육과 의식환기를 위한 것이었다. 베트남 사태는 아직도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때만해도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기가 드물었다.

1980년 도망쳐오는 쿠바인들을 위해서 이 집은 임시 피난처가 되었다. 그리고 1981년에 이르러서야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20명이 와서 먹었다.

이제는 하루종일 일이 너무 많으므로 일꾼들은 누군가 집에 남아 사람들을 돌보기를 바란다. 말리스는 국민학교 선생인데 이번 여름동안에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거의 아침 9시가 되었다. 벨이 울리고 첫번째 요구가 시작된다. 31번가의 거리에 사는 어떤 사람이 공동체에 새 테니스용 신발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오늘 이 신발들을 모두 처리하신다구요? 우린 8문이 필요한데요” 그 사람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가장 큰 크기가 7문 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잠시동안만 머뭇거렸다. “하여튼 난 가져가겠습니다. 발끝을 조금만 잘라버리죠!” 말리스와 임시 봉사자인 토마스는 아침내내 신발가게를 열고 있다.

아름다운 순간이 벌어진다. 토마스는 6살쯤된 흑인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아이의 발을 부드럽게 씻어준다. 그리고 정성스레 말려주고 발에 맞을 새 신발을 골라준다.

전화가 아침내내 불이 나게 울린다. 캐리 수녀와 임시봉사자인 네티가 바쁘게 봉사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도망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없으세요? 난 남자친구와 살고 있었는데 자꾸 날 때려요. 부모님이 날 다시 받아들이실 꺼예요. 버스값 좀 도와주세요. 난 다른 희망이 없어요.”

“방금 편지를 받았는데 내 영세보호금이 중단된답니다.”

”갈곳이 필요한 한 여자기 있는데 그곳에 자리가 있을까요?“

그녀는 연약한 꽃이 아니다

점심때쯤 한 방문객이 방금 농장에서 캔 것 같이 싱싱한 부로콜리와 오이, 배추를 잔뜩 싣고 왔다. 너무 많아서 저녁때까지 먹고 또 남으면 냉동실에 저장할 것이었다.

점심은 잠깐동안만이라도 예기치 않은 신선하고도 맛있는 후식을 가져다 주었다. 말리스가 냉장고 한 구석에 숨어있는 사라드를 발견했던 것이다. 사라드는 서늘하고도 조용한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사년 전 난 봉사자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한 달을 이곳에서 보냈지요. 그때 난 아이오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개인적으로 무언가 찾고 있었습니다. 한 달 여기있는 동안 내 삶의 어떤 문제들이 드러났지요.“

말리스는 전형적인 아이오와의 농촌여성이다. 연약한 꽃이 아니다. 그는 크고 강하고 힘이 있는 여성이다. 그는 요구되는 많은 일들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 말리스는 1984년에 이곳에서 살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여기 있는 일꾼중에 나만 수도원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난 이곳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적응하고 다른 어른들과 친하게 어울리며 살 수 있는가를 깨닫는 데에는 한참 시간이 걸렸지요.“ 즐겁게 웃으며 말리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정말 모두가 성장해 온 시간이었어요.“

”우린 일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함께 기도합니다. 화요일엔 이곳에서 미사가 있지요. 우린 약 12명의 신부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는데 그들이 번갈아 오지요. 우린 어떤 신부들은 다시 초대하지 않아요.“ 말리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눈썹은 아치 모양을 그린다. ”어떤 신부가 편안치 않게 느껴지는지 우리는 말 할 수 있지요. 어떤 땐 그들도 우리의 검소함을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또 다른 신부들은 가난이나 이 주변환경을 두려워하기도 하구요.“

말리스는 빈 접시를 밀어놓고 뒤로 기대 앉는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설사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그들이 모른다해도 손님들은 점차적으로 알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공기가, 분위기가 달라요. 그리고 뭔가 잃어 버린것 같아요.“

현관 벨이 정적을 깨뜨린다. 말리스가 시들하고 기운이 없는 한 남자를 들어오게 한다. 그는 예의가 바르고 부드러운 남쪽 사투리를 쓰고 있다. 그는 정부가 발행한 무료식권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또 전화도 쓰겠다고 한다.

