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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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
  • 김기호
  • 승인 2019.08.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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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2019-08-16. 종이에 연필
김기호. 2019-08-16. 종이에 연필

거지

-투르게네프

거리를 걷다가...... 초라한 늙은 거지가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불쌍한 사람을 이처럼 처참하게 갉아먹는구나!
그가 벌겋게 부어오른 더러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않는 소리로 적선을 청한다.
나는 부랴부랴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는 모조리 뒤져 보았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주며 속삭였다.
''형제님, 저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ㅡ 1878년 2월

 

김기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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