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에도 항문은 있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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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에도 항문은 있기 마련이지"
  • 윤영석 부제
  • 승인 2016.06.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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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앞에서, 성인의 눈으로 보면
ⓒ한상봉

[윤영석 칼럼]

미사는 불편하다. 특히 영성체 때 이 불편함은 심해진다. 꽤 경건한 마음으로 성체와 성혈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옆을 보니 평소 탐탁치 않게 생각한, 혹은 나에게 살갑게 굴지 않은 아무개라니 꺼림칙하다. 앞서 나눈 ‘평화의 인사’가 그저 인사 치레에 머무르면 좋으련만, 이 아무개와 빵을 나눠먹고 잔까지 나눠야 하다니! 행여나 속으로 '교회 밖이었으면 상종도 안했을텐데…'란 생각이 스쳐갈지도 모른다. 

동료 사제가 자기를 괴롭히는 아무개를 두고 이런 농담을 했다, “Even the Body of Christ has an a--hole.” 번역하자면 “그리스도의 몸에도 항문은 있기 마련이지" 정도겠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인 우리는 구린(?), 불편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또 우리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된다. 

미사는 이렇게 거룩하고 거북한 시공간을 연다.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제대 앞에 모인 게 아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주님의 밥상에서 된장찌개를 각자의 숟가락으로 떠먹는 형상이랄까? 파스카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끝나지 않는다. 온갖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한 빵과 포도주를 나누게 하는 힘의 근원이 아닐까? 

제대에서 마주하는 이 거룩한 불편함을 일상으로 끄집어내 본다. 원목으로 일하는 나는 매일 평균 20명의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맨해튼에서 백인 상류층이 주로 모여사는 지역에 병원이 있어서 그런지 약 80%가 백인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종교나 영성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앙적으로 좀 더 열려 있다면 다가서기가 그나마 수월할 텐데 쉽지 않다. 종교적 무관심보다 더 힘든 구석이 있다. 바로 인종의 차별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하루에 몇 번씩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 내 종교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내 피부색은 동양인의 것인데 동양의 어떤 나라 출신인지 알고 싶다는 질문이다.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게 흔하다. 한국인보단 중국인이 인구가 높기 때문에 추측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확률이 높은 걸로 찍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하소연을 하자면 미국은 이민자의 나란데 백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도 하지 않았던 주인 행세를 한다. 이들에게 내 피부는 불편함, 어색함이다. 또한 내게도 이들의 하얀 피부는 불편하다. 

언젠가 함께 대화하던 지인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 산 지 20년이 되어가고 원목 생활을 한 지 4년 정도 되는데 아직도 백인 환자에겐 다가가기가 힘들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인(聖人)들은 상대방의 겉모습을 넘어 모든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성인이 아니니까 해당사항이 없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 성인의 눈으로 백인을, 우리 모두를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섰다. 다행히 생각이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위로 이끌게 하는 곳은 바로 불편한 아무개와 함께 성체를 모시기 위해 무릎 꿇은 제대 앞이었다. 모두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형상을 볼 수 있던 성인의 눈은 제대 앞에 무릎 꿇은 성인 자신과 타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다음과 같은 실화가 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40년대 한 흑인 여성이 남자친구와 백인으로만 구성된 성공회교회 미사에 참석한다. 영성체가 시작될 때 이 여성은 뒷자리에서 일어나 제대 앞으로 성체를 모시러 나간다. 남자친구는 같이 가자는 여성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마도 제대 앞에 선 백인 신부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게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백인들과 함께 성체와 성혈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후 이 교회의 신자가 된다. 2015년, 이들 부부의 아들은 미국성공회 최초의 흑인 의장 주교(마이클 커리)가 된다. 

한국은 점점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증가한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나의 경험은 다문화가정의 사람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이 내 고통처럼 느껴진다. 그들에 대한 차별을 미디어로 접할 때면 제대 앞 거룩한 불편함을 마주한 채 성인의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워진다. 


윤영석 바울로
미국성공회 뉴왁교구 성직부제 & NewYork-Presbyterian Hospital 원목
오는 6월 18일 사제로 서품을 받을 예정이다. 기도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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