말리스는 낄낄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그 손님과 농담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 손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 왔을때 좀 근심스러웠지요.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섭진 않았습니다. 아이오와가 편안하게 해주었어요. 이곳은 아이오와에서 온 시골처녀 때문에 아주 새로운 집이 되었군요.“

낡은 갈색 픽업 트럭이 뒷마당에 도착했다. 12시 30분이고 루이스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것이다. 오늘은 자선단체에 싼값의 식품과 가정용품을 공급하는 도매가게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오는 날이다. 루이스는 신속하게 야채깡통, 빨래세제, 마른콩(강남콩, 리마콩등)등의 상자들을 받아 신속하게 차곡차곡 쌓는다. 그는 집에서 당장 쓸 것을 분리하고, 후일에 쓸 것들은 지하실에 넣는 살림꾼이다.

난 이곳이 미친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2시경이면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들어가고 토마스는 페인트와 롤러 그리고 붓을 들고 3층 침실로 가서 칠하기 시작한다. 토마스는 미조리의 농민으로 중부지방의 느린 말씨가 입속에서 구르는 소리로, 버터처럼 부드럽게 나온다. 그는 크고 훌쭉하며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 5년간 공군에 근무했고 1년쯤 수도원에 살다가 여름에 왔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의 눈을 뜨게 했다. 봉사와 학교공부의 엄격한 통제는 이집에서 자주 일어나는 혼동 때문에 무너지기 일쑤다.

”처음에 난 이곳이 미친 집이라고 생각했지요.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궁금했어요. 이제 나는 어떤 흐름을 이곳에서 봅니다.“ 토마스는 페인트통의 뚜껑을 열고 무릎을 꿇고서 졸린 색깔의 크림같은 페인트를 휘젓는다. ”이건 어느 한 여름의 체험 이상입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을 이 다음에 이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요. 아마도 내 남은 생애 내내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는 페인트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롤러팬에 묻힌다. ”이 체험은 나에게 예수님을 이야기 해줍니다 또한 단지 음식과 음료수뿐만 아니라 인내와 끈기에 대해서 말해주지요. 사람들은 당신을 귀찮게 하고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지요. 예수님이 계속할 힘을 줍니다. 난 일꾼들속에서 예수님을, 그들의 끈기 속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손님들 속에서도 봅니다. 한 취한 술꾼이 어느날 쓰러져서 머리를 모퉁이에 부딪쳤어요. 그러자 길을 가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하여 재빨리 모여들었지요. 예, 하느님은 그들속에서도 일하십니다.“

페인트칠은 매우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되었다. 한참을 칠하고 나서 토마스는 뒤로 물러나 살펴본다.

”이곳에 들어오는 음식을 보면 놀랍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생산을 보여주지요. 빵집은 너무나 많이 빵을 굽고 너무 비싸게 받습니다. 그리고 팔다 남으면 버리는 것이 그렇게 많아도 여전히 돈을 법니다.“

”사람들은 음식뿐 아니라 이곳에서 얻는 것을 즐깁니다. 점심식사가 끝난후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단지 음식 때문에만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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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내 삶에 균형을 만들어 줍니다

늦은 오후이다.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다. 매리 빈세트와 페기 피터슨이 온다. 그들은 수 년동안 이곳에 오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봉사자 명단에 자주 나타난다. 그들은 오자마자 복숭아를 긴급히 수술하는 일에 바쁘게 매달린다.

”복숭아는 익으면 이미 썩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자, 이 끈적끈적한 상추는 더 엉망이야.”

“그전에 썩은 무를 다듬었던 것 생각나? 그때가 제일 고약했지.”

매리는 떠들썩해진다. “나는 내가 얻은 것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하여 이곳에 계속 오고 있어요. 내 집은 적당하게 따뜻하고 서늘하지요. 남편은 훌륭한 사람이고 애들도 약물중독에 걸리지 않았구요. 난 이곳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주차장에 비싼 차를 세워놓고 걱정하지 않지요.”

페기는 복숭아의 흠들을 잘라낸다. “이곳은 내 삶에 균형을 만들어 줍니다. 내가 무얼 필요로 하는지 또 내 욕심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지요. 난 이곳에서 진정한 친지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보세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멋진 이웃들도 다 똑같은 내적요구를 지니고 있지만, 다만 돈으로 그런 요구들을 해결할려고 하지요.”

매리는 물 묻은 손목으로 코를 긁으려고 하면서 말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너무나 기꺼이 그들의 세계를 우리와 나누려고 해요. 우리는 그들처럼 그렇게 기꺼이 그것을 받으려고 하지 못합니다.”

“이곳은 참으로 솔직한 곳이예요.”

“겉치레가 없어요.”

“어떤 봉사자들은 ’부잣집 마나님‘처럼 하고 나타나지만 그들은 머무르지 않지요.”

“이곳은 교회보다 더 영적인 곳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녁식탁을 준비하며

4시 30분이 되어 나머지 봉사자들이 현관앞에 다 모인다. 한 젊은 여성이 여섯명의 10대 소녀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새로 오는 봉사자들은 긴장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킥킥 거린다. 또 두려운 생각이 드는지 손을 가리고 속삭이기도 한다.

말리스는 초보자들에게 집안구조와 부엌에 대하여 지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설명을 한다. 그는 매우 조직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말한다. 그룹은 나뉘이고, 일할 장소가 정해진다. 껍질 벗기는 칼이 주어지고, 닭고기가 나오고, 채소가 다시 싱싱해지고, 일꾼들이 소개되며 시간을 재조정하는 등 바빠진다. 일을 확실히 맡아 편안해진 소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일을 시작한다.

이런 형태의 봉사일은 거칠은 측면도 있다. 주변의 이웃은 바야흐로 끓기 시작하는 스프와 같다. 겉은 조용하지만 그 밑에는 끓기를 기다리며 온갖 재료들이 서로 부딪치고 섞이는 것처럼 말이다. 부엌도 바로 이와같은 분위기이다. 더운 밥이나 혹은 돈이 떨어졌을 때이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밀어제치고 화를 돋구면 말릴 사이도 없이 폭력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저녁식탁은 5시 15분에 차려지고 옥수수가 껍질을 벗기운채, 황금 빛의 한더미가 냄비속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감자는 이미 시설용의 거대한 냄비 속에서 끓고 있다. 식사준비를 위한 이 모든 배려는 이 집의 표어를 잘 표현한다. “우리는 우리가 먹을 것만을 대접할 뿐이다.”

오후는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손님들이 저녁 먹기 전에 이야기하며 잠깐 줄을 서 있는 막간에 얼룩진 태양이 옆마당을 비추고 있다. 일 나갔던 식구들이 돌아온다. 문제있는 청소년들과 일하는 사회사업가 제인 히빈에 이어 교구 가톨릭신문에서 일하는 데니스 코데이가 나타난다. 그들이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속에서 큰 소리가 나고 이어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싸움이 벌어졌다. 제인과 데니스가 현관문으로 달려간다. 싸움은 이 집 손님들이 아니라 건너편 주차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신나간 죠가 아스팔트위에서 의식을 잃고 머리출혈이 심한채 나동그라져 있다. 그를 공격한 친구는 그보다 약간 덜 취해서 한 손에는 술병을 또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죠를 때리고 있다.

제인과 데니스는 재빨리 피해를 수습한다. 지혈대가 필요하다. 데니스가 전화하러 간다. 젖은 수건들이 도착된다. 죠의 눈이 껌벅인다. 그를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앉게 하고 제인은 엉킨 머리칼아래 흉하게 찢긴 자리를 누른다. 다른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러 어슬렁 거리며 가지만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그 광경을 본다. 죠는 잘 보살펴주는 손안에 있다. 그들 모두는 그 전에도 그런 광경을 본적이 있다.

죠와 제인 그리고 데니스는 병원으로 간다. 저녁식당이 열리자 사람들은 조용해진다. 상사인 잰 수녀가 문가에 자리를 잡는다. 6시, 저녁식사 시간이다.

저녁밥

루이스 수사가 누군가 기도하기를 청한다. 뒤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응답한다. 손님들은 일어서서 줄을 서고 그들의 접시가 채워지는 부엌에선 한바탕 바람이 인다.

많은 손님들은 대부분 정기적으로 오고 이름도 서로 알고 있다. 우정도 싹튼다. 또 어떤이들에게 이곳의 식사는 그저 필수품일 따름이다. 그들은 먹고는 이내 가버린다.

델마 제임스가 오늘밤 여기 있다. 그는 표현이 분명하고 조용한 삶으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었는데 전쟁동안 제도가로 일했다. 그는 오늘밤 기분이 괜찮은데 가끔은 이탈하기도 한다.

톰이 왔다. 그는 성심껏 먹고, 맛있는 닭요리라며 요리한 사람을 칭찬한다. 식사후 그는 방을 청소한다.

봉사하러 온 소녀들도 식사하기 위해 줄을 선다. 그들은 이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져서 식사도 잘한다. 손님들과 어울려 농담도 한다. 한 손님이 데이트를 신청하자 소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방 한가운데 앉아있는 나이든 한 할머니는 치아가 하나도 없다. 그는 모든 사람한테 자신의 장애를 낱낱이 알린다. 가까운 곳에 흑인 노인네가 짚으로 된 맥고모자를 쓰고 앉아 예배를 드리듯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자기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주재하며 대화를 이끌어 간다. 충고도 하고 약간은 제멋대로 하는 한 가정의 부드럽고도 엄격한 아버지처럼 행동한다.

7시 30분쯤 되면 220명이 저녁식사를 끝낸다. 세개의 식당방 중 2개가 비워지고 청소가 끝난다. 해가 지려고 하면 저녁먹은 손님들은 사라져 버린다. 몇 사람이 꾸물거리며 남아있는데, 빨갛고 하얀 치마바지를 입은 여인이 한 시간 남짓 접시를 씻고 싱크대를 치우고 있다. 루이스는 버스값을 넘겨주고, 머리를 서로 끄잡아 당기며 싸우고 있는 두 여인의 싸움을 뜯어 말린다.

당신이 진짜인가를 알아보는 그들의 능력

잰 수녀는 문에 기대 서 있다. 눈 가장자리에 피곤한 기색이 보이고 가날픈 몸매도 그렇게 보인다. 그는 법률상담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식당을 관리한다. 5피트의 키로 일꾼가운데 가장 작은 체구인 수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힘으로 가득차 있다. 몸집이 큰 사람들도 또 술취한 손님들도 수녀에게는 항복한다.

“이곳의 매력은 손님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삶, 또 당신이 진짜인가를 알아보는 그들의 능력 등이 이곳의 특징이지요.

나라고 모든 것을 다 일관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나에게 도전하거나 나를 비난할 때 난 그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가를 생각해봐야 되지요. 어떤 사람이 화가 나서 정신나간 상태로 왔었습니다. 그는 욕지거리를 해댔지요. 그래서 접시를 들고 현관에 나가 먹으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나에게 고함을 치더군요. "내가 동성연애자라서 내쫓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때 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내가 차별을 하고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일까? 내가 평상시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집과 이곳의 사람들은 참말로 나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지요. 이곳에서의 체험은 끊임없이 하느님 선물인 기적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어요. 우리는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첫번 부활절 때에 우리는 저녁식사에 40명쯤 올 것이라 생각했지요. 한 젊은 청년이 저녁식사 20분전에 채소를 갖고 나타났어요. 그는 당근을 잔뜩 가지고 왔는데 모두에게 충분히 돌아갔어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 때 밖에도 외칠 필요도 없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가장 최고의 기적은 분노로 가득찬 손님들이 자신들과 화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우리 식당에는 평화가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매우 폭력적인 사회에서 살아야 하지만, 이곳에 올 수 있고 또 평화를 맛 볼 수 있지요.“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상태에서 솟아나오는 전적인 신앙

잰은 검은 안경테 너머로 생각에 잠겨 응시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들이 어떻게 이 가난과 안전장치가 없는 생활을 살아남을 수 있으며 그것도 아주 훌륭한 유머를 지니고 살 수 있는지 놀라움만 더 늘어납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지요.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상태에서 솟아나오는 전적인 신앙덕분이라구요.“

식당문을 잠그려고 하는 아주 늦은 밤에 이상한 방랑객들 한 부대가 도착한다. 그건 아이들을 끌고 온 마리였다. 마리의 눈은 멍청하게 보인다. 너무 지쳐 있다. 삶은 그가 다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는 6주일 된 부리타니를 말리스의 걱정스런 품에 던지고 18개월된 마태오는 제인에게 떠맡긴다. 그들은 자주 온다. 마리가 짐을 떠맡길 수 있는 이 집은 오아시스다.

마태오에게 제인이 곡예를 하면서 무얼 먹이고 있다. 마태오는 킬킬거린다. 그는 일꾼들에게 귀염둥이다. 그들의 품속에서 사랑을 실컷 받는다.

부리타니의 옷은 다 젖었다. 하루종일 옷 한번 갈아 입었을까?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잠자리에 재운다. 몸에는 먹을 것이 정신에는 사랑이 채워진다.

공동체는 사랑으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은 식사를 끝낸다. 그들에게 식사란 모든 것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난 식사 때에 가장 하느님을 가까이 느낍니다.“ 데니스가 말한다.

”우린 공동체로서 돌아가며 하루저녁씩 쉬자고 결정했지만 아무도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은 다 식사 때에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식사를 놓치면 모든 것을 다 놓치는 셈이 되니까요. 이 식사 때에 우리는 빵을 쪼개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지요.“

네티가 듣고 있다가 말한다. ”내가 여기 왔을때 난 무얼 기대해야 할지조차 몰랐어요. 나는 너무나 겁이 났었습니다. 난 대학교 2년 다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여기에서 배웠어요. 손님들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저녁 식사시간은 얼마나 많은 것이 다 모여 있는지요. 그때에 당신은 모든 것을 다 보게 되지요. 가끔 난 질문합니다. 왜 우리는 더 할 수 없지? 그저 사람들의 버릇을 되풀이 하게 해서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고 있는것이 아닐까? 허지만 매일 이른 저녁 이곳에 오면, 난 우리들이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말리스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표현하는 가장 비호의적인 말은 ‘스프 키친(부엌의 스프?)’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손님들은 우리집에 초대되고 우리는 그냥 우리로서 그들을 맞아들입니다. 그들은 그냥 그들로서 오고, 그리고 우리는 나누지요.“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이제는 공동체의 밤 기도 시간이다. 공동체는 성서와 말리스의 가족이 보내준 옥수수를 앞에 놓고 모인다. 조용한 분위기에 이사야의 말씀이 들려 온다.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이사야 58,6-8)

새로운 가족

불은 희미해지고 식당의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이 빛난다. 다른 가족들처럼 성가정 공동체도 휴일이면 사진을 찍어 추억의 장면들을 기억한다. 추수감사절에 여러가지 의상으로 치장하고 카메라를 향하여 열심히 포즈를 잡은 얼굴들이 후래쉬의 섬광에 포착된다.

어둠속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저봐, 톰이 저 사진에서 아주 멋있게 보이잖아!”

“저 종이칠면조 옆에 있는 사람이 죠야. 그 사람 죽은지 벌써 일년이 되었네.”

프랭크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그는 시장 손수레를 붙잡고 아주 자랑스럽게 서 있다. 프랭크는 그의 거칠고 공격적인 태도 때문에 집안을 항상 즐겁게 해주지는 않았다. 또 현관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식사를 한적도 많았다. 이제 사람들은 프랭크의 좋지 않은 건강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가 살아남을지 걱정하고 있다.

이런 성찰의 시간에 집안을 배회하는 죠안 캐인 수녀의 모습이 잡힌다. 죠안은 1986년 7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는 이 공동체의 구석구석에 살아있고 식구들의 기쁨, 슬픔, 고통을 매일 함께 나눈다. 1981년 이 집에 오면서 죠안은 그의 깊은 즐거움과 내적인 자유, 그리고 유머를 사람들과 끊임없이 나누었다.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그는 손님들을 위한 봉사를 살았다.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가에 있는 누구에게나 쉽게 자신을 열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했다. 죠안 수녀의 배려는 우울하거나 까다롭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죠안에게 더 많이 일어나곤 했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 그는 항상 웃음을 나누었다.

죠안은 여름의 열기를 싫어하고 이른 아침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 에너지로 뭉친 사람에겐 아무것도 장애가 될 수 없는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가 죠안나 수녀의 좌우명이었다. 그가 죽었을때, 공동체가 생일선물로 주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글씨가 너무 아름답게 새겨진 셔츠도 함께 묻혔다.

기쁨의 죠안나에 관한 전설은 아직도 이 집안에서 숨쉬고 있다. 그의 장례식때 프랭크는 이렇게 말함으로서 이 아름다운 전설을 증언하였다. “내가 기어야 했다면 이곳에 있었을 텐데.“

이제 정막이 집을 둘러싼다. 길가의 불빛들이 밤의 별처럼 수를 놓고 있다. 도시의 소음들이 가라앉고 가끔씩 찢어질듯한 사이렌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하루 동안에 흩어져 있던 순간들이 함께 짜여져서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전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루이스가 도로시 데이의 말을 읽고 있다 :

가톨릭일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이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또 다른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공동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혼자 있지 않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사랑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또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빵을 나누면서 하느님을 안다.
그리고 빵을 쪼개면서 서로를 알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천국은 잔치이고 삶도 또한 잔치이다.
비록 빵껍질만 있더라도 동료애가 있는 잔치이다.
우리 모두는 긴 외로움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만이 유일한 해결책
이며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온다는 것을 배웠다.
(도로시 데이, <긴 외로움>에서)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